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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0년부터 1997년까지 ABB에 다녔었는데,
본사가 있는 스웨덴의 Ludvika, 또 독일의 Badhonnef에 가끔 갔었습니다.
출장을 갔었기 때문에
여행을 할 기회도, 또 사진도 찍은것이 별로 없지만
그곳에서 일하면서 느낀것을 두번에 나누어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은 20년도 더 지난 오래전 스웨덴 얘기이고 여행기는 아닙니다.
요즈음은 국제회의를 인터넷을 통해 채팅을 할 수 있지만
1994년 그 때는 스웨덴 본사에서 회의가 있으면 그곳까지 비행기타고 가야만 했었습니다.
처음 스웨덴에 다닐때는 회사에서 1등석을 타게 해서
호강을 많이 했지요. 뒤에는 비즈니스 클래스로 바꿨지만요.
저는 주로Ludvika라는 도시에 가곤 했었는데 (때로는 스톡홈에만 갔다가 오기도 했었고요.)
주로 스톡홈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는데 Ludvika공항은 아주 작은 시골공항이었습니다.
어떤땐 스톡홈 공항에서 택시를 대절해서 루드비카까지 가기도 했는데…
회사동료와 같이 같이 갈때는 괜챦았는데,
한번은 나혼자 몇시간 택시운전수와 갈려니 은근히 겁이 났었습니다.
그때가 겨울이였는데 택시타고 가면서 보니까 길 양쪽으로 쭉 뻗은 스웨덴의 사철나무가
아름답고 인상적이였던것 같고, 드문드문 빠르게 뛰어가는 여우도 보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유럽에서 수입해 와서 그런지 벤츠나 Volvo가 비싼데
스웨덴에서는 보통 서민이 타는 차들로 참 흔했습니다.
개인들이 타고 다니는 보통승용차는 벤츠지만
택시도 벤츠, 트럭도 벤츠, 그리고 뻐스도 벤츠였습니다.
어떤 한국분이 미국회사에 출장을 왔는데 미국회사 직원이 공항에 마중나와서는 그냥 호텔에 데려다 주었을뿐
대접도 소홀했다고...불평을 하시고는
독일에 출장을 갔을때는 독일회사사람이 벤츠로 머무는 호텔까지 데려다 줬다고 감격을 했다는 얘기를 ,
벤츠가 독일에서는 그냥 보통 서민이 타는 차일텐데...
날씨
나는 주로 한겨울인 1-2월에 스웨덴엘 가곤 했었는데.
스웨덴 사람들은 주로 걸어서 많이 다닙니다.
내가 묵던 호텔에서 회사 사무실까지는 내 걸음으로20분정도 걸렸었습니다.
오후 4시 5시에 퇴근해도 언제나 밖은 깜깜하고
얼음이 두껍게 얼은 길에 눈까지 쌓여있어서 걷기가 힘이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걸을때 모자, 목도리, 장갑으로 싸매고
또 겨울부츠를 꼭 신어야 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직원들이 사무실에 밑이 두꺼운 나무로된 나막신을 놔두었다가
출근하면 부츠를 벗어놓고 으로 갈아 신었습니다.
나막신 위 발덮는데는 가죽으로 된것도 있었고...
스웨덴에서 사온 기념품 나막신입니다.
하여간 남자들이 나막신을 신고다니는게 참 신기해 보였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6월말경에 스웨덴에 갔었습니다.
6월말 7월한달은 모두 휴가를 떠나서 회사가 텅비일때라
미국직원인 나한테 일을 해달라고 요청을 한것 같습니다.
이날은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 밤 11시였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호텔까지 혼자서 걸어갈 생각을 하니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사물실 밖으로 나오니
밤 11시인데 초저녁 같이 밖이 환했습니다.
그리고 길가에서 사람들이 기타, 아코디온 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축제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웨덴이 북극에 있어서 여름엔 거의 밤이 없다는걸 생각 못했었습니다.
그날 축제도 구경하고, 길에서 이것저것 사먹기도 했습니다.
언어
스웨덴사람들이 대부분 영어, 독일어등 3-4개국어를 하기 때문에
늘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었습니다.
식당에 가도 영어메뉴를 달래서 시켜먹었었습니다.
딱 한군데, Bakery(제과점)주인이 영어를 못했었는데
손가락으로 사고싶은것을 고르고 몇개라고 표시를 하고는 산적이 있었지만요.
