별 헤던 밤
김재연
사랑하는 조카 혜성에게:
성이야, 요즘은 네가 고등학교 첫 입학이라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겠지? 네가 우수한 성적으로 중점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많은 경쟁자 속에서 최선을 다한 너에게 이모는 따뜻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너희 가족이 한국에 다녀 간지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 너희가 한국에 왔을 때 여기는 백여 년 만에 겪는 폭염이었다. 에어컨 없이는 잠들 수가 없었지. 불쾌지수가 높았지만 비좁은 우리 집에서 일주일간 잘 견뎌줘서 이모는 참으로 고마웠다. 무더위 가운데서도 가족 간의 우애를 다질 수 있는 소중한 소통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저녁에는 너희 가족과 함께 한강에서 돗자리를 펴고, 마른안주와 시원한 수박을 먹었지. 가끔씩 불어오는 강바람에 더위를 식힐 수 있어서 마음속에 행복의 물결이 너울 쳤단다. 너는 언니랑 한강 변을 산책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면서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고 언니에게 얘기했다면서? 네가 아름다운 꿈을 갖고 있어 이모는 너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단다. 너는 꼭 이룰 수 있을 거야. 이모가 응원한다.
네가 세상에 태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 오년이 넘었구나. 너를 낳느라 이틀 밤낮을 고생하던 네 어머니가 난산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었단다. 그때 네 어머니의 두 다리가 갈잎처럼 흔들렸었단다. 내가 이불을 덮어줘도 붙들어줘도 심하게 떨었던 정경이 엊그제 같다. 두려움에 입술마저 새파랗게 질렸었지. 수술실로 들어 간지 삼십 분 만에 네가 종 주먹을 쥐고 응아~ 하면서 세상에 고고성을 울렸다. 장시간 지체한 관계로 너는 급성폐렴에 걸려 다른 병실로 이모가 안고 갔단다. 별관으로 가는 길에 밝은 가을 달빛에 반짝이는 별들이 유달리 빛났었다. 네가 태어남으로 인해 태양계에서 축하파티라도 열고 있었나봐.
이번에 보니 네가 몰라보게 성장했더라. 하지만 네 어머니와 심한 갈등이 생겨서 이모는 아주 안타까웠단다. 네가 지금 열다섯 살이니 한창 예민한 사춘기인 것은 이모도 언니를 키워봐서 잘 알고 있다. 너는 어머니가 너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서운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더라. 어머니에게 불만이 많이 쌓인거지? 사실 너의 어머니도 너를 많이 사랑한단다. 다만, 직장에서 중책을 맡다 보니 퇴근 시간이 늘 늦어서 너와의 소통이 적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너를 무관심한 건 절대 아니란다.
너의 엄마는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의 한성공예품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잖아. 한 직장을 이십 여 년 다닌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해서 저녁 열 시에 퇴근하면 너는 이미 꿈나라로 갔었지. 살림도 너희 외할머니가 도맡아 하는 상황이었잖아? 어머니가 너랑 보내는 시간이 점점 적으니 너는 혼자서 많이 외롭고 힘들었겠지. 그래서 네가 가끔 어머니에게 불만이 많아 대꾸질하면서 모난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사람은 불평에 습관이 되어 버리면 사회 생활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거야. 아무리 좋은 대학, 좋은 학벌을 가지더라도 따뜻한 인성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힘들거든. 이 시기가 지나면 너의 이름처럼 지혜로운 사람으로 밝은 빛을 발산하는 모습을 이모는 기대한다.
너희가 온 이튿날, 더위를 날려 버리려고 우리는 계곡을 갔었지. 너는 물이 제일 싫다고 했었지. 그러나 정작 거기 도착하자 수많은 아이들이 물놀이에 신난 모습을 보고 너도 물에 풍덩 빠졌었지. 노란 튜브 위에 앉아 너의 어머니와 함께 물놀이를 즐겼지. 오랜만에 이모는 너의 얼굴에서 복사꽃 같은 예쁜 미소를 보았단다. 보조개가 옴폭 패여 별처럼 빛나는 모습을. 모녀간의 정다운 모습을 보니 이모는 마음이 참으로 따뜻해지고 후련해졌단다. 그동안 어머니랑 쌓였던 갈등들을 흘러가는 강물에 훌훌 띄워 보냈으리라 믿는다. 물놀이가 끝나자 너는 덜컥 걱정이 앞섰었지. 네가 집에서 계곡을 가기도 싫다며 갈아입을 옷을 뿌리쳤기 때문이었지. 그때 네 옷을 어머니가 짜잔하고 꺼내 주자 너는 깜짝 놀라더라. 부모의 마음은 늘 네 곁에 있다는 걸 기억해뒀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하늘의 별들은 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처럼.
이번에 네가 제안해서 송암 스페이스센터(천문대)에 가자고 했지. 처음에 이모는 저녁 시간에 거기를 가야 한다기에 이해가 잘되지 않았단다. 우리는 서울에서 한 시간을 달려 일찍 도착했지. 주변을 둘러보고 불타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있는 식사를 했지. 우리는 해지기를 기다려 케이블카를 타고 어둠의 장막을 뚫고 해발 450m 높이의 계명산 형제봉까지 야경을 감상하며 쉽게 올라갔지. 이모도 어릴 때, 형제들이랑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많은 상상을 했었단다. 달나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은하수와 견우와 직녀, 상아 아씨가 살고 있다는데.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보면서 방향을 확인했다는 귀로 들었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갔단다. 신기하고 아름다움의 세계를 볼 수 있음에 동년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단다. 해설원의 자세한 설명에 따라 북두칠성(곰자리), 북극성, 삼태성, 화성, 토성, 목성 등 수많은 별을 최고급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보았지. 그동안 태양계의 몰랐던 우주여행을 너를 통해 알게 되었단다. 네가 우리에게 신비로움의 선물을 주고 간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단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부모들은 물질적 부를 창조하느라 좌우를 돌볼 겨를이 없이 살아왔단다. 그러다 보니 너도 벌써 어머니의 키를 훌쩍 넘었구나. 신장의 성장에 따라 너의 인성도 가을처럼 성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의 어머니도 이젠 깨달았단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채워줘도 너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올해도 너랑 어떻게든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자 모처럼 휴가를 맡아 한국을 왔지. 별 헤던 밤처럼 부모님의 마음도 헤아리고, 부모님도 너의 고충을 헤아리는 그러한 여행이 되었다면 이모는 더 바랄게 없단다.
이모는 맑은 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너와의 별 헤던 밤을 생각한단다. 천고마비의 가을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너이길 바란다. 너의 천문학자의 꿈이 꼭 이뤄지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오늘은 이만 쓸게.
너를 사랑하는 이모가~
2018년9월12일
오 년 전, 네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이모가 무릎 수술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목발을 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