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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일
어젯밤 늦게 형과 여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7월인 오늘부터 노인건강 보험이 시작되는데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옮기면 금전적인 혜택을 받는다고 월곡동에 위치한 한솔요양원을 정하여 놓았다고 한다. 현재 1개월 요양병원 비용이 120만원인데 이번에 시행되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요양원은 60만원이라 하니 다른 여지가 없지만 어머니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하실까 염려가 된다. 오늘부터는 아들이 기말고사 시험이라 아침에 학교에 태워주고 돌아왔다. 운동을 마치고 곧장 오늘 이전한다는 월곡동 한솔요양원에 아내와 함께 가서 시설과 환경을 둘러보니 아래층에 노래방이 있고 입구나 계단도 지저분하여 불만스러웠는데 어머니가 계실 4층은 새로 수리를 하여 어둑하지만 그나마 괜찮다. 신내동 요양병원에서 아직 출발을 하지 않았나 싶어 모시러 갔더니 그 사이 형의 차로 이미 출발했고 간병 아주머니만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로 휑한 어머니 침상에 앉아 있다. 그 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리고 다시 월곡동 요양원으로 돌아가니 도착하여 어머니께서 자리를 잡고 누워 계신다.
2일 장마철이라고 하는데 비는 내리지 않고 숨이 막히는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된다. 아침에 일어나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니 땀이 흐르고 기분이 상쾌했다. 집으로 돌아와 시험 마친 아들과 라면으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오후에 내일 시험에 대비하여 아들에게 국어범위를 요약하여 해설했는데 이해를 잘하여 빠른 시간에 마칠 수 있었다. 환경이 바뀐 어머니에게 심경의 변화는 없을까 염려되어 부지런히 요양원으로 달려가 뵈었고 실내에서 함께 보내다가 저녁에는 남영동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집에 왔다.
3일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 아침식사를 했다. 어제 마신 술이 오전까지 영향이 있어 집에 있다가 오후에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 주차장에 들어가는데 형수께서는 벌써 왔다가 나가신다. 신내동에서 월곡동으로 옮겨서 거리도 가깝지 않은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형의 고정된 수입으로 대학을 다니는 현주와 재수하는 진우까지 어려움이 많을텐데 어머니까지 정성껏 모시는 수고로움을 격고 계신다. 큰형이 세상을 떠나고 반포에 살던 가족들이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가다보니 현실적으로 작은 형수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1시간을 함께 보내고 집에 돌아와 오늘은 저녁도 먹지 않고 거실에서 잠들었다.
4일 아들이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을 보고 아내는 학부모 감독관으로 학교에 간다. 중간고사 때의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 이번 기말고사부터 교사와 학부모가 동시에 감독을 하는, 아들로 인하여 시험보는 과정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태우고 학교에 내려주고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했다. 어머니 요양원 공간이 좁아 오후에 가서는 휠체어에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이 큰 도로라서 차만 쌩쌩 다니고 길 가장자리를 따라 100미터쯤 이동하니 건너편에 그늘이 있는 쉼터가 보인다. 신내동 병원에서는 배추밭과 무밭이 있어서 정서적으로 좋았는데 이 곳은 거기에 비하면 공기도 탁하고 시끄럽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청주에 사는 처남 동렬이가 조카들을 데리고 여행을 온다기에 서울역에서 맞이하여 롯데마트 쇼핑을 함께 하고 차에 태워 창경궁에 내려주었다. 4살, 6살 두 딸과 나들이를 하는 오늘이 세월이 흘러도 동렬이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구경을 마치고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묶어가는 일정이라 저녁에 모두 모여 삼겹살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일찍 자려고 침대에 있는데 아들이 옆에 와 눕는다. 어려서부터 나의 등을 잘 긁어 주는 놈이라 반갑게 맞았는데 대뜸 명동에 가서 신발을 사야한다고 비용을 요구한다. 동네도 아닌 명동이라니, 유행이나 멋을 따라가는 성장하는 아들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여 바로 5만원을 주었다.
