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월 3일, 잠들기 직전에 받은 친구의 톡 - “계엄령이라는데 주원이 휴가는 어케 되는 거야?”
잠깐 뉴스검색만 하려다 밤을 꼴딱 새워버렸습니다. 치병에는 잠이 제일 중요한데 그럴 때가 아니었습니다. 휴가도, 치병도 나라가 평안해야 가능함을 절감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차 몰고 맞서러 나갔다는 목사님과 집사님들 걱정에 80년 광주 사람들의 마음과 잠시나마 공명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진 광장의 집회들. 이번에는 반대로, 나라 살리기도 내 몸이 건강해야 가능함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동녘 깃발 아래 가족들도 함께 했던 촛불의 기억. 아쉬운 마음에 구입한 동녘 응원봉은 문득 힘든 밤에 이쁜 빛을 밝히며 다름 아닌 저를 응원해줬습니다.
캐나다살이 초반 목사님께 하소연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아이 하나 키우자고 이렇게 제 온 에너지를 다 쓰고 있는 게 아깝고 자괴감 들고 죄책감도 들어요”. 한창 교육운동에 몰두하던 때 딱 단절하고 낯선 곳으로 갔던 시기였지요. 그 때 목사님 말씀,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는 게 온 세상을 사랑하는 거예요”. 알쏭달쏭했던 그 말씀을 암 치병 5년이 되니 드디어 알 것 같습니다. “나는 한 번에 한 사람만 사랑하고 보살펴요” 수만명을 돌봤던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 또한요.
한 개인과 온 세상은 둘로 나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익히도록 이끌어주심에 감사합니다.
#2. 암을 겪고 있는 친한 지인 두 명의 안타까운 소식을 최근에 접했습니다. 한 명은 느닷없는 부고를 보내왔고, 한 명은 예상치 못한 급격한 악화를 전해왔습니다. 마음이 먹먹하고 멍해졌습니다. 이 소식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해야할 지 내가 선택할 수 있음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저 가라앉았습니다.
돌아가신 지인과 함께 해왔던 독서모임 친구들이 있었기에 다같이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했던 기억, 요양병원에서 처음 알던 환우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멘토선생님께 배웠던 것들이 떠올라 툭 제안했는데 고맙게도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마지막 모습만 떠올리며 안타까움에 허망함에 침잠해있던 저를, 다른 친구들이 들려준 사랑 가득한 추억들이 반짝반짝 위로해줬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한 말, “그 언니가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삶을 존중합니다”, 뒷통수를 탁 때렸습니다. 아, 내게 그 분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구나! 동시에, 내 삶 또한 존중하지 않았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갑자기 나빠진 상태와 몰려온 통증으로 힘겨워하는 친구를 대하는 마음은 여전히 복잡합니다. 그래도 무책임한 병원치료에 화낼 시간에 친구 마음 한 번 더 들어주고, 우리 각자의 온전하고 고유한 삶을 존중하기로 마음을 내봅니다. 내가 다 헤아릴 순 없지만 그 친구의 결정은 친구에겐 최선이었을 것이고 결과는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영역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것은 또한 내가 내 삶을 수용하고 위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친구들이라는 거울로 내 마음을 비추어보고, 그렇게 발견한 내 마음의 얼룩을 닦아서 다시 친구들을 온전히 바라보는 관계의 신비를 체험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삶의 신비는 이미 도처에 널려있지만 내가 발견해내어야 알 수 있음을 알려주는 욥기의 의미를 해석해주신 두 분 목사님께 감사드리고, 나날이 발견하는 삶의 의미와 감사를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동녘식구들과, 늘 우리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하느님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