한번은 루드비카에서 스톡홈으로 기차을 타고 나올려고 했는데
기차가 오지않아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어떤 스웨덴 사람이 다가 오더니
“오늘은 기차가 운행이 안돼니까 뻐스로 가야한다”고 쓰여있는데
왜 뻐스 정류장으로 가지않고 여기에 서 있느냐? 고 한적이 있었습니다.
스웨덴 글을 몰라서 겪은 일입니다. 글모르는 까막눈의 설음을 실감했습니다.
다행히 그분이 친절히 가르쳐 주어서 무사히 스톡홈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회의진행도 영어로 했는데, 스웨덴, 놀웨이, 핀랜드, 독일, 이태리등에서 온 엔지니어들이라
모두다 자기나라 특유의 액센트가 있어서
미국 토백이 영어 보다 알아듣는게 힘이 들었습니다
예를들면 스웨덴 사람들은 copy를 “꼽삐”라고 발음했습니다.
실은 직장에 중국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중국사람들 영어도 참 알아듣기가 힘이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토백이 미국사람들은 외국인 영어를 참 잘 알아듣습니다.
스웨덴의 유명한 크리스탈 회사에서 만들었답니다.
사람들
스웨덴, 놀웨이, 핀랜드 사람들은 아주 활달하게 인사 잘하는 미국인들과 달리
동양인 비슷하고 수줍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처음엔 뚝뚝하고 무표정한것 같은데 일단 친해지면 아주 정깊고 친절했습니다.
스웨덴사람들은 딱 짤라서No(싫다)라고 하지 않는답니다.
동의할때는 물론 Yes라고 하겠지만, 거절할때는 May be (글쎄?) 뭐 이렇게 대답한답니다.
이런태도는 한국사람 비슷한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자란 우리아들은 하바드 대학에 다닐때 한국에서 유학온 학생들과 많이 친하게 지냈었는데
가끔 아들이 같이 무엇을 하자고 제안을 하면 꼭 할것같았는데,
(딱 짤라서 그런일에는 흥미가 없다고 말하지 않으니)
막상 일을 추진하면 뒤로 빠져서 당황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같이 공부를 해도 우리아들은 어제 4시간 꼬박 공부했다 이러는데
한국 학생들은 “공부 하나도 않했다”, “책은 들여다도 안봤다”
이렇게 얘기한다고 합니다.
우리 아들말에 의하면 그 학생이 공부 하나도 않한다는데 좋은 성적을 내는걸 보면서
그 학생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은 (독일, 핀랜드, 놀웨이사람들도 마찬가지)
회사에 Business차 온사람들 대접을 참잘 했습니다.
나같이 회의 참석차, 아니면 Project하러 온 사람들도
유명한 음식점에 데리고 다니고, 구경도 시켜주면서 대접을 잘 하는데,
회사의 고객들 한테야 얼마나 대접을 몇배 더 잘하겠지요.
그래서 유럽사람들이 미국사람들 보다 Business를 잘하나 봅니다.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이 누구나 비슷한것 같았습니다.
의사나 용접공이나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일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세금빼고 나면 수입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의사와 용접공이 한골목 비슷하게 생긴 옆집에 산다고 합니다.
노후에는 누구나 사회가 보장하는 비슷한 편안한 생활을 하니까
노후를 위해 아등바등 하는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제가본 스웨덴은 조용하고, 평화스러웠습니다.
빈부의 차가 없고 모두 비슷비슷하게 사니까
남의 것을 뺏으려 사기도 치지않고, 돈이 많다고 으시대지도
남을 없신여기지도 않고, 돈이 없어서 기죽고, 비굴해 지는일도 없는것 같았습니다.
특별히 같이 일하던 한 스웨덴 상관께서는
미국에서 아이들을 하바드니, 프린스턴등 아이브리그에 보낼려고 애쓰고
의과대학에 들어갔다고 기뻐하고 자랑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했습니다.
스웨덴에서 같이 일하던 Kenneth란 사람이 늘 저 가죽가방을 들고 다니는게 참 멋져보였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Ludvika한 상점에 가서 똑 같은것을 250딸러를 주고 남편을 위해 사왔습니다.
남편이 한번도 쓰지않아 집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금색이 나던 장식도 색갈이 변했구요.)
그래도 의사같은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돈 많이 벌 수 있고 큰집에서 화려하게 살 수 있는 미국으로 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호텔이니, 음식점이니 집들이 미국이 훨씬 크고 화려했었습니다.
