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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20여년 전 아내가 임신을 했을 때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당시에도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 제도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던 기억도 또렷하게 상기되었다. 임신으로 인한 급격한 신체적 변화에 따른 고통을 느끼며 써내려간 저자의 경험을 접하면서, 혹시 당시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지도 모르는 아내의 입장에 대해서 떠올려보기도 했다. 물론 너무도 오래되어 지금의 아내는 먼 추억처럼 이야기할 것이다. 이 책은 임신을 했던 여성들이 크게 공감할 내용이지만, 오히려 남성들이 더 읽을 필요가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국회 청문회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미혼인 여성 후보자에게 ‘출산의 의무부터 다하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여성을 바라보는 기득권 남성들의 시각을 대표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한국의 출생률이 떨어지는 현상을 여성의 탓으로 볼리는 황당한 발언이 이어지고, 그 대안으로 출생아에게 파격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는 현상을 목도한 바 있다. 그러나 과연 경제적 지원이 이뤄지면 출산률이 높아질 수 있을까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3포세대'라 하여 결혼조차 포기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파격적인 경제 혜택만으로 그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먼저 인구정책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과 제도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들의 마음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임신 기간 중의 미묘한 감정적 변화까지를 포함한 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책의 내용이 다소 개인적인 주변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이 아내의 임신 과정을 아주 오래 전에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처지라, 여성들이 직접 겪엇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임신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무관심한 태도에 대해서는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 간혹 서울에 가면 지하철을 타게 된다. 얼마 전부터 생긴 임신부 배려석이 분명하게 인식될 정도로 표시가 되어 있는데, 남성들이 앉아있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그려진 것처럼 앞에 누가 있던 휴대폰을 쳐다보면서 무관심하게 있는 그들의 태도는 자기만을 생각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 태도라 치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부제는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라고 붙여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 기간 동안 저자가 얼마나 힘들고 ‘열 받았을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임신한 딸에 대해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저자의 아버지의 태도는 기성 세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인식은 그 잘못을 바로잡는 것으로 하나씩 고쳐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적인 측면은 단지 정책으로 시행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것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확산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임산부를 배려하는 외국에 거주하는 이의 경험담을 적은 댓글 내용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제 저자는 출산을 끝내고 다시 육아로 인해 또 다른 어려움이 처해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지금 시점에서는 임신 기간 동안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육아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남성 독자들이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조금씩이라도 알게 되어 배려를 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물론 이러한 언급도 그저 남성으로서 면피성 발언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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