5일 토요일 아침에 아들과 딸을 학교에 보내고 안방에서 쉬면서 보냈다. 영식이가 고향 영덕에 간다기에 선물이라도 준비하여 그의 노모께 전하고 싶었는데 요즘 금전적으로 어려우니 도리가 없고 다음 달 휴가철이나 준비하리라 생각을 하였다. 북한산에 가려고 나서는데 날씨가 잔뜩 흐려 비가 올 것 같다. 정릉에서 보국문과 대성문 대남문을 거쳐 문수봉 정상에 도착하니 12시가 지났다. 정상근처에서 점심으로 누룽지탕을 먹고 문수사가 보이는 방향으로 라이터 하나를 던졌다. 성우가 죽기 전에 모아둔 특이한 라이터 7개 정도를 나에게 주었는데 문수사 주변에 올 때마다 그를 기리며 하나씩 버리는 것이다. 2시경 비가 내리고 정릉에서 가까운 어머니 요양원에 가서 저녁 드시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막걸리 1잔을 마시니 갈증이 가신다.
6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오늘 영식이네 고향 경북 영덕은 37.5도까지 올라가 기상관측 이래 7월의 기온으로는 가장 높은 온도라고 한다. 집을 나서 북한산 정릉 입구에 어제처럼 차를 주차하고 산을 오르는데 더운 날씨라 산행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비하여 절반도 되지 않는다. 보국문 방향으로 오르다가 어제와 달리 중간에서 칼바위 능선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길을 잃어 숲속을 헤맸고 50분이 지나 겨우 능선에 올랐다. 안개가 많아 건너편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서 칼바위 등산을 포기하고 반대방향 빨래골 능선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내려와 어머니를 뵈러 갔다. 저녁에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영식이는 배도 입항하였고 선장인 신영재와도 만나 정산까지 마쳤다고 부산에서 전화를 한다. 서울에 올라가서 자세하게 설명한다고 하더니 5천만원 투자금에 대한 배당금을 먼저 보낸다고 계좌번호를 요구한다.
7일 새로 시작하는 월요일이다. 어제 영식이가 계좌번호를 부탁한 걸 보니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된 것같다. 아침식사를 하고 개봉동에 가려고 나서는데 전화가 와서 목요일로 시간을 연기하였다. 내가 개봉동에 가는 것은 조사장이 최선을 다해서 내가 지닌 어음을 처리해 준다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나는 이미 어음의 금액을 상가로 받았다가 법적 기한까지 소유권 이전을 하지 않아 그대로 버렸다. 학생들만 지도하다보니 세상 물정도 모르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무능력한 자신이 한심하기만 하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요양원에 달려가 어머니와 쉼터에 나와 한낮의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 운반선에 투자한 금액에 대하여 이익금 4백만원이 영식이한테 입금되었다. 베링해까지 가서 운반해 오는 기간인 1항차가 40여일이니 사업이 이대로 잘 진행된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벗어날 좋은 기회인데 다른 변수는 없을까 염려도 된다. 형한테 이익금 일부를 보내고 집으로 와서 아내에게 영식이의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저녁에 나는 버섯볶음밥 아내는 물냉면을 배달시켜서 먹는데 9시에 학원에서 온 딸이 엄마가 먹던 냉면을 마저 먹는다.
8일 어젯밤 열대야로 힘들었는데 오늘도 30도를 넘는다는 뉴스가 나오고 아침이 왔는데도 기온이 높아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학교에 가는 딸이 딱풀을 산다고 1천원을 달라고 해서 집에 있는 것을 쓰라고 하니 그래도 용돈으로 달라고 하여 주었고 엄마가 사 준 예쁜 7부 바지를 입고 현관을 나간다. 아침에 아내는 안산에 오르고 나는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집에 왔다. 낮 기온이 높아 더위가 기승인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에서 보는 안산의 푸르름은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한다. 점심으로 상추쌈을 먹고 거실에서 보니 아들의 방문 앞에 ‘문 닫아 주세요‘라고 적힌 아크릴 문구를 붙여 두었다. 오늘이 음력으로 6월 6일 형의 생일이라 어머니에게 가면서 전라도 진도산 홍주를 샀고 마침 요양원에 온 형수한테 선물로 대신 전해주었다.
