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渠荷的歷 園莽抽條 (거하적력 원망추조)(백운)
【本文】 渠荷的歷 園莽抽條 거하적력 원망추조
도랑에 핀 연꽃은 아름답고 깨끗하며 동산의 풀들은 줄기를 뻗고 있다.
【訓音】
渠 도랑 거 荷 연 하 的 과녁 적 歷 지날 력
園 동산 원 莽 풀 망 抽 뽑을 추 條 가지 조
【解說】
이번 장부터는 은일(隱逸)의 삶 속에서 자연과 살면서 느끼는 사시사철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장에서는 봄과 여름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渠荷的歷 園莽抽條(거하적력 원망추조)
도량에 핀 연꽃은 아름답고 깨끗하며 동산의 풀들은 줄기를 뻗고 있다.
우선 글자의 자원(字源)부터 알아보고 그 뜻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거(渠)는 수(水) + 구(榘)의 형성자(形聲字)로, '구(榘)'는 '자[尺]'의 뜻입니다. 자를 대고 인공적으로 만든 '도랑, 개울'의 뜻을 나타냅니다.
하(荷)는 초(艸) + 하(何)의 형성자(形聲字)로, '하(何)'는 갑골문(甲骨文)에서는 사람이 물건을 어깨에 맨 모양을 형상화하여, '짊어지다'의 뜻을 나타내었습니다. '초(艸)'를 붙이어, '연(蓮)'의 뜻도 나타냅니다.
적(的)은 일(日) + 작(勺)의 형성자(形聲字)로, '작(勺)'은 국자의 상형(象形)이고, '일(日)'은 밝은 해의 상형(象形)입니다. 많은 것 중에서 하나만을 떠올려서 두드러지게하다의 뜻에서, '밝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이마가 흰 말의 뜻을 나타내며, 파생(派生)하여, '과녁'의 뜻도 나타냅니다. '적(的)'은 '적(旳)의 속자(俗字)입니다.
력(歷)은 지(止) + 력(厤)의 형성자(形聲字)로, '지(止)'는 발을 본뜬 형상이고, '력(厤)'은 옥내(屋內)에 벼를 죽 줄지어 놓은 모양입니다. 적당히 줄 이은 벼 사이를 걷다의 뜻에서, '지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원(園)은 위(囗) + 원(袁)의 형성자(形聲字)로, '원(袁)'은 '원(圜)'과 통하여 '두르다'의 뜻입니다. 담을 둘러친 '동산'의 뜻을 나타냅니다.
망(莽)은 견(犬) + 망(茻)의 형성자(形聲字)로, '망(茻)'은 '풀이 무성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견(犬)'을 덧붙여서, 개[犬]의 몸이 숨을 정도의 '풀덤불'을 뜻합니다.
추(抽)는 수(手) + 류(由. 畱)의 형성자(形聲字)로, '류(畱)'는 '깊은 구멍'의 뜻입니다. 구멍으로부터 물건을 빼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잡아당기다, 빼다, 뽑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 류(畱)'는 '머무를 류(留)'의 본자(本字)입니다.
조(條)는 목(木) + 유(攸)의 형성자(形聲字)로, '유(攸)'는 '사람의 등에, 줄기를 이루어 흐르는 물을 끼얹어 씻음'의 뜻입니다. 나무의 줄기를 이루는 부분, '작은 가지'의 뜻을 나타냅니다. '곁가지, 작은 가지'를 뜻합니다.
거하적력(渠荷的歷)은 여름의 정경을 표현한 말인데 무슨 뜻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거(渠)는 '도랑, 개천'이란 말입니다. 거(渠)는 사람이 물이 흐르도록 수로(水路)를 낸 것을 말합니다. '하자천생지(河者天生之)요 거자인착지(渠者人鑿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은 하늘이 만든 것이고, 도랑은 사람이 판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또, 거(渠)는 연(蓮)을 뜻하기도 합니다. 연꽃을 뜻하는 말 중에 '부용(芙蓉)'이란 말도 있지만 '거하(渠荷)'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荷)는 '메다', '짐'이란 뜻도 있지만 '연꽃 하'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연꽃'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연꽃은 매우 말쑥하고 조촐하기에 이렇게 이름한 것입니다.
거하(渠荷)는 '도랑엔 핀 연꽃'을 말합니다. 또, 거하(渠荷) 자체는 '연(蓮)의 이명(異名)이기도 합니다.
적(的)은 흔히 '과녁 적'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밝을 적, 고울 적'으로 쓰였습니다. 역(歷)은 '지낼 력'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밝을 력, 분명할 력'으로 쓰였습니다. 역(歷)은 적(的)과 같이 '밝은 것을 뜻하므로 적력(的歷)은 '희고 고운 모양, 선명(鮮明)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따라서 적력(的歷)은 '아름답고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이 뜻을 모두 종합해 보면 거하적력(渠荷的歷)은 '도랑에 핀 연꽃은 아름답고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거하적력(渠荷的歷)은 아름답게 피어난 연꽃을 표현한 말입니다.도랑은 더러운 진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연꽃은 이 더러운 진흙 속에서 피어납니다. 아름답고 청초(淸楚)하게 피어납니다. 그 고아(高雅)한 자태는 말쑥하고 조촐하여 뜻있는 군자는 가까이 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꽃입니다.
거하적력(渠荷的歷)은 《법구경(法句經)》 『화향품(華香品)』에 나오는 게송을 떠오르게 합니다.
如作田溝 여작전구 밭둘레에 파 놓은 진흙 도랑이
近于大道 근우대도 큰 길에 가까이 있다고 해도
中生蓮華 중생연화 그 속에서 향기로운 연꽃 피어나
香潔可意 향결가의 맑고도 향기로워 즐겁게 한다.
