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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모스서
유대교 정경은 이 책들을 1권으로 묶어 '열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대인 예언자 아모스는 드고아 마을 출신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여로보암 2세(BC 786경~746 재위) 때 활동했다.
〈아모스〉 7장 14절에 따르면 아모스는 원래 예언자도 예언자의 아들도 아니었다. 또한 그는 직업적인 예언자 단체의 회원이 아니었지만, 그가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할 수 있었던 권위의 근거는 '야훼의 부름을 받았다'는 데 있었다.
〈아모스〉는 개인적인 말과 환상에 대한 기록을 모아놓은 책이다. 아모스가 자신의 말을 직접 기록해 놓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서기관이 아모스가 하는 말을 받아적었거나 후대의 저자가 구전 전승되던 그의 말을 기록해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현존하는 〈아모스〉의 배열상태를 보면 아모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기록한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아모스의 메시지는 주로 패망에 관한 것으로,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에게도 관심을 쏟지만 대상은 주로 야훼 신앙으로부터 벗어나 가나안 신 숭배로 타락한 이스라엘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지키는 절기와 엄숙한 집회를 공박한다. 또한 이기적이고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는 부자, 정의를 왜곡시키는 사람, 야훼의 권능이 나타나 악한 사람을 벌하고 의로운 사람을 새롭게 해줄 '야훼의 날'을 바라는 사람에게 심판을 선언한다. 아모스는 경고하기를, 그날은 이스라엘이 야훼를 배신했기 때문에 어두움의 날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예상 밖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약속으로 끝난다(9:8~15). 이 구절은 〈아모스〉 전체의 위협적인 성격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여러 학자들은 이 부분이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본다.
3. 오바댜서
오바댜(개신교)는 예언자 오바댜의 예언을 적은 구약성경 가운데 하나로, 구약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이다. 히브리어로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오바댜는 그가 살고 있던 유다와 가장 가까운 나라인 에돔 족속을 향한 심판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회복을 선포하고 있는 책이다.
4. 요나서
요나는 구약성경의 하나이다. 열왕기하 14:25이 요나를 여로보암 2세의 통치와 연관시키고 있는 내용을 통해 요나서에 있는 이 일들은 여로보암이 통치하던 기간(B.C. 793-753)중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요나는 당시 선민의식 즉,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던 이스라엘의 편협한 생각과 야훼의 폭넓은 사랑을 대비시키고 있다. 요나서의 핵심내용은 '회개' 그리고 '순종' 신약과 대비해서 예수가 말하였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라는 것이다. 즉 이 세대는 회개를 통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요나서는 종말론적 메시지 보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구원을 통한 인간들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즉, 대비법 통해 당시 이스라엘의 편협함을 비평하여 바로잡고자 쓰였던 예언서이다.
5. 미가서
남왕국 유다의 예언자 미가는 BC 8세기 후반에 활동했다. 예언 자료들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서 그 중 일부는 미가 자신의 시대보다 훨씬 후대에 속하는 것이다.
대체로 학자들은 1~3장과 6장 및 7장 7절에 나오는 경고들은 미가가 쓴 것으로 인정하지만, 4~5장과 7장 8~20절의 약속들은 수세기 후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이 약속들 가운데 일부는 예루살렘 멸망과 뒤이은 바빌론 포로기(BC 6세기)를 전제하지만, 어떤 약속들은 바빌론 포로 이전의, 또는 미가 자신의 약속일 수도 있다. 4장 1~4절의 시온에 관한 드높은 이상과 5장 2~4절의 메시아적 인물은 바빌론 포로기 이전 예루살렘에서 시행했던 시온 제의 이념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미가는 우상숭배자, 약자를 억압하는 자, 성직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제사장과 예언자, 평등을 짓밟고 정의를 미워하는 지도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약속들은 시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시온에서 야훼나 야훼로부터 왕권을 받은 대리자가 평화의 왕국을 다스릴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 약속들은 유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도 포로로 끌려간 곳에서 다시 돌아올 것임을 강조한다.
6. 나훔서
이 책의 서두 제목에는 '니느웨'에 대한 신탁', '엘코시의 나훔이 본 환상'이라고 되어 있다.
이 예언적 신탁을 쓴 계기는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의 몰락이었다. 오랫동안 고대 중동지방의 약소 민족들을 위협해왔던 강력한 앗시리아 제국은 특히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따라서 앗시리아 제국이 신바빌로니아 왕조의 메데와 칼데아로 인해 차츰 쇠퇴하다가 마침내 니느웨 함락(BC 612)으로 멸망하자, 예언자 나훔은 이 사건들을 찬양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는 앗시리아의 정책이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나훔서는 이합체(각행의 첫 글자를 짜맞추면 하나의 말이 되는 것)의 찬가와 하느님의 심판에 관한 신탁, 풍자와 저주,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등 다양한 형태의 소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들을 모두 니느웨의 몰락과 결부시켰다.
