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와 장.감리교회 구원론의 차이? [질의 응답][2]
박진하
작성일시 2023-01-22 17:10:42 조회 105 추천 4 반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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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명광미디어 설교 댓글란에 오늘 어느분이 질문을 주셨습니다.
[질문]
닉네임 : 도캐몬
장.감리교를 포함하여 개신교회가 전하는 칭의로 구원 받는 진리는
재림교회도 같이 믿고 있는데 성화를 믿는 것도 같다고 봅니다.
모두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요.
즉 율법과 상관없다 주장하는 교회나 율법을 순종해야 한다는 교회나
결국은 율법을 완전히 지켜 행실까지 완전을 어느 교회도 주장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결국은 죄를 짓다 구원받는 다는 결론은
모두에게 동일하며 정도의 차이일 뿐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굳이 안식일 지켜야한다고 강조해야 의미가 없지 않나요?
다른 신을 하나님과 함께 섬기는 죄나 안식일 안 지키는 죄나
남을 미워하는 죄나 어떤 죄를 지어도 죄 안짓는 상태에서 구원은 동일하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세천사의 기별이 다른게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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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jacop park
도캐몬님, 먼저 좋은 질문에 감사를 드립니다.
재림교회 구원론은 '어차피 죄 짓다가 구원 받는다'가 절대로 아닙니다.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으신 듯 합니다.
부자 법관 청년이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했을 때
예수님이 그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율법의 문자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 받을 만한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 즉 성경에서 말씀한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구별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실 일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순종하고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는 것 ,
부모를 공경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칭찬하실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니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 1921,:22)
'온전하고자 할진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온전'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것은 바로 율법 곧 십계명의 문자 뿐 아니라
문자가 가리키는 '정신'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 여자와 실제로 간음하는 것만이 간음이 아니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나 하지 말라는 것이고,
칼과 총으로 사람을 죽여서만 살인이 아니고 형제에게 분노해도
살인이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고 십계의 문자를 정확하게
지켰다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했으니
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즉, 율법의 문자만 꼬박꼬박 지키며 그 정신인 이웃 사랑은
실천하지 않는 율법주의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오직 예수 믿음, 오직 예수하면서 마치 사랑의 완성을
실천하는 것처럼 말만하고 문자인 제칠일 안식일조차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방탕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문자인 '간음하지 말라'는 것도 지키지 못하면서
그 정신을 실천한다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재림교회의 구원론은 '우리는 어차피 죄인이기에
죄를 짓다가 십자가의 은혜로 무조건 구원 받는다'가 절대로 아닙니다.
진정한 세천사 기별을 알고 실천하면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안식일을 통해 경배하는 자들은,
적어도 십계명의 문자적인 부분들은 기본적으로 지키면서도
그 문자가 가리키는 정신인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바라보고 오직 예수 믿음으로 살아가는
진실한 성도들은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장하고
자라나서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진실한 성도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경주에 경주를 거듭하면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점인
그리스도 예수와 같은 완전에 이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셔서 죄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모본적 삶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여야 할 푯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간증대로 아래 말씀처럼 우리도 살면 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빌 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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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하 (2023-01-22 20:06:31)
이후에도 질문자의 질문이 계속되어 이어서 올려 드립니다.
[질문] 도캐몬
감사합니다.
목사님이 저를 잘 모르는 것처럼 저도 목사님을 잘 모릅니다.
궁금하여 몇가지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1)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믿습니다.
요약하면 칭의와 성화를 믿고 가르칩니다.
즉 뜰과 성소와 지성소에 대하여 믿고 가르칩니다.
뜰이 칭의라면 성화는 성소를 말하고 지성소는
이땅에서 이루어져야할 무엇을 가르치나요?
이땅에서 지성소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며
지성소에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하고
예수님은 지성소 사업을 끝내셔야
비로소 구원받은 자들을 데리러 오실 수 있는 것이라 봅니다.
지성소에서 나오시고 일곱재앙 때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된다고 믿으시는지요?
천국 갈 사람들은 그때도 죄짓고 천국에 가서도 죄를 지어도 되나요?