9일 비도 오지 않는 마른장마라고 언론에서는 연일 난리다. 거기다가 불쾌지수까지 높고 열대야도 계속되어 불편한 하루하루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요양원에 갔더니 어머니께서는 날마다 울면서 보낸다며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하시고 그러면서 내일은 더 일찍 오라고 말씀하신다. 진담인지 투정인지 모르겠고 한편으로 생각하니 오늘까지 10여일 지냈는데 처음 있던 곳과 분위기가 달라 불편한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휠체어에 모시고 쉼터에 나와 함께 앉아 있으니 내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사람들이 효자라고 말을 던지며 지나간다. 오후에 부산에 와 있는 운반선이 장기간 수리가 필요하여 언제 출항할지 기약이 없다면서 영식이한테서 원금 5천만원이 입금되어 왔다. 엊그제 이익금이 나와 흡족한 마음이었는데 배를 수리하는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자들한테 40일 간격으로 배당금을 준다는 약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배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누구에게나 즉시 원금을 돌려 주고 출항하면 다시 투자하는 도박이나 게임에서 판에 따라 베팅하는 격이다
10일 열대야로 잠을 설친다고 연일 방송에 나오는데 그래도 우리 집은 시원하여 새벽에는 아내가 춥다고 이불을 감고 있다. 낮에 큰 거실에 누워 있으면 편하고 밤에는 남산타워까지 훤하게 보여 야경이 아름답기도 하다. 오늘 목요일 아침에 된장찌개와 고등어조림으로 가족이 식사를 했다. 학교에 가는 아들은 시험이 끝나 이제 방학을 일주일 남겨 두고 있는데 어떠한 계획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개봉동에 가서 조사장을 만나 대화를 하니 지금이라도 112호나 113호에 대하여 소유권 이전을 해서 가져가라고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1억5천 상가를 분양가 3억으로 높여서 책정하여 두고 1억 정도 빚을 갚을 사람한테 넘겨주면서 은행돈 2억을 책임지라는 식으로 선의의 사기수법과 다르지 않아 잘못하면 더 큰 굴레를 쓰는 격이다. 요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엊그제 빼앗아 둔 딸의 핸드폰을 주의를 시키며 돌려주고 안산에 올라가 걷고 내려오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아내가 예약해 둔 치과에 아들과 함께 가서 상담하고 다음 주에 치아 4개를 빼기로 했다. 현재도 잘생기고 나이가 들면 얼굴의 윤곽도 멋있게 자리를 잡을 아들인데 비싼 돈을 들여 구강을 고친다니 내 마음은 전혀 내키지 않았다. 남들이 하니 따라서 하는 심리와 수입을 올리기 위한 치과의 부추김도 있는 것으로 멀쩡한 사람 억지로 수술시키는 꼴이다. 저녁에 노량진에 가서 학원을 오픈한 김성만을 보고 방배동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 들어 왔다.
11일 새벽에 거실에 나가니 아내와 딸이 자고 있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좋았다. 나도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아내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김치찌개로 식사를 하고 아들과 딸은 학교에 아내는 안산에 오른다. 나도 요양원에 가서 일찍 어머니를 뵙고 정릉으로 이동하여 북한산을 올라 칼바위 정상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산을 거의 매일 다니지만 북한산 칼바위에 온 지는 두 달이 넘은 것 같다. 계절이 바뀌어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의 모습은 진녹색의 천을 깔아 놓은 듯하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씻기에 충분했다. 흐린 날씨에 오가는 사람도 없는 산길을 3시경 내려와 엊그제 입금된 투자금 일부를 형한테 보내주었다. 투자한 사람들은 날짜에 따른 이자를 생각하기 때문에 영식이도 그렇고 나도 그럴 수밖에 없다.