그래서 스웨덴 엔지니어들이 미국지사에 발령 받아
미국에서 생활하는것을 좋아하는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스웨덴 엔지니어들이 미국지사인 우리회사에 출장오면 컴퓨터니, 생활용품등을
구입해 가지고 스웨덴으로 가곤 했습니다.
아마 그때는 미국이 물질이 풍부하고 물가가 쌋던모양입니다.
7월에는 유럽사람들은 대부분 summer house에 가기때문에 7월한달은 연락불통입니다.
그래서 Customer Service등 문의사항은 미국에 있는 제가 하곤 했습니다.
이웃사촌 놀웨이
놀웨이와 스웨덴은 원래 같은나라였었는데
왕족 4촌끼리 싸움이 나서 나라가 둘로 갈라져 동쪽반은 스웨덴이고
서쪽반은 놀웨이가 됐다고 합니다.
두 나라가 대단히 비슷하고, 사이도 좋지만
티걱 태걱도 하기도 하는가 봅니다.
예를들면 노벨상 같은것도 심사를 양쪽국에서 분야별로 하는것을 보면 사이가 좋아보입니다.
헌데 2차대전때에 히틀러가 스웨덴을 칠것이 무서워서
스웨덴에서 히틀러에게 놀웨이를 칠 수 있게 길을 열어줄테니 스웨덴은 치지 말아달라 부탁을 했었답니다.
그래서 일부 놀웨이 사람들 마음에 그 앙금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에서 만난 한 젊쟎은 놀웨이회사 간부가 한 농담을 보면,
두나라가 은근히 서로 흉보는 면도 있는것 같습니다.
“예수는 놀웨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예수가 놀웨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증거가 있다”
“그 증거는 예수가 태어났을때
東방에서 3명의 賢者(Wise men)가 예물을 가지고 말 구유에 찾아 왔다는데”
“놀웨이 東방에는 賢者(Wise men)가 없다”
주: 놀웨이의 東방이란 동쪽에 있는 스웨덴을 칭합니다.
대단히 웃기는 농담이었는데
이분이 아주 심각한 얼굴로 얘기해서 더 우스웠습니다.
우리가 하던 project를 통괄하시던 분은Egil Henriksen이라는 놀웨이 회사의 부사장 이셨는데
한번은 부인과 함께 우리집에도 오셨었습니다.
상자 뚜껑 안쪽에 있는 놀웨이 Viking그림이 있습니다
나는 바이킹이 스웨덴의 선조인가 했는데
Mr. Henriksen은 “아니야 걔네들이 무슨 바이킹이야!!!
우리가 바이킹이지!! ”하셨습니다.
나는 바이킹을 왜구(일본 해적)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놀웨이 사람들은 바이킹을 징기스칸같은 영웅으로 숭배를 하고
바이킹의 후예라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선물상자에도 선물에도 바이킹 그림을 넣은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기야 스웨덴 사람들이 히틀러한테 한짓을 생각하면
바이킹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2009-01-23 23:58:37
스웨덴에 대한 공부를 잘 했습니다. 한국인과 비슷한 점도 재미있고, 스웨덴과 노르웨이 사람간의 유머도 재미있네요. 좋은 안내 감사합니다.미국이라서 설 기분이 잘 안나시겠지만, 설이 다가옵니다. 누님의 새해가 늘 평안하시길 빕니다.
2009-01-23 21:45:29
놀웨이 스웨덴도 그렇고 그런 사이네요~~가까운데 적이 있다고...ㅎ아둥 바둥 살지 않는 거, 진짜 마음에 듭니다..ㅎ그래도...바이킹은 무서버요~~^^
2009-01-23 11:46:21
90년도 초부터 스웨덴을 다닌 것으로 기억이 나지만누님처럼 상세한 자료 하나 갖고 있는 게 없어 스미마생 입니다.^^어느해 크리스마스 때 스톡홀롬에서 보냈는데 그 호텔에 투숙중인 사람들과 기억에 오래남을 파티를 했었는데제가 짝퉁피아노솜씨로 아리랑을 연주해 박수를 아주 조금.ㅎ 언제 한번 그곳에서 잇었던 일들을 기억해 보겟습니다.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누님.건강하세요.
2009-01-23 10:14:43
그림과 같은 좋은 회상기 잘 읽고 갑니다.스칸디나비아 3국 하면세계에서 제일 좋은 복지 정책과 시설이 잘되어 있어요람에서 무덤까지 안정이 보장된 나라라고 하는데요..여러가지 섞인 화두들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2009-01-23 08:46:31
언니의 총기가 대단하십니다.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이렇게 좋은 글이 나오다니요.어머니 스케이트 타던 모습도 감동이었습니다.언니의 글 매일 기대하고 싶습니다.능소화에게 쉰세살 좋은 나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용기를얻습니다.외국에서지만 즐거운 명절 되시길 빕니다.