언제 어떻게 천국 가는 사람이 죄를 안짓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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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하 답글]
도캐몬님은 아마도 지금은 지성소 시대이니
지성소에서 주님이 나오시기 전에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죄 짓지 않는 완전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겝니다.^^
참 듣기로는 그보다 좋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님들과 같은 분들이 그런 주장을 하면서
강조점은 '자신들의 행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의 '행위'가 '의(義)를 이루고
자신을 완전하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제가 도캐몬님께 묻겠습니다.
님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날 때,
그래서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믿음으로 입은 그리스도의 옷은 불완전했나요, 완전했나요?
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그 자녀의 신분은 불완전했나요, 완전한 신분이었나요?
님이 오직 예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을 때,
그 의로다함은 불완전했나요, 아님 완전했나요?
여기서 내가 믿음으로 입은 그리스도의 옷이 불완전한 것이었다고 말할 사람 없지요?
여기시 내가 믿음으로 받은 의가 불완전했던 것이라고 할 성도 없지요?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이, 오직 예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때 그 의는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부터 최후까지
오직 그 예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성소 시대인 바로 지금, 예수님께서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원하고 계시지요?
칭의를 받고 성화 중에 오직 예수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성장하고 자라나는 우리는
지성소에 계신 예수님의 중보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들이 도말되는 놀라운 경험을
바로 지금 대속죄일 기간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가 끝나고 하늘 지성소에서 나오실 때,
인류에 대한 은혜의 시기는 끝납니다.
그때까지 오직 예수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산 성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고 중보자가 없는 7재앙의 시기를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도 역시 똑같은 예수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하여,
예수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는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개국 이래 없던 환난의 시기를 견디어 낼 것입니다.
주님이 지성소에 계신 지금 우리가 어떻게 완전해 질 수 있을지에 대해
다음 아래 말씀을 잘 읽어 보시고 그 믿음으로 사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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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자 지성소에 서 계신다.
그곳에서 그분은 자기의 백성을 매 순간 나타내어
그분 자신 안에서 완성시키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 앞에 그렇게 제시된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비를
이용하여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고 방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죄의 봉사자가 아니시다.
오직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할 때만
그분 안에서 완전해지고
사랑하는 자녀로 그분께 가납된다.
우리 자신의 선한 행실로는 결코 완전함을 이룰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영혼은 자기 자신의 의를 포기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불완전하고, 자신의 회개가 미흡하고,
자신의 가장 강한 믿음도 연약한데 불과하고,
자기의 가장 값진 희생도 빈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발 아래 겸손하게 엎드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음성이 그에게 들려온다.
놀랍게도 그는 “그대는 그분 안에서 완전하다”라는 기별을 듣는다.
이제 그의 영혼은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그는 자기 자신 안에서 가치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공로 있는
어떤 행위를 발견하고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 (믿음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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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지성소 시대인 지금 우리가 완전해지는 것 역시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할 때만 그 분 안에서 완전해진다!!!!!!!!!!"
7재앙이 내리는 환난의 시기 중에도, 아니 세상 끝날까지 오직 십자가를 붙들고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자들만이
"그대는 예수 안에서 완전하다"라는 선언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박진하 (2023-01-22 21:19:10)
[질문]
예수안에 있다라는 명제가 관건이네요
고범죄를 지으면서도 나는 예수안에 있다라고 단언할수 있을지...가 관건인듯합니다.
혹시 위의 말씀과 대비될만한 우리의 행위가 완전해야한다 라는 말씀은 없을지 찾아봐야겠네요.
[박진하 답변]
고범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성내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등 등
그것 모르는 성도는 없지요.
그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고범죄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짓는 죄들은 대개가 다 알고 짓는 죄들이지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 모두가 다 죄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선을 행하고 싶은데 내 속의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아가는 그러한 고범죄의 경험들이 무수하지 않나요?
그래서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오직 예수 안에 믿음으로 거하는 것입니다.
매순간 주님의 십자가 아래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안전한 "완전"은 없습니다.
뭔가 남들이 못하는 행위의 완전을 이루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베드로처럼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예수 안에서 완전한 사람이며,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서서"하며 가슴을 치는 세리와 같은 자들이
주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고 완전한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