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처음으로 농협 센터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반이 10개도 넘는데 모든 반이 정원을 꽉 채웠다. 나는 후보로 겨우 들어갔다. 좁은 교실에 15명 안팎의 고수들이 고강도의 스트레칭을 한다. 나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어서 속도 상하고 민망했다. 오랫동안 절도 많이 했고, 거의 매일 걷기며 산행으로 다져진 몸이라 쉬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요가 때의 근육은 평소 쓰던 근육과 다르니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2주 뒤,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봉산면사무소 옆에 건강생활지원센터가 신축되어 3월부터 요가 강습이 있다는 거다. 집과의 거리도 가깝고 무료이다. 단박에 대항면 건강생활지원센터로 달려갔다.
건강생활지원센터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천시에서도 변방인 촌구석에 상상 이상으로 크고, 반듯하게 잘 지었다. 우리나라의 복지가 이 정도까지 왔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사는지 우리나라 사람만 잘 모른다나. 농협 센터에서 고강도의 훈련 덕인지, 이곳 요가는 무척이나 쉽고 재미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낮에는 농사일하고, 밤에 건강 체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다. 뭉친 근육을 풀고 즐겁게 춤추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있다. 일주일에 세 번, 시간도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느긋하게 T.V를 시청하는 저녁 7시 반부터 1시간 한다. 요가봉과 목침 2개, 대나무 막대, 짧은 줄넘기할 줄을 나누어준다. 우선 기구를 이용해서 굳은 근육을 푼다. 목과 허리, 골반, 종아리를 집중적으로 푼다. 몸을 돌리고, 빨래처럼 비틀어서 꽉 짜고, 문지르고, 두드리고, 복식호흡을 하고, 트로트에 맞추어서 댄스를 한다. 나는 댄스가 좋다. 음악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몸이 출렁한다. 팔다리, 허리, 머리를 전후좌우로 최대한으로 돌리고 비틀고 흔든다. 누가 흉보지 않나 하는 생각은 금방 사라진다. 순간순간의 동작에 최대한 집중하니 그야말로 무아지경이다.
나는 웃을 때도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리고 이빨을 보이면서 함박 웃는다. 이렇게 하면 얼굴근육 운동도 되고, 마음도 활짝 열린다. 마지막으로 대나무 막대를 두 발로 딛고 음악에 맞추어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아하하하~~크게 웃는다.
땀으로 젖고 후끈 달아오른 온 몸에 폭우 뒤의 냇물처럼 혈류가 콸콸콸 흐른다.
일단 작심하면 결석은 없다. 나의 최대의 장점은 성실, 그다음은 최선이다.
넉살 좋게 생긴 남자 강사가 “언니가 제일 잘해요. 언니는 뭘 해도 잘하겠어요.” 한다.
빠짐없이 나오지, 열심히 하지, 기특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던 저녁 요가가 11월로 접어들자 해가 짧아지고 밤이 되자 몹시 추웠다. 오후반으로 옮겼다. 오후반은 몽땅 댄스이다. 두 번은 줌바댄스, 한 번은 라인댄스이다. 라인댄스는 빠르지 않고 왈츠처럼 우아하면서도 요가도 겸하니 따라하기 쉽다.
줌바댄스! 사람들이 넘 춤이 빨라서 따라하기 힘들다고 해서 잔뜩 겁을 먹었는데 웬걸~~, 라인댄스보다 더욱 재미있고 신났다. 속도가 빨라서 그렇지 하나하나의 동작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가요에 맞추어 리듬을 몸으로 익혀야 하니, 수업에 빠지면 안 된다. T.V에 요즘 나오는 아이돌 춤과도 닮았다. 그 역동적이고 빠른 템포는 원시시대 수렵, 기마인이 떠오른다. 드디어 월요일에 한 번씩 나가는 일어회화반도 접었다. 리듬을 익히려면 수업에 빠져서는 안 되겠기에. 춤바람 신바람이 이렇게 나를 강타할 줄 나도 몰랐다. 아직도 나도 모르는 내가 무수히 많다는 사실도 즐겁다.
내가 춤에 빠지는 이유는 ‘무아’이다. 무아는 불교의 깨달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진화론에 따르면 고정불변의 자아는 없다.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으면서도 무아라고 하면 고개를 젓는다. 분명 타자와 구별되는 고유한 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것은 실은 수많은 기억과 체험과 생각과 감정의 혼합물이다. 문제는 무아인 줄 알면서도 쉽게 자아를 해체하지 못한다. 삶의 변곡점에서 맞닥뜨리는 오욕칠정의 강렬한 감정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날이면 상기증, 불면증이 찾아온다. 이 자아를 해체하기 위해서 절을 수백 번, 수천 번하고, 명상하고, 참선하고 산행을 했다. 물론 효과가 있다. 그런데 춤도 그러한 단계로 단박에 올려준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음악에 맞추어 몇 곡만 추어도 복잡한 머릿속이 비워진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얼굴근긴장증 때문이기도 하다. 벌써 이 증상이 시작된 지 7년 반이 넘었다. 참으로 이상도 하지, 대부분 신체는 아파도 며칠 쉬고 약을 먹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이 증상은 조금씩 심해진다. 말하지 않으면 전혀 불편하지 않다. 말하려면 얼굴근육을 누군가 세게 잡아당기듯 말하기 힘들고 혀를 자꾸 씹는다. 최근에 구미 순천향병원 신경과에 갔더니 대뇌의 오류인데,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희귀병, 난치병이라고 한다. 보름 동안 두 번의 약을 바꾸어 먹었는데도 진척이 없자 서울삼성병원 신경과에 가보라 한다. 12월 19일, 삼성병원에 가서 턱관절 근처에 보톡스 주사를 맞았다. 다행히 서울대병원에서 맞았던 보톡스처럼 얼굴이 심하게 굳지는 않지만, 만족할 만한 효과는 아니다.
어쩌겠는가? 내 특유의 치심법은 그래도 언어로 소통은 하고, 말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신을 토닥인다. 그리고, 진인사대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