12일 일어나니 비가 조금 내렸다. 거의 1년 동안 가족 외식을 못하여 오늘 공휴 토요일이라 서울근교에 나가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아들이 친구들 만난다고 어렵다고 해서 다음으로 미루었다. 모처럼의 계획인데 어쩔 수가 없어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어머니 뵙고 신설동 커피숍으로 가서 우즈베키스탄 한인회 박사장을 만났다. 우즈베키스탄 니자미 국립대학 한국어과 교수로 가는 일로 타협을 했는데 교수의 월급이 50만원이라서 선뜻 내키지 않았다. 현지에서는 공무원 월급이 10만원이 조금 넘고 거기에 비하면 교수는 상위수준이라고 하지만 서울의 생활비로는 턱도 없이 모자란다. 가족과도 상의해 보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나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13일 어제 들어와 아내와 아들 딸에게 우즈베키스탄 건에 대하여 2시간 넘게 설명을 했다.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기대하는 표정이고 아내는 금전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부정적인 기색이다. 오전을 보내고 점심쯤 되었는데 외출했던 아내와 아들이 핸드폰을 교환하고 축구용 다리보호대까지 새 것으로 사 가지고 들어온다. 아들이나 딸을 위해서라면 거의 따지지 않고 소비를 하는데 현재의 생활을 감안하여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절제하는 습관도 필요할 것이다. 아들을 태우고 요양원에 가니 형이 와 있고 어머니를 모시고 소공원 근처로 나왔다가 근처에 있는 칼국수 집에 들어갔다. 국수를 끓이는 동안 휠체어에 앉으신 어머님께서 옛날처럼 지시하고 참견하시는 것을 본 식당주인은 아직도 기력이 대단하시다며 웃는다. 4시에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은 유니폼까지 입고 의기양양하며 축구를 하러 나간다. 모처럼 일찍 쉬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다시 온 아들이 학교 유리창을 깨서 변상해야 한다고 돈을 받으러 왔다. 살아가면서 무엇이든 아들의 일은 모두 내가 처리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당연한 보호자 입장이다. 볼이 강해서 그럴 수 있으니 잘 처리하라고 2만원을 주어 보냈다.
14일 새로 시작하는 월요일이고 방학직전이라 등교하는 아들에게 1학기 마무리를 잘 하라고 당부했다. 아침에 아내는 안산을 오르고 나는 정릉으로 가서 북한산 산행을 시작했다. 보국문에서 능선을 타고 대남문을 거쳐 문수봉 건너편 바위에 앉으니 11시40분이 되었고 내가 사는 서울 서부지역이 한 폭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바람까지 불어 시원한 오늘 널찍한 바위에 누워 있으니 신선의 기분이 들어 좋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있을 수는 없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다짐하고 대성문 아래 영취사를 거쳐
내려와 요양원으로 향했다. 5시경 영식이 전화를 받고 방배동으로 차를 몰고 가니 자신의 경상도 고향에서 가져온 장어와 도루묵 그리고 오이와 체리 등을 가져가라고 전해준다. 저녁에 집으로 와서 바다 붕장어를 시식하는데 나보다 아들이 더 잘 먹고 아내는 체리가 특별히 맛있다고 한다.
15일 오늘도 아내는 안산에 오른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내가 마음이 좋은데 하지만 산에 갈 때마다 뱀이나 죽은 쥐 등을 이야기하며 걱정을 해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한양아파트 방향으로 오르라고 했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대치동에서 영어학원을 하는 마선일 원장을 약수동에서 만났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들어온 실력파 후배인데 대일학원에서 함께 강의를 하면서 가까이 지낸 사이다. 대치동 학원에 투자를 조금하고 원장이든 이사든 직함을 가지고 이익금을 분배하는 동업을 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식사를 하는데 식당 건너편에 떠나간 김성우 사무실이 있어 그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고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와서 특기적성 바이올린 쫑파티 한다는 딸을 학교에 태워다 주었다.
16일 비가 오는데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간다. 식사를 마치고 운동을 다녀와서 내일 우즈벡 한인회 박회장에게 넘겨줄 이력서와 개인증명서 등을 준비하고 점심을 먹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 들어갈 때 이력서를 써 본 것밖에 없는데 오늘 두 번째 작성하고 읽어보니 화려한 겉치장 같아 부끄럽기만하다. 비가 개어 어머니 요양원에 가서 오늘도 휠체어에 모시고 소공원에서 2시간 보내고 영식이와 저녁을 먹으려고 집에다 차를 두고 시내버스로 남영동으로 나갔다. 영양탕으로 유명한 연흥식당에 들어갔는데 맛도 있고 주인의 서비스도 좋아 흡족한 시간이었다
17일 아침에는 흐리고 낮에는 맑음이라는 기상예보다.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는데 대학교 후배가 아침마당에서 창업정신에 대하여 재미있게 강의를 한다. 지방 대학 출신이라도 노력하면 누구라도 중앙무대에 설 수 있고 능력도 인정받을 수가 있다. 아내가 산에 간다기에 나도 따라나서 모처럼 함께 안산을 올랐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부가 산에 같이 다니면 보기도 좋고 대화 상대도 되고 일석삼조는 될 것인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산에서 내려와 신설동에서 우즈베키스탄 서류를 강회장에게 넘겨주며 대화를 해보니 한약재를 재배하여 한국으로 수출하는 큰 회사의 오너와 우즈벡 한국인 회장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5시에 어머니와 함께 있는데 용구아빠 전화가 와서 위생병원 요양원에 자리가 생겼고 시설이나 환경이 좋다고 소개를 한다. 곧바로 회기동 요양원(유자원)을 방문하니 조용하고 깨끗하고 넓고 현재의 월곡동 요양원과는 확연히 다른 시설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옮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계약을 하고 집으로 오면서 종로6가 서적도매센터에서 아내가 부탁한 문집을 구입하고 종로 거리를 통과하여 교보문고에 들어가서는 러시아 회화교재를 샀다. 집으로 오자마자 러시아 인사말 등을 연습하니 마음은 이미 우즈벡 국립대학 한국어과 교수가 되어있다.
