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평화가 온 누리에 누가복음 2장 1-14절
성탄 축하드립니다. 성탄의 예수님이 그리고 성탄의 사랑과 평화가 이 시대 가난한 자리, 빈자리, 아픈 자리, 고난 받는 자리, 절망의 자리, 삶의 트라우마로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자리, 구석구석을 찾아가 평화와 위로와 사랑과 회복, 치유로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의 말씀은 성탄의 자리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고 많은 곳 중에서 마굿간의 말 밥통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탄생의 소식은 권력자요 그 시대에 잘나가는 사람들이 아닌 들에서 양을 치면서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누가복음의 이 예수 탄생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리스챤의 자리가 어떠해야하는지를 잘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태리에 사는 친구가 다녀갔습니다. 해마다 한국에 들어와 한달간 전시회를 열고 돌아가는 친구입니다. 올해도 아가서의 정원 전시회를 했고 올해는 은평구 천사원이라는 장애인복지센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다양한 장애인들이 전시 공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에게 그림 전시회를 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여수 도성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여수에 있는 도성마을은 소록도보다도 먼저 한센인들이 살았던 곳으로 1970년대부터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한센인들이 정착해서 사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한센인들은 치료를 마치고 몸이 회복되어 완치가 되어도 완전히 사회로 돌아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든 정착촌이 여수 도성마을입니다. 처음에는 병력자들 가족 친척 자녀들 약 200여명이 거주했었고 지금은 병력자들만 약 5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반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긴 했지만 적지 않은 세월 이 마을은 완전히 사회와 고립되어져 있었습니다. 내가 원해서 병이 걸렸던 것도 아니고 병에 걸려서 이제는 다 나았는데도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하늘 아래 맘 편히 정착해서 살 수 있는 곳이 없었고 그나마 정착해서 사는 곳도 완전히 사회와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립된 마을을 사회와 연결시키고자하는 이들의 노력이 10여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 목회하시던 전도사님(송찬석)과 박성태님이라는 화가 작가가 이곳을 알리기 위해 2014년부터 전시회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듬해 그 마을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애양청소년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이 전시회에 함께 합니다. 전시회를 하니 인적이 없던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참에 갤러리를 마을에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을에 있는 집 하나를 개조해서 갤러리를 만듭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3년전이 2021년의 일입니다. 그후 매달 전시회가 열리고 음악회와 함께 다채로운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전시회를 전후해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한번은 외부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었었는데 그게 도성마을이 생기고 외부음식이 들어온 게 처음이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전시회는 수없이 많은 주제의 전시회로 연결됩니다. 한센인들의 마을과 삶을 담은 전시회부터 그들의 침묵, 그곳의 4계절, 여순반란사건, 편견, 혐오, 차별,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한 전시회에 최근에는 고 김민기 선생님을 위한 헌정 전시회 “서러움 모두 버리고”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평생 김민기 선생님과 인연을 가져온 73세의 고령의 나이에 전시회를 연 이나경 작가는 헌정전시를 준비하면서 너무 몰두한 나머지 생사의 고비를 넘기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전시회가 단순한 개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는 게 아니라 소외진 구석의 존재들을 연결하고 매개하고 회복하고 살려가고 관계하는 매체로써 선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도성마을 에그갤러리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연인원 5천명이 이른다고 합니다.
병력자들과 그 가족들외에는 사람이 없던 마을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생기가 돌고 사람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예술과 음악이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고 장터와 바자회를 열어내고 소통과 이해와 공존의 장을 만들어갑니다. 그 친구가 그러면서 말합니다. 우리 시대 가장 소외된 곳에서 자기를 그림을 통해 사람과 사람들의 연결시키고 싶다고... 누가에서 이야기하는 성탄의 자리를 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한해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쩌면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가 함께 잘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구미 옵티컬 하이테크에는 2년전부터 옥상에 올라가 복직투쟁을 하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일본기업으로 2022년 10월 화재로 법적 청산절차를 받고 1300억의 화재보상금을 받고는 고용승계없이 희망퇴직자만을 받고는 나머지를 그냥 해고 처리해 버렸습니다. 고용승계를 외치면서 두 분의 여성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시작한지 두해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곁에서 손잡아주고 함께 집회로 연대해주는 예수살기, 고난함께, 촛불교회 등의 연대단체들이 있습니다.
서울의 동서울터미널 재개발 사업(1조 8000억사업)도 명동2지구 재개발 사업도 현대중공업과 (KCHAMC)라는 업체들이 그곳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세입자들에 대해 아무런 대책없이 일방적으로 퇴거 명령을 내리면서 시작된 싸움입니다. 지난 주에는 명동의 한 가게가 강제 집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아무런 대책없이 쫒아나야하는 그 자리에서 울부짖으며 하소연하는 그들의 곁에서 촛불하나 켜들고 손잡아 주는 수없이 많은 연대 손길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 스텔리데이지호 유가족들 곁에서 참사의 진실과 안전사회를 염원하며 함께 하는 연대의 손길도 있습니다. 이 시대 성탄의 자리를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너무나 소중한 일상의 성소를 군화발로 함부로 짓밟은 권력을 향해 응원봉으로 철퇴를 가하고 전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전국에서 올라온 전봉준 투쟁단을 고립된 남태령고개로부터 지켜내고 28시간 만에 경찰의 차벽을 뚫어낸 20대의 젊은이들 역시 이 시대 성탄의 자리를 지킨 천사들의 합창입니다. 그리고 야만과 폭력 속에서도 한 해를 열심히 살아온 이들, 다양한 병환으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계시는 부모님 곁에서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길일 수도 있는 그 길을 길동무로 함께 동행하시는 분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그 슬픔도 견디기 힘들텐데 힘든 식구들, 자식들 곁에서 내색하지 않고 손잡아주는 이들, 온전히 혼자서의 몸으로는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말없이 동행하는 이들(그 모든 수고를 온몸으로 껴안으며) 그리고 가장 고독하고 힘들 때 스스로를 홀로 버려두지 않고 다시금 일어설 설 수 있도록 애썼던 시간들 / 모든 이들은 이 시대 성탄의 자리를 가장 빛나게 밝혀 주시는 분들입니다.
그런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성탄의 평화와 사랑이 이들 모두에게 함께 하시고 성탄의 예수님과 함께 온누리에 생명과 평화와 사랑의 세상을 낳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