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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 진나라가 통일되기 이전인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사상가 묵자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 주지하듯이 동양 전래의 사상 가운데 주류는 여전히 유가(儒家)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세력들이 치열하게 영토 확장에 뛰어들던 춘추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弱肉强食)’으로 표현될 정도로 전쟁이 일상화되었다고 여겨진다. 남들보다 강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각자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출현했던 다양한 사상들을 여러 학파의 다양한 사상이라는 의미로 ‘제자백가(諸子百家)’라 일컫고 있다.
나라가 망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춘추전국시대라는 환경에서, 전쟁을 포기하고 어진 정치를 외치던 공자(孔子)의 논리가 매력적이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제대로 수용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10년이 넘는 기간 여러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유가의 이념을 설파했지만, 당시로서는 제후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탓에 공자는 그대로 고국인 노나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나라 무제에 의해 중국이 다시 통일되면서, 유가의 이념은 지배계급의 사상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오늘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설파했던 유가의 사상이 정작 통일제국에서 지배 권력을 공고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겸애(兼愛)와 비공(非攻)’으로 대표되는 묵자의 사상은 지배계급이 아닌 당시 하층민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 사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묵가(墨家)의 대표적인 인물인 묵적(墨翟)이 실재 인물인가의 여부도 확실치 않으며, <묵자>에 담긴 사상이 한 사람이 아닌 묵가 무리의 사상을 집약한 것이라는 견해도 제출되어 있다. 특히 저자는 ‘배고픈 자 먹지 못하고 추운 자 입지 못하고 일해서 힘든 자 쉬지 못한다며 당시 하층민들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들을 대변하고, 특히 일하는 자들의 권리와 그들이 누려야 할 기초적인 생황 보장에 관심이 많았던 사상가’로 묵자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하여 묵가의 사상이 담긴 <묵자(墨子)>라는 책을 통해서, ‘고전에 대한 친절한 길잡이 내지 길동무’를 자처하며 저자는 그 사상의 주요 내용과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고 하겠다.
지금과 달리 ‘씨족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생활하던 춘추전국시대의 환경에서 유가는 ‘우리 가족과 집단’이 최우선시되는 ‘특별함(別)’을 강조했지만, 묵가는 나의 가족을 뛰어넘어 모든 이들까지 ‘아우름(兼)’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그리하여 ‘별(別)이라는 모습으로 극단적 이익 투쟁이 전개되는 공동체를, 서로 이익을 공유하고 호혜적으로 이익을 주고받는 겸(兼)의 공동체로 바꾸려 하는 것’이 바로 묵자의 겸애(兼愛)’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에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묵가의 무리들은 전사(戰士)가 되어, 약소국을 방어하기 위해 전쟁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안성기와 유덕화가 주연으로 등장했던 영화 <묵공(墨攻)>이 바로 춘추전국시대 묵가들의 활약상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자는 묵가의 인물들이 진나라의 통일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지만, 역설적으로 진나라에 의해 중국이 통일되면서 그들의 효용이 다하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격적인 전쟁에 반대한다는 사상인 ‘비공(非攻)’을 주장하고 있지만, 묵가들은 침략 전쟁에 방어하기 위해 전사로서 무인 집단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의 필요성이 사라진 통일제국 진나라에서 무인 집단인 묵가들은 집권자가 권력을 유지하는데 방해되는 요인으로 간주되었고, 더욱이 ‘아방궁과 만리장성으로 대변되는 진시황의 백성 착취와 예산 낭비’ 따위의 행태가 묵가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진나라 초창기에는 묵가들의 사상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정책의 기조를 형성할 수 있었으나, 어느 정도 통치 체제가 안정되면서 묵가들의 효용이 다해 권력의 박해로 인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특히 진시황의 사상 탄압으로 지칭되는 ‘분서갱유(焚書坑儒)’에서 학자들이 구덩이에 파묻혔다는 ‘갱유(坑儒)’의 대상에 묵가의 인물들이 대거 포함되어, 오히려 ‘갱묵(坑墨)’이라고 표현해야할 정도였다고 논하고 있다.
묵가의 사상 가운데 반문화적인 요소의 하나로 음악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비악(非樂)’론이 꼽히고 있다. 저자는 묵가의 비악론의 의미를 상세히 따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 논리가 ‘음악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지배층의 음악 소비를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당시 권력자들은 향락을 위해 수시로 잔치를 열었고, 그 자리에는 사치스러운 규모로 음악의 연주가 수반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지배층의 지나친 음악 소비 때문에 아래로 분배될 재화의 낭비와 소모가 너무 심하고, 이것이 민생 파탄’으로 이어지기에 묵가의 ‘비악론’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묵가의 연원을 스승의 말에 다소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찾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저자는 ‘공자의 제자들 중 그 사상의 한계 내지 약점을 보고, 또 스승과 다른 생각을 가진 제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 자로를 들면서 그를 ‘공자 학단의 야당 대표’로 평가하기도 한다.
저자는 묵자의 사상을 공자의 이론에 대응하는 논리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기에 ‘공자를 딛고 있어선 사상가’로 평가하고 있다고 하겠다. 묵자는 당시 민중들이 ‘추워도 입지 못하고 일하면서도 쉬지 못하고 배고프면서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른바 세 가지의 고통인 ‘삼환(三患)’의 상황에 처했다고 진단하였다. 그리하여 ‘인민 생활 최소한의 기초 내지 최소한의 물질적 보장’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이 바로 겸애(兼愛)의 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묵자의 존재와 묵가들의 활동과 의미를 당대의 시대 상황에 걸맞게 설명하고, 후반부에는 ‘묵자 읽기’를 통해 주요 원문과 번역본을 통해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동양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가의 문헌들을 읽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유가를 제외한 나머지 사상에 대해서도 유가의 관점에서 평가하면서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나 역시 사서를 위주로 한문 공부를 시작했기에, 그러한 생각들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옮긴 <담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기회가 닿는다면 제자백가의 사상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하여 읽으면서, 예전에 보았던 영화 <묵공>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묵자> 원문을 번역한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하겠으나, 먼저 묵가를 소개하는 책을 접하는 것도 시도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묵자의 공동체 생활과 전쟁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그 사상적 기반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왜 <맹자>라는 문헌에서 묵가를 그리 비난했는지, 또 묵자는 한명이 아닌 집단을 일컫는 것이라는 추론도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었다. 특히 책의 뒷부분에 묵가 원문과 해석을 제시하면서, 그에 대해 저자 나름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 앞부분에서 논했던 문제들에 대한 이해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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