18일 오늘은 딸이 다니는 안산초등학교 방학이다. 아들은 월요일에 하는데 방학이 되면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생기고 여러가지 계획이 많아 마음이 들떠 있을 때이다. 나도 객지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고향집에 가고 또 친구들과 만날 생각으로 특히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아내와 안산을 올라 땀을 흘리고 집에 내려오니 11시가 지났다. 바로 강남구청에 가서 마원장을 만나 투자금을 전달하고 차용액에 대하여 담보를 설정했다.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금전거래라 어쩔 수가 없고 구내식당에서 1인분 3300원 점심을 먹었다. 일을 마치고 지하철로 월곡동 요양원으로 이동하여 어머니와 보내다가 집에 돌아왔다. 아내와 딸은 내일 장모님 생신이라 청주에 오늘 먼저 갔고 나는 아들과 내일 가기로 했다. 저녁에 화곡동 형준이 전화를 받고 나가서 식사와 술을 하고 늦게 들어왔다.
19일 새벽에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아들이 학교에 갈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나버렸다. 서둘러 깨우니 잠을 자던 아들도 허겁지겁 일어나 밥도 먹지 못하고 현관을 달려 나갔다. 쉬면서 시계를 다시 보니 내가 시침과 분침을 혼동하여 벌어진 일로 결국 1시간이나 일찍 아들이 학교에 간 꼴이 되었다. 점심쯤에 돌아온 아들이 오늘 학교에 들어서니 아무도 없고 이미 1교시 수업이 시작된 줄 알고 조바심으로 교실에 들어서니 거기도 텅 비어 있어 놀랐다고 한다. 시간을 잘못 인식하여 보낸 나도 그렇고 자다 말고 시계도 안 보고 달려 나간 아들까지 두 사람이 동시에 착각한 이상한 아침이었다. 오늘이 장모님 생신이라 청주에서 저녁식사 약속이 되어있어 아들을 태우고 요양원에 들렸다가 서울을 나섰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비가 내려 서울출발 62킬로 중부(음성)휴게소에 들어가 한참을 쉬고 아들과 우동과 자장면을 각각 먹었다. 저녁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오후 4시30분 증평 톨게이트를 벗어나 옛날 하숙집 괴산군 도안면에 들어갔다. 친구 남석이 아버지도 뵙고 하숙집 아주머니와 그리고 함께 살았던 동생 규정이도 만나 반가움을 나누었다. 1시간을 지체하고 바로 청주로 나와 가족들이 자리한 백숙전문 식당에서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장모님 생신임에도 천주교 재규네나 기독교 동렬이네 그리고 안식일교 용구네까지 모두가 술도 안하고 말도 없는 성격이라서 시끌벅적한 다른 집에 비하여 재미는 없는 편이다. 종교를 가지고 술이나 담배를 안하는 사람은 선한 인간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어른들의 이분법적인 선입견이 있을지라도 나의 정서와는 완전 다르다. 다음에는 케익도 준비하고 노래도 하고 감사의 말씀도 드리는 형식과 순서가 있어야 할 것 같다.
