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1. 공실불
    2. 푸른바다
    3. 고국원왕
    4. 삼산이수
    5. 천손강림
    1. 미소진
    2. 김용만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역사초보생
    2. 숲앤숲
    3. 치약
    4. 날아리
    5. 민박집주인
    1. 호연
    2. 노산
    3. 칼의노래
    4. 엄길주
    5. 정문수
 
 
카페 게시글
조선과 근대 토론방 홍경래의 난등 민란은 프랑스대혁명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
선구자 추천 0 조회 210 08.02.06 23:42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8.02.07 02:25

    첫댓글 프랑스 대혁명의 핵심은 국민들에 의해 주권의 담지자가 국왕에서 국민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즉, 무력을 통해 군주정체를 공화정체로 바꾸었다는 점이죠. 단지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점만 생각한다면, 유럽에서 그 전부터 종종 나타났던 민란이나 동아시아의 민란들과 프랑스 대혁명이 다른 점이 없을 겁니다. / 홍경래란(관서농민전쟁)의 성격은 홍경래가 내건 격문에서 파악해 볼 수 있는데, 핵심은 1. 지역차별(서북지역차별. 이게 일제 초기까지도 한국의 가장 주요한 지역갈등으로 이어짐) 2. 세도정치에 대한 불만 3. 정씨를 참된 왕으로 세움 정도라 할 것입니다. 즉, 홍경래란은 공화정체를 목표로 한 것도 아니고

  • 08.02.07 02:29

    굳이 말하자면, 맹자의 <역성혁명론> 에 가까운 성격을 띱니다. 즉,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과 같이 백성을 정치의 주체이자 지배자(주권자)이면서 동시에 피지배자로 인정하기보다는(동일성 원리. 치자=피치자), 백성을 피치자로만 보되 치자인 임금이 천명을 받지 못한 거짓 임금인 경우 혁명을 통해 참임금을 세울 수 있다는 주장에 부합하는 듯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특이한 점은, 참된 임금의 기준을 보다 백성친화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인데, 정씨 왕이라 함은 민간신앙적인 <정감록> 에 의거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08.02.07 08:54

    정조가 가장 두려워 하던 일들이 그사후에 나타나게 됩니다. 왕조타도의 기치를 내건 난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며 동학혁명의 경우에는 조선을 엎을만한 기세였으니깐요. 정조는 아마 왕조타도 후 혁명이 아닌 왕조유지 혁명을 원했던것이 아닐까요?

  • 08.02.08 00:48

    왕조유지 혁명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왕조유지 혁명이란, 이씨 왕조가 다른 성씨 왕조로 바뀌는 맹자식의 혁명(공화정으로 바뀌지 않고 군주정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왕조유지' 임)을 지칭하시는 것인지? 만약 이씨 왕조의 존속을 말한다면 이는 맹자식으로든 서양식으로든 '혁명' 이 아닙니다.

  • 08.02.07 20:12

    정조는 왕조의 군주이니 왕조유지 혁명을 원했겠죠. 후대 군주인 고종이나 대원군의 개혁도 왕권강화, 왕조유지적 성격이 강한것 처럼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