7. 하박국서
하박국은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말씀을 선포했다. 내적으로는 부패하였으며, 신흥하는 바빌론의 세력으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선지자는 이런 정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시다고 불평을 하고 있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하며, 나아가서 온 땅에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했다. 결국 하바꾹은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며, 재난에 직면해서 자신의 구원자이신 야훼를 찬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하박국은 내적인 부패로 썩어 있었으며 새롭게 부각하는 바빌론의 세력이 곧 성전과 도성을 멸망시킬 운명에 있는, 역사적 마지막 시기의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말씀을 선포했지만, 선지자의 시각으로는 이러한 이중의 악이 힁행하는 가운데 주님은 활동하시지 않고 무관심 하신 것처럼 보였다.
하박국은 “왜 악인이 번성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지며, 유다에 힁행하고 있는 악과 불의와 폭력에 대해서 불평했는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선지자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되, 이를 위해서 유다의 악보다 더 악한 악을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며, 보다 악한 이들은 더욱 번성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 선지자의 두 번째 불평을 도입하는데(1:12~17),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참아 보실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이 자신들보다 의로운 자들을 집어삼키도록 허락하실 수 있는가(13절)?, 그들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그들의 그물을 채우며, 계속해서 사치롭게 살 것인가(16~17)? 에 대한 주님의 대답을 보려고 파숫군처럼 인내하며 기다린다(2:1).
많은 학자들은 하바꾹의 불평들을 욥기와 비교 했는데, 욥처럼 이 선지자도 아무리 현상이 반대로 된 것처럼 보이고 아무리 정황이 어려워 보여도 계속해서 주님의 약속들을 믿고 신뢰해야 하며, 온 땅의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함을 배웠다. 또한 믿음으로 사는 법과, 재난에 직면해서 자신의 구원자이신 야훼를 찬양하는 법까지 배웠다. 이후 수백년 후에 다시 악과 불의가 전에 자주 그랬던 것처럼 흥왕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전은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상징되는 성전이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조롱하였지만, 이 선지자는 주님을 신뢰했으며(마태오 복음 27:43: 히브리서 10:35상), 주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서 그를 변호하셨다(로마서 1:4). 예수의 부활은 멀리 계신 게 아니며, 악이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 자신의 선언이었다.
8. 스바냐서
주제는 '야훼의 날'이다. 악에 대한 심판과 의에 대한 구원이다. 유다와 이웃 나라에 대한 심판과 유다의 회복을 예언했다. 영적으로는 세상의 대 환난을 거쳐 미래의 천년 왕국의 실현에 대한 예언이다.
9. 학개서
학개의 신학은 바벨론 강제이주에서 귀환한 후 성전재건이 지연되는 상황 속에서 선포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신학사상이 반영되어 있다.특히 귀환 시대에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성전에 주어질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이 기록되어있다.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됨으로 그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학개는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메시아적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신은 모든 우주를 흔들 것이며, 모든 세계의 부는 성전으로 모이며, 새로 세워질 성전의 영광이 첫 성전의 영광보다 클 것이라고 선포한다 (2장 6절-9절) 성전이 세워지지 않았을 때 제물이 바쳐짐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부정했다. 학개는 성전 재건을 재개하는 날부터 백성들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다른 예언자들처럼 하깨는 우상의 종말에 대하여 그리고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에 대하여 계획하고 있다.
10. 스가랴서
유대교 정경에서는 1권으로 편찬되어 있다. 스가랴의 예언을 수록한 것은 1~8장뿐이다. 9~14장은 2명의 무명 저자들이 쓴 것이 분명하며, 학자들은 '제2스가랴'(Deutero-Zechariah, 9~11장)와 '제3스가랴'(Trito-Zechariah, 12~14장)로 분류한다.
1~8장에서 언급된 연대에 따르면 즈가리야는 BC 520~518년 활동했다. 페르시아 시대 초기의 예언자 학개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스가랴는 하깨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하깨와는 달리 스가랴는 성전 재건이야말로 임박한 종말의 때를 맞는 데 필요한 준비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스가랴〉 가운데 특히 8가지 밤의 환상(1:7~6:8)은 종말론적 시대(세계의 종말)의 도래와 종말론적인 공동체 생활의 모습을 묘사한다.
〈스가랴〉의 환상들 가운데 하나는 말을 탄 4명의 묵시적 인물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이들은 하느님이 바빌론 포로기 동안 황폐화된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예언한다. 다른 환상들은 성전이 재건되고 온 세계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를 깨닫게 되리라고 고지한다.
11. 말라기서
유대교 정경에서는 각각을 하나로 묶어 '12서'라고 한다. 〈말라기〉는 작자미상이며 '나의 사자'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를 단순히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4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예언자는 세상의 끝에 대한 종말론적인 기대가 아직 실현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정의를 의심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독특한 토론법을 이용해 하느님의 정의를 옹호하고 있다.
저자는 야훼의 계약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며 올바른 예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혼을 비난하며 심판의 날이 가까웠음을 선포했다. 이러한 예배의 의무와 도덕적 의무에 충실하면 상을 받을 것이요, 불충실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라기〉는 재건된 성전(BC 516 봉헌)을 전제로 하는 것이 분명하나, BC 450년경 느헤미야와 에즈라의 지도 아래 일어났던 종교공동체 재건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BC 5세기 초반에 씌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