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날 저녁이 되자 자식은 목욕을 했다. 그리고는 특별한 옷도 없지마는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색상의 옷을 골라 입었다. 흥분이 되고 심장이 떨렸다. 모든 준비는 어미가 다 알아서 해 주었다. 한밤이 되어가자 어미는 그 처녀를 데리러 간다고 했다. 그 처녀가 오면 어미를 찾지 말라고 했다. 다 큰 자식이 여자와 하룻밤을 치루는 데 어미가 보고 있다면 흉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자식은 당연히 그러시라고 했다.이윽고 그 처녀가 왔다고 바깥에서 어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쿵쾅거렸다. 곧 장포로 얼굴을 가린 처녀가 조심조심 칠흑 같은 방안에 들어왔다. 진한 분 냄새와 이상한 향수냄새가 어찌나 강한지 콧구멍을 깊숙하게 찔렀다.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자식은 떨리는 손으로 그 처녀를 소중하게 안고 깨끗하게 펼쳐진 자신의 이부자리에 고이 눕혔다.자식을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라도 하시고자 하는 분이 어미다. 여름에 기력이 떨어졌다고 허약한 자식을 위해 닭 모가지를 비틀어 털을 뽑는 게 어미다. 평상시에는 바퀴벌레조차도 겁내는 어미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담력이 커지고 사납게 돌변하는 여자가 어미다.그래서 어미의 치마폭은 천혜수호의 요새가 된다. 자식이 무슨 짓을 했던 그 속에만 들어가면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고기를 문 사자의 입에서 고기를 뺏으면 뺏었지 그 치마 속에 숨어든 자식은 뺏어갈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자식을 지키고 나서는 부모의 저항에 그 어떤 괴물도 손을 들고 만다.하지만 복이 없는 자식은 이상한 부모를 만난다. 어릴 때부터 수없는 학대를 당한다. 자식의 배보다 자신들의 입이 우선이다. 담배나 술을 살 돈은 있어도 자식들의 군것질에는 인색하기만 하다. 장난감은커녕 그 흔한 동화책 한 권도 사주지 않는다.길가다 넘어져서 자지러지게 울어도 애써 돌아보지 않는다. 악을 써서 울다가도 어미를 잃을까 주섬주섬 일어나 훌쩍이며 따라간다. 그나마 제때 따라가지 않으면 미련없이 버리고 가기도 한다.무릎에는 넘어진 흉터가 그칠 날이 없고 몸에는 해충이 물지 않은 곳이 없다. 길게 자란 덤불머리에 찌든 냄새가 배인 떨어진 옷, 지저분한 몸에 새까만 손발톱, 질질 흐르는 콧물에 한 번도 닦지 않은 누런 치아, 덧니가 제멋대로 난 잇몸, 깡마른 체구에 불록 나온 배, 각종 종기자국에 얼룩진 피부와 영양결핍에 나타나는 퀭한 눈동자를 갖고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부모는 매일 싸운다. 싸울 때마다 쌍스런 욕들이 터져 나오고 가재도구들은 깨진다. 그럴 때마다 어린 가슴은 상처를 입고 기가 죽는다. 학교를 다녀도 집안일 때문에 반은 결석이다.비가 오는 날이라 해도 우산이 없다. 그 흔한 비료포대도 없이 그냥 학교에 가라고 한다. 낡아서 미끌거리는 검정고무신을 신고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학교에 간다. 그렇게 젖은 몸으로 반나절이 지나면 자기 체온에 옷들이 전부 말라 있다. 그런데도 통신표에 성적이 떨어지면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면서 온갖 구박과 사정없는 매질을 가한다.커서도 마찬가지다. 학비는 모두 다 본인이 번다. 단 한 푼도 집안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학생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상을 보낸다. 그래도 부모는 자기 자식이 대학을 다닌다고 자랑을 한다.군대도 마찬가지다. 내일 입대한다고 해도 들은 체 만 체다. 부대에서 휴가를 나와도 반겨줄 가족이 없으니 기다리던 휴가조차도 나가지 않는다. 집에 가도 그만이고, 귀대해도 그만이다. 떡 쪼가리 하나 없이 빈손으로 귀대하면 다른 동료들을 볼 낯이 없으므로 그냥 내무반에 눌러 앉아 제대할 때까지 버티며 산다.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시시때때로 돈을 달라고 한다. 카드는 언제나 연체고 공과금은 모두 다 자식에게 미룬다.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너거들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말이다. 키운 게 아니라 컸을 뿐인데도 언제나 그 말을 한다. 또 있다. 자기들 삶을 살아 놓고는 너거들 보고 살았다고 한다. 지겹다. 전화가 와도 좋은 소식은 없다. 언제나 안 좋은 소식만 전하기에 전화벨이 울릴까봐 겁이 난다.결혼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해 주는 것은 없는데 해 달라는 요구는 많다. 배운 게 없는 사람들이 개똥철학같은 훈시는 빠지지 않는다.부모라는 권위와 허세는 쩐다. 보기 싫고 듣기 싫어도 부모라서 어쩔 수 없다. 늙어갈수록 계속 돈 타령이다. 염치도 없고 절도도 없다. 자식 심정이야 어떻든 자기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삐치기도 잘 하고 염장질도 최고급이다. (終)출처:대승기신론 해동소 혈맥기 2권
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The w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