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에 합당한 열매 누가복음 3장 7-14절
오늘 본문은 예수의 선생님이신 세례요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을 한가운데서 가난한자, 병자들과 어우러져 사셨다면 선생님 세례요한은 외딴 광야에서 종교운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술을 마시고 잔치를 벌리면서 환대의 목회를 하셨다면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소박하게 금식하고 절제하면서 청빈한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과 불의 세례를 말씀하신 반면 세례요한은 정결을 상징하는 물의 세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은 이런 면에서 스승과 제자입니다. 종교행위를 성전 중심의 제사행위에 두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며 비둘기나 소나 양으로 제사를 드리면서 속죄행위로써 종교 행위를 치렀지만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두었더냐? 회개하고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말로만 아브라함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 하지 말고 정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라. 아브라함은 유목문화의 경쟁과 살육과 죽임이 난무한 세상에서 낯선 나그네에게 환대의 잔치를 베풀어주는 문화를 연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자가 되자 조카와 싸우지 않고 너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너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하면서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가 주변 유목민들에게 침략을 받았을 때 의협심을 앞세워 그들을 구해 주었고, 평생을 살았던 고향 땅에 안주하지 않고 낯선 가나안 땅에서 천만인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 빅텐트의 문화를 연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복을 받았다는 게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서 온 땅에 복이 흘러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말로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하지 말고 정말 너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말로만 외치고 정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살지 못하면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더 찍어서 불 속에 던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면서 세례요한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옷을 두벌 가진 사람은 한 벌을 나누고 먹을 것도 나누고 군인들은 삥뜯지 말고 정해 준 것 이상을 받지 말고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거짓고발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이야기하고 좋은 세상을 예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예기하는데 그런 삶을 위해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양을 바치고 소를 바치고 제사를 드려도 그 모든 것은 종교적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요한 선생님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이야기하십니다. 잘못했으면 반성하고 삶을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알았으면 반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을 알았으면 계속해서 반복하지 말고 습관적으로 살지 말고 관성적으로 살지 말고 바꿔나가자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재차를 누군가 급하다고 보험없이 빌려달라고 해서 아주 잠깐이기도 해서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차가 휙 돌아서 논두렁이 빠졌고 그분도 많이 다쳤습니다. 제 차가 망가진 건 둘째 치고 그 사람이 많이 다쳤는데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더군요. 정말 미안했고 그 후로 미국에서도 수차례 이런 요구가 있었지만 키를 주지 않습니다. 알았으면 반복하지 말아야합니다.
얼마 전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항명 사건에 대해 무죄선고가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법령을 설명하는 대목에 이런 문구를 남겼습니다.
“위 규정은 2022년 3월 8일 제정되어 2022년 7월 1일 시행된 규정으로 군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피해자의 인권보장과 사법정의의 실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개정된 군사법원법 제2조 제2항 본문에 따라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절차 및 방법과 상호협력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군인 등의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절차의 투명성과 수사의 효율성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규정이다.”
여기서 위 규정은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성폭력 범죄, 입대 전 범죄 등 3대 범죄의 경우 군 수사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를 인지하게 될 경우 ‘지체없이’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해야 한다는 조문입니다. 박대령이 해병대 사령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항명죄가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법조항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힌 것입니다. 수사과정에서 3대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지체없이 민간수사기관으로 이첩해야한다는 거죠. 군안에서는 자기 식구 봐주기 식으로 진행한 경험들이 많으니까요.
이 규정은 지난 202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최근이죠. 2021년에 여러분들이 아시는데로 공군 고 이예람 중사가 사망했습니다. 군 내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었는데 그래서 신고를 했더니 2차 가해를 가하고 피해자를 방치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망 이후에도 제식구 봐주기, 사건 은폐가 거의 망장행태를 보였고 결국 국회에서 이 법을 개정한 것입니다. 이예람 중사의 어머니 인터뷰입니다. “누군가의 처벌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법이 바뀌었으면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때 바뀐 법 때문에 살았다고 말해줬으면 한다.” 누가 살았나요? 그 법 때문에! 만약에 이 법 개정이 없었다면 박대령은 또 억울하게 군 내에서 부폐세력에 의해 사장되었을 것입니다.
살다보면 정말 억울하고 황당한 사건들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억울한 일들을 경험했을 때 그걸 반복시키지 않기 위해 삶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법을 바꾸고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하철에는 불에 잘타는 패블릭 소재가 사라졌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문입니다. 모두 불연성 소재로 바뀌었습니다. 불이 나도 크게 날 수가 없습니다. 독일의 길거리에는 거리거리마다 8000개 가까운 동으로 된 벽돌들이 보도블럭처럼 박혀있습니다. 나치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그들은 교육과정에 정치비판교육이 들어있습니다.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그들의 노력입니다. 세례요한 선생님 종교운동의 핵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을 주셨고 상식과 도덕을 주셨는데 관성적으로 반복되는 악의 고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게 신앙생활에 근본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지난 주에 지방회 사경회를 갔는데 장로안수를 받는 분들에게 지혜서를 가르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근데 강의 도중에 장로님이 질문이 있다고 하시는데 요지는 공무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단계까지 올라가신 거예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 정치하시는 분들이나 유명인사들과 원치 않아도 만나야 될 때가 많이 생기는데 원치 않는 일들을 해야할때가 많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만 두어야할찌 말아야할찌 고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 자리 더럽고 치사해서 나오시면 그 자리 누가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감리교 종교재판도 그렇고 많은 상식적인 사람들이 말이 안되니까 재판위원이나 심사위원을 그만둡니다. 그러면 최악의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마찬가집니다. 가장 힘든 길인데 스스로 그만두지 마시고 권력에 의해 밀려날 때 밀려나더라도 치욕적인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의 삶을 생각하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그 자리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요즘 내란 사태를 경험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부분들입니다. 12.3 내란당시 국회를 뛰어갔던 시민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던 군인들, 공무원들, 하다못해 국회 설계도를 20군데 넘는 업체에 보내달라고 공문을 보냈는데 단 한군데도 보낸 업체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이 땅에 억울하게 죽어간 수없이 많은 민주영령들의 희생속에서 축척된 정신들이 있습니다. 그 정신으로 자신에게 세례하면서 역사의 치욕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그 빚과 부채의식에 시달리는 사람들, 그 아픔을 기억하면서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기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한강 씨의 그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습니다. 과거가 현대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보면 과거와 현재, 산자와 죽은 자,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그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고 선순환의 연결고리를 돌리기 위해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 덕에 오늘을 살아갑니다.
우리 식으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이런 존재에 대한 지극한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함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한 해 되시길 빕니다. 아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