2009-01-23 06:39:35
밤이 낮같은 나라. 오랜 역사속에 살기좋은 나라로 일군 나라들...그 나라들에서 배워올것들이 퍽 많을것 같습니다.좋은 직장에서 좋은 경험을 쌓으셨네요. 겨울철 잘 보내십시요.
2009-01-23 03:09:10
청이언니네 보물창고는 어디에 있으실까요 제게 알려 주시면 국경을 넘어.....ㅋㅋㅋ언니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으시길 바라겠습니다.저는 또 잠시 바빠집니다.반쪽이 오늘밤에 이곳에 와서 2주간 음력 설 휴가를 보낸다고 해서요.언니도 두 분 어머니 모시고 설 맛난 떡국도 해 잡수고 재미나게 보내셔요.^^
2009-01-23 03:55:20
안녕하세요? 프리스카님프리스카님의 훌로리다여행 얘기들 기대합니다.반쪽님이 오신다니 좋겠습니다. 설잘 지내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009-01-23 01:05:41
청이님! 저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스웨덴,핀란드 관련업무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머리와 마음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리운 곳이 되어버렸습니다.나막신,주황색 목마,크리스탈 촛대,생강과자,바싹하게 구운 앙코없는 호떡처럼생긴 납작한 맛있는 빵 ! 등이 기억을 스치는군요.처음엔 3월정도에 갔는데 stockholm-helsinki 의 바닷길이 얼어있어 쇠빙선이 얼음을 깨고 Silja Line 배가 지나가는 길을 만들어주는게 신기했고, 전차가 신기했습니다.후식으로 나오는주황색의 Could berry라는 열매도 신기했구요.
2009-01-23 02:43:32
모니카님 반갑습니다.저는 1997년 ABB를 그만두었으니까모니카님은 최근의 스웨덴 얘기를 하실 수 있겠네요.모니카님의 얘기가 듣고 싶습니다.스웨덴, 핀란드에 대학 추억 사랑방에 올려 주실 수 있을런지요?감사합니다.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2007년도 7월에
남편, 아들과 함께 노르웨이,스웨덴,
핀란드를 3주간 여행했어요
스톡홀름에서 식사하면서
의자에 둔 카메라 가방을
소매치기를 당해 노르웨이로 가는
밤기차를 타면서 조심했는데도
백팩의 지퍼가 다 열려있더라구요
이미 전날 경험이 있기에
백팩에는 화장품과 크리넥스만 넣고
다녔더니 그것은 안가져갔더라고요
스웨덴은 그때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소매치기가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노르웨이가
더 잘살고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역사,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아이슬란드도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10년 전에 다녀왔는데
핀란드 빼고 나머지 세 나라는 거의 혈통이 같은 사람들이더라고요
저는 다닐 수 있을 때 많이 경험하고
배우자는 생각으로 명품은 안사고
여행 경비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 ^^
이제는 60대 중반이라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도 힘드네요
이번에 독일에서 벤츠 박물관에 가서
100년이 넘는 벤츠의 역사를 알았고
옛날 모델들도 전시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잘 보고 왔어요
유럽은 사회주의적인 경향이 있어서
의료가 많이 뒤처진 반면
미국은 최고의 발전을 하고 있지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청이님 어느 여행기들 보다 오늘 스웨덴에 대해
말씀해주신 글은 정말 스웨덴에 대해 잘 모르던 저는
참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요즘에 한국에 사는 분들이나
미국에서 사시는 분들이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시지만
저는 크리스틴을 데리고 살면서 좀처럼 그런 여행을
갈 기회가 안생기네요.그래도 다른 분들 여행기를 읽고
참 가보고 싶은 나라다는 생각은 가졌었지요.
오늘 청이님께서 올려주신 얘기로 저도 스웨덴에
언제 가볼수 있을까 그냥 생각만 해보았어요.
밤11시에도 환하다는 스웨덴...
저는 초저녁잠이 많아사 밤에 돌아 다니지는 못할것 같아요.
청이님 잘 읽었어요.
지금은 수요일아침 크리스틴을 데이케어샌터에 보내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중입니다.그러고나면 운동하러 갑니다.
청이님 오늘도 고운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