20일 청주 봉명동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솜씨가 좋은 재규엄마가 새벽부터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잠깐 쉬다가 서울로 가면서 복대동에 계시는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는데 그 사이에 장모님께서는 담근 술과 식혜 과일까지 준비하여 차에 실어 두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라면으로 점심을 하고 신촌에 있는 대현교회에 가서 예배를 마친 박회장과 만나 제기동 사무실로 함께 이동했다. 해가 떴다가 비가 내리고 고르지 못한 날씨에 오늘도 우즈벡에 대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들을수록 자신감은 생기지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보수가 적어 가족 생계나 아들 딸 학비까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아예 우즈벡으로 이민을 가는 수밖에 없는데 도피하는 듯한 나약한 모습보다는 현실과 맞서는 더 당당한 내 모습을 찾아야 할 때이다. 더구나 거동도 못하시고 생사의 기로에 계시는 어머님을 두고 나만을 위해 떠날 수는 없다.
21일 오늘 아들이 방학이고 아내는 수업을 오전으로 옮겨 일찍 나간다. 세무사를 운영하는 고향친구 부친상이라 오전에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치고 고속버스를 이용하려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용산역에 가서 KTX를 타고 익산역까지 갔다. 오전에 흐리더니 오후에는 해가 보이고 차창 밖으로 변함이 없는 고향의 들판과 산들이 반갑기만 했다. 3시경 익산역에서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들어가니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텅빈 정류장에 낡은 버스 몇 대만 더위를 이기고 있고 그나마 김제행 버스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김제시 초입에 위치한 새만금 장례식장까지 도착하여 1만4천원 요금을 지불했다. 상가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시간을 보내다가 김제역에서 오후 6시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용산역에 돌아오니 밤 9시가 되었다. 저녁을 먹으려고 엊그제 맛있게 먹은 남영동 연흥식당으로 억지로 갔는데 오늘은 돈만 날린 느낌이다.
22일 사랑하는 아들의 생일이다. 아침에 식탁에 케익을 준비하고 미역국도 끓이고 생일축하 노래도 불렀다. 언제나 오늘이 되면 아들이 태어난 기쁨에 청산학원 입구 공중전화 박스에서 어머니에게 맨 먼저 소리를 내며 전화했던 아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부지런히 오전 강의를 마치고 충무로 동국대 산부인과로 들어서니 장모님께서 나를 붙들고 바로 태어난 아들이 얼마나 힘이 세고 체격이 큰지 손과 발을 허공에 날린다고 자랑을 한다. 설마 이제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손과 발을 허공에 젖는다는 것인지 산부인과 유리창 너머로 간호원이 보여주는 아들을 보니 눈도 뜨지 않은 채 쌔근쌔근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외손자에 대한 장모님의 기쁨이 과장되어 전달되었을 것이고 그런데 오늘은 열다섯 살 아들이 열아홉 살만 되면 장가를 간다고 떠들고 다니니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체육관 운동을 마치고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소공원 쉼터로 나왔고 점심시간이 되어 어머니께서 평소 좋아하시는 국수를 사다가 함께 먹었다.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와 바로 앞 벤치에 앉아있는 아들,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는 노숙자의 모습일지라도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편안함과 행복감이 있는 시간이었다. 저녁에 김성만 연락을 받고 노량진에 가 보니 학원을 오픈한다고 시설을 했고 동작구청 뒤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김치를 사려고 독립문 현대아파트 상가에 들어가 구입했는데 맛이 별로 없다. 늦은 시간에 아들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하여 배달을 시켰고 잘 먹는 아들에게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성 있는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했다.
23일 날씨가 흐리다. 생선과 김치로 아침식사를 했다. 체육관에 가야하는데 일처리가 많아 포기하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차를 몰고 북부지원 앞 법무사에 가서 신설동 명도소송 진행과정을 확인하고 동대문 세무서로 이동하여 부가세를 신고했다. 12시가 지나 요양원으로 가니 어머니께서는 점심을 하고 계시고 식사 후 오늘도 밖으로 나와 1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 곳에서 거의 1개월을 보내시는데 퉁명스러운 간호사들이 무서워 눈치를 보고 적응을 못하시는 느낌이고 오늘도 점심식사 중에 침대를 올리지 않아 몸이 뒤로 넘어질 상황이었다. 집으로 오면서 라면 1박스를 샀고 점심을 먹은 후에 비가 부슬부슬 오는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니 과외를 마친 아들이 재미있게 TV를 보고 있다. 저녁에 남영동에서 평소 내 심중을 잘 안다는 영식이와 우즈벡 건에 대하여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도 100% 반대를 한다.