연꽃을 사랑한 사랑한 사람들은 많을 것입니다. 그 중 중국 송대(宋代)의 철학자 주염계(周濂溪) 선생은 연꽃을 지극히 사랑하여 천하의 명문 《애련설(愛蓮說)》을 남겼습니다.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애련설(愛蓮說)
「물과 뭍의 풀과 나무의 꽃은 사랑할 만한 것이 대단히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히 국화를 사랑하였고,
이씨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매우 사랑하였다.
나는 홀로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흙탕물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함을 사랑한다.
속은 비어 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을 뻗지 않고 가지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이 깨끗하게 서있으며,
멀리서 바라볼 순 있어도 함부로 기지고 놀 수는 없음이로다.
내 이르노니 국화는 꽃 중의 은자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자요,
연은 꽃 중의 군자라 하겠다.
아! 국화를 사랑함은 도연명 이후에 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드물도다.
연을 사랑함이 나와 같은 자 몇이나 될까?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은 의당히 많을 것이다.
水陸草木之花가 可愛者甚蕃이라. 수륙초목지화 가애자심번
晉陶淵明獨愛菊하고 自李唐來로 世人甚愛牧丹이라.
진도연명독애국 자이당래 세인심애모란
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하고 濯淸漣而不夭라.
여독애연지출어어니이불염 탁청련이불요
中通外直 不蔓不枝하고 香遠益淸하며
중통외직 불만부지 향원익청
亭亭淨植하여 可遠觀而不可褻翫焉이로다
정정정식 가원관이불가설완언
予謂菊은 花之隱逸者也요 牧丹은 花之富貴者也요 蓮은 花之君子者也라
여위국 화지은일자야 모란 화지부귀자야 연 화지군자자야
噫라 菊之愛는 陶後鮮有聞이오 蓮之愛는 同予者何人고
희 국지애 도후선유문 연지애 동여자하인
牧丹之愛는 宜乎衆矣로다. 모란지애 의호중의」
염계 선생이 이와 같은 이유로 연꽃을 사랑했듯이 불자들 또한 그와 같은 이유로 연꽃을 사랑합니다. 연꽃은 불교의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어 불교를 상징하는 불교의 꽃이라 할만합니다. 연꽃과 관련한 불교이야기와 용어는 수없이 많습니다. 염계 선생은 연꽃을 일러 '화지군자(花之君子)'라 했습니다. 즉 '꽃 중의 군자'라는 뜻이지요.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과 화과동시(花果同時)로 상징되는 꽃입니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 살고 있지만 이에 물들지 않고 고고한 자태와 향기를 품고 있어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꽃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불자들도 온갖 난무하는 불의와 부정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이에 물들지 않고 정심정행(正心正行)하면서 혁범성성(革凡成聖)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중생심(衆生心)과 범부(凡夫)의 행을 고쳐서 성불(成佛)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불자의 길입니다.
또 대부분의 꽃들은 꽃이 지고 난 다음 열매를 맺지만 연꽃은 꽃을 피움과 동시에 열매를 맺습니다. 이를 화과동시(花果同時)라고 하는데 또한 인과동시(因果同時)라고도 합니다. 원인은 결과가 되고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됩니다. 결국 원인과 결과는 동시에 일어납니다. 또 깨달음과 중생구제는 둘이 아니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자비심을 행하면 이것이 곧 깨달음의 길, 진리의 길과 통하기 때문입니다.
원망추조(園莽抽條)는 봄의 정경을 묘사한 말인데 무슨 뜻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원(園)은 '동산 원'이고 망(莽)은 '풀 망'입니다. 따라서 원망(園莽)은 '동산의 풀'을 말합니다. 동산에 우거져 있는 무성한 풀들을 말합니다.
추(抽)는 '뺄 추, 뽑을 추, 당길 추'이고, 조(條)는 '가지 조, 곁가지 조'이니, 추조(抽條)는 '가지를 뺀다'는 뜻입니다. 즉 가지를 뻗는다는 말입니다.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원망추조(園莽抽條)는 '동산의 풀들은 줄기를 뻗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동산의 우거진 풀들은 줄기를 높이 빼어내고 줄기 내지는 가지를 뻗어 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봄을 맞은 풀들이 다투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뽑아내고 가지를 뻗는 일련의 모습이 정겹고 사랑스럽게 보인 것 같습니다.
거하적력(渠荷的歷)과 원망추조(園莽抽條)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삭거한처(索居閑處)하는 은자(隱者)가 사시사철의 계절의 변화 속에서 느끼는 계절의 아름다운 풍광을 표현한 말입니다. 거하적력(渠荷的歷)은 여름철에 피어난 연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했고, 원망추조(園莽抽條)는 봄철의 정경을 묘사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계절의 순서상 봄의 표현인 원망추조가 먼저 와야 하고 거하적력이 뒤로 가야 맞지만 천자문의 운율상 순서가 부득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하적력(渠荷的歷)과 원망추조(園莽抽條)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종류의 식물을 들고 있습니다. 바로 '연꽃과 잡초'입니다. 왜 하고 많은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있는데 연꽃과 잡초를 들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삭거한처(索居閑處)하여 부귀와 영화를 뜬구름으로 생각하고 은일(隱逸)의 삶을 즐기는데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보다는 진흙 속에 살면서도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는 처염상정(處染常淨)하는 연꽃이야말로 군자가 사랑할 만한 꽃일 것입니다. 또한 잡초는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풀이지만 가만히 보면 그 풀들도 줄기를 뻗고 가지를 치며 열심히 깜량껏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사랑스럽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