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이야기에는 어떤 틈이 있다. 이 틈이야말로 이야기가 어
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어떤
이야기가 덧붙여지거나 이미 있던 이야기의 요소가 사라질 때, 거기
에는 언제나 작은 흔적이 남게 마련이다.
아랑의 이야기에도 여러 가지 틈이 보인다. 붉은 깃발과 큰줄흰나비
말고도 여러 군데에서 그 틈이 보인다. 살인자의 신분도 그렇다. 어떤
판본은 살인자가 통인이라고 말한다. 통인이라면 관청에서 심부름을
하는, 말하자면 하급 관속에 속한다. 그러나 어떤 판본에서는 관노, 그
러니까 관청에 소속된 노비가 살인자로 지목된다.
이런 양자의 불일치 역시 하나의 중요한 틈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이야기꾼들이 청중의 신분에 따라 범인의 신분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재벌그룹 회장님들이 자본가가 살인자로 나오는
영화를 보고 즐거워할 리가 만무하며 마찬가지로 사장 딸을 강간 살
해한 후 응징당하는 노동자의 이야기에 노동자들이 흥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따라서 아랑의 이야기도 이야기꾼들이 속한 계급과 계층에
따라 범인을 달리하면서 각기 다른 판본으로 분화돼갔을 것이다.
「 아랑은 왜 / 김영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