24일 밤새 비는 내리고 새벽에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어 눈을 뜨니 8시20분이다. 방학이라고 아침 식사가 너무 늦어 시간활용이 비효율적이다. 내일부터는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아침시간을 이용해야겠다. 아내는 수업하러 가는데 아들은 같은 학년 친구가 이 시간에 새로 들어왔다고 논술 참석을 거부하여 가까스로 달래어 보냈다. 비가 내려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체육관으로 가서 오후 1시까지 운동을 했다. 요즈음 나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보내지만 훗날 후회가 없도록 어머니 자주 뵙고 잠재력이 있는 내 능력을 발휘할 미래를 준비해 갈 것이다.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오늘도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뵈었다. 이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알 수는 없어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비가 오는 이유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좁은 로비에서 보내니 답답했다. 저녁에 여동생이 들어와 어머니를 맡기고 집에 와서 영식이가 준 도루묵 생선찌개를 만들어 먹었더니 생소하기는 했지만 담백하고 맛이 있다. 저녁에 용구아빠한테 위생병원 유자원(요양원)에 8월6일 입소하기로 구체적인 날짜를 정했다고 전화가 왔다. 바쁠텐데 신경을 써 주어 고맙고 착한 동생의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25일 김치찌개로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아내와 아들 딸은 조조영화(적벽대전)을 관람하러 간다. 오늘은 논술수업이 오후에 있기 때문에 일찍 영화를 보면 할인도 되고 좋을 수 있겠다. 여동생과 광선형은 어제 용구아빠가 정해둔 위생병원 내부에 있는 요양원(유자원)을 방문하여 흡족하다며 최종 8월6일 지금의 한솔요양원에서 옮겨가기로 정식계약을 했다고 연락이 온다. 나도 일전에 방문을 하였더니 새 건물로 조용하고 쾌적하고 정원에 둘러싸여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10여일 후 입소하게 될 유자원은 어머니의 마지막 휴양지이고 중간에 편찮으시면 옆에 있는 위생병원을 혹시나 돌아가시는 날에도 이곳 영안실을 이용하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안산에 올라가 걷고 집으로 내려와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으니 영화를 본 가족들이 모두 들어오는데 동행하지 못해 미안함이 많았다. 오후에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뵈면서도 짧은 인생에 헤어져만 살다가 거동도 못하는 마지막 시점에 자식이라고 서 있으니 회한이 많았다.
26일 비오는 일요일이지만 평소처럼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 딸은 8시가 지나고 9시가 되어도 쿨쿨 잠을 자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나는데 늦게 일어난 아내는 안방 TV까지 막고 서서 어디론가 한참 문자를 보낸다. 밥이라도 올리고 찌개라도 만들어 놓고 하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하여 아침부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식사도 거르고 집을 나와 24시 식당을 찾아가 부대찌개를 주문하여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인격이나 지식이 필요하지만 순간순간 대처하는 현명함과 지혜도 그에 못지않게 더 중요한 요소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가를 알아내어 눈치 빠르게 대처하고 배려하는 현실적인 삶이 책만 읽고 이론만 따지는 삶보다 낫다는 말이다. 화곡동으로 가서 고향 친구 형준이와 점심도 하고 저녁식사도 함께 하며 성장한 그의 아들과 딸에게 용돈을 주고 제과점 빵을 사 주었다.
27일 어제 늦게 들어왔으니 당연히 식사를 못 할 만큼 머리가 아프고 일어나기도 쉽지가 않다. 10시경 일어나 생각하니 작년에는 주말도 없이 강의를 하여 힘들었는데 요즘은 반대로 일이 없어 불만이니 사람은 역시 변덕스러운 존재다. 무슨 일을 하든 땀을 흘린 뒤의 휴식이 즐거운 것이니 나도 머지않아 일과의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11시에 안산을 오르니 연일 비가 많이 내린 탓인지 약수터에서는 콸콸 물이 흐르고 있다. 2시간 땀을 흘리고 산에서 내려와도 정신이 몽롱하더니 식사를 마치고 오후가 되니 마음의 안정이 찾아든다. 3시에 딸과 함께 어머니 요양원에 들어가니 오늘은 지팡이를 짚고 걸으셨다고 하여 복도에서 다시 손을 잡고 연습을 더 했다. 저녁에 요양원을 나와 집으로 오면서 유진상가에 들어가 딸과 함께 메밀국수 4인분과 아내가 좋아하는 생선초밥 그리고 포기김치까지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가족 만찬을 열었다.
28일 7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이다. 날마다 일을 처리해도 또 할 일이 생긴다. 북한산에 갈까 생각하는데 영식이 전화가 와서 우리 집 옆에 위치한 안산을 가 보자고 한다. 나는 매일 다니는 곳이지만 영식이는 처음이라고 한다. 10시에 한화아파트에서 만나 중턱을 돌다가 봉원사로 내려가 사찰을 보고 다시 올라와 정상부근에서 점심을 먹었다. 시간을 보내고 아파트 근처에 내려오니 습도가 높아 목욕을 한 것처럼 몸이 땀에 젖었다. 영식이와 헤어지고 요양원에 가려다가 시간이 늦어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혼자 저녁을 준비하여 먹고 TV를 보며 쉬고 있는데 아내와 아들 딸은 외식을 하고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며 들어온다. 모두 활기차고 신나는 표정이지만 고뇌 속에 살아가는 내 심정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29일 오늘은 중복으로 1년 중에서 가장 더운 날이라고 한다. 학원에서 강의할 때는 과일도 나오고 선생들과 영양탕도 즐기고 했는데 올해는 과일은 고사하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다. 아침에 개봉동으로 조사장을 만나러 가다가 전화가 와서 광명시청으로 온다기에 곧장 거기로 갔다. 조사장을 기다리는 중에 신설동 1층에서 전화가 오는데 또 물이 새어 옷이 젖었다고 와 달라고 한다. 지난 번 합의할 때 더 이상 건물주는 책임지지 않을 것이니 관리를 하든지 이사를 가라고 약정했는데 젊은 관리인이 상황도 모르고 전화를 한 것이다. 조사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어머니한테 가면서 건물에 가보니 물이 나온 흔적도 없는데 아예 옷을 빨아서 걸어 두었다. 지난번처럼 억지를 부리면 또 돈이 나올까 술수를 부렸지만 내가 현장에 나타나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다. 요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TV를 보는데 8시가 넘은 밤에 아들이 수학과외를 받으러 나간다. 방학 중이니 오전이나 낮에 다니지 않고 늦은 시간에 나가다니 기분이 찜찜한 저녁이 되었다.
30일 아침에 백숙으로 식사를 했다. 어제 중복 날 먹을 것을 딸의 머리카락을 커트시키고 늦게 들어오다 보니 시간이 늦어 오늘 아침에 먹는다고 한다. 5일 만에 체육관으로 운동을 하러 갔더니 휴가철이라 썰렁하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몸무게를 보니 64Kg 나간다. 정상체중이기는 하지만 허리둘레만 불어나지 않는다면 조금 늘려볼 생각이다. 운동 마치고 역촌학원에 가니 원장은 나를 반기는데 아직도 건물 2,3층이 텅 비어 있어 임대료도 못 받고 많은 고민에 쌓여있다. 학원으로 2,3층을 사용하며 투자를 많이 할테니 원장으로 이끌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나로서는 월급이나 근무조건이 우선이라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어머니 요양원에 갔다가 저녁 드시는 것을 보고 집으로 와서 아침과 똑같이 남은 닭 국물로 저녁을 먹었다.
31일 7월도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났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고 아내와 딸은 거실에서 자고 있다. 신문과 책을 보며 아침을 맞이했고 8시에 식사를 하고 10시에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하였다. 예전 같으면 해마다 휴가를 가서 즐겁게 다닐 시간인데 올해는 쉬는 날이 대부분이니 휴가 기분도 없지만 갈 생각도 없다. 오늘 기온이 경북지역에는 35도라고 하는데 서울은 30도 정도로 간간이 비까지 뿌려 심한 더위는 아니다. 운동 마치고 집에 오니 아내와 딸은 각각 학원에 가고 아들은 도서관으로 결국 나 혼자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신설동 2층 사장은 늦었다면서 임대료를 보내왔고 저녁에는 영식이의 사업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이정렬이라는 나이든 사장을 만나 필리핀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일을 마치고 영식이와 장안동에 사는 정식이까지 함께 식사하며 7월의 무더운 밤을 보내고 12시가 지나 집에 들어왔다. 이제 8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