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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추
- 오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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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갑니다. 출입구에서 비켜 주십시오."하고 푸른 제복을 입은 양치기(전차 차장)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시민이라는 이름의 양들이 한 떼 내려오고, 또 다른 한 떼가 우르르 올라탔다. 땡그랑땡그랑, 맨해튼 고가선의 가축전차는 요란스런 소리를내며 달려갔다. 존 파킨즈는 해방된 양떼에 섞여서 정거장 층계를 내려갔다.
존은 자기 아파트를 향해 나른하게 걸어갔다. 나른하다는 것은, 그의 일상 생활 사전에는 <혹시>같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2년, 더욱이 아파트 생활을 하는 사나이에게 뜻밖의 일 따위가 기다리고 있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존 파킨즈는 우울하게 냉소를 깨무는 기분으로 단조로운 하루의 결말을 속으로 예언하고 있었다.
케티가 콜드크림과 버터볼 냄새가 나는 입맞춤으로 나를 문간에서 맞이해 주겠지. 나는 웃옷을 벗고, 자갈을 깐 듯한 긴의자에 앉컬터앉아 석간을 펼쳐들고, 냉혹한 자동 식자기로 살해된 러시아 병정에 관한 기사(러일전쟁에 관한 기사)를 읽겠지. 저녁식사에는 냄비에 볶은 고기와 절대로 피부가 상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붙은 드레싱으로 양념한 샐러드와 장군풀스 튜우와 상표에 씌어 있는 화학적 순도의 증명에 얼굴을 불기고 있는 병에 든 딸기 마멀레이드가 나오겠지.
저녁식사가 끝나면, 케티는 얼음 배달부가 잘라 준 넥타이 끝을 이어서 만든 헝겊조각 작품을 보여 주겠지. 7시 반이 되면 우리는 가구 위에 신문지를 덮게 되겠지. 웃방에 있는 그 뚱뚱보가 체조를 하기 시작하면 당장에 떨어지는 벽의 흙을 받기 위해서다.
8시 정각에는 복도 맞은 편 방에 사는연극배우(지금은 아무데도 출연 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인 하키와 무늬가 가벼운 섬망증 발작을 일으켜서, 흥행주 햄머 스타인이 주급 5백 달러에 계약하려고 자기들의 꽁무늬를 쫓아다니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의자를 뒤집기 시작하겠지. 이윽고 통풍구멍을 사이에 둔 맞은 편 창문의 신사가 플루트를 꺼내겠지.
길러길에 선 밤의 가스듣이 여기저기 명랑하게 깜박이기 시박하겠지. 요리를 나르는 엘리베이터가 활차에서 벗겨지겠지. 관리인이 자노비키 부인의 꼬마들 다섯을 한길 건너편으로 또 쫓아 보낼 것이다. 샴페인 빛깔의 구두를 신고 스코치테리어를 끌고 나온 부인이 총총히 층계를 내려가서, 초인종과 우편물 받이 위에 그녀의 목요일 이름을 써붙이겠지. 이렇게 하여 프로그모어 아파트의 밤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깊어가겠지.
존 파킨즈는 이런 일이 어김없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어 8시 15분이 되면, 자기가 용기를 내어 모자에 손을 가져 간다는 것도. 그리고 아내가 덤벼들 듯한 어조로 이렇게 묻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보, 어딜 가시죠? 나도 좀 알고 싶은데요, 존 파킨즈?"
"잠깐 매클로스키 집에 들러서, 친구들과 당구나 두어 판 치고 올까 하구..."
요즈음은 이것이 존 파킨즈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10시나 11시에 잡에 돌아온다. 케티는 벌써 잠들어 있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훨훨 타는 분노의 도가니로 결혼이라는 강철사슬에서 도금한 금을 조금이라도 더 벗겨 넣으려고 자지 않고 기다리는 수도 있었다.
이 도든 일에 대해서는 사랑의 신이 프로그모어 아파트에 사는 그의 희생자와 더불어 심판의 마당에 섰을 때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날 밤 문간에 도착한 존 파킨즈는, 그런 평범한 생활에 일어난 커다란 역전극에 직면했다. 그 귀엽고 과자냄새 나는 입맞춤을 해 주는 케티의 모습이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방 세간이 무섭도록 난잡하게 어지러져 있었다. 그녀의 소지품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구두가 방바닥 한 가운데서 뒹굴고, 머리를지지는 인두며 머리장식용 리본, 일본식 옷과 분갑 같은 것이 모두 뒤섞여서 화장대와 의자 위에 흩어져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케티가 한 짓은 아니었다. 존은 그녀의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칼이 엉켜서 말려 있는 빛을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무언가 굉장히 바쁜 볼일이나, 얼이 빠질 만한 사건이 일어나서 뛰어나간 것이 분명했다. 왜나하면 여느 때의 그녀는 이런 머리칼은 말끔히 뭉쳐서 모두가 부러워할 다리를 만들기 위해 난로 위의 조그마한 파란 꽃병 속에 알뜰히 넣어 두기 때문이다.
깨끗이 접은 종이 쪽지가 금방 눈에 띄도록 가스등 꼭지에 끈으로 매달려 있었다. 존은 그것을 뜯었다. 다음과 같이 급히 써 나간 아내의 편지였다.
사랑하는 존
방금 어머니꼐서 중병이라는 전보를 받았어요. 4시 40분 차를 탈 참이에요. 동생 샘이 저쪽 정거장에 마중 나와 주게 되어 있어요.
냉장고에 양고기가 들어 있어요. 평소의 그 후두염의 재발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우유 배달부에게 50센트 지불해 주세요.
어머니는 작년 봄 후두염으로 몹시 괴로워 하셨답니다. 계량기에 관한 일로 가스 회사에 편지를 쓰는 것을 잊지 마세요.
갈아 신을 양말은 제일 위쪽 서랍에 들어있어요. 내일 도착하는 대로 편지하겠어요.
케티
결혼한지 2년. 그와 케티는 단 하룻밤도 따로 잔 적이 없었다. 존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아내가 갈겨 쓴 쪽지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다. 일찍이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일정한 일상 생활의 순서에 지금 하나의 금이 생긴 것이다. 그는 그저 멍청히 서 있었다.
의자 등에 케티가 언제나 앉아 음식을 장만할 때 입는 검정 물방울 무늬의 빨간 실내복이 비참한 껍데기로 걸쳐져 있었다. 부랴부랴 뛰어 나갔기 때문에 평상복도 여기저기 던져져 있었다. 좋아하는 버터볼이 든 조그만 종이봉지가 주둥이 끈도 매지 않은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기차 시간표가 오려져서 그 자리만 네모 구멍이 나 있는 신문지가 펼쳐진 채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방아늬 모든 것이 상실을,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것을, 영혼과 생명이 사라져 버린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존 파킨즈는 기묘하게 화량한 생각에 감싸인 채, 이 죽은 잔해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되도록 방안을 말끔히 치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옷에 손이 닿았을 때, 무언가 흡사 공포 같은 전율이 몸을 훑어 내려갔다. 케티 없는 생활이 어떤 것인가.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그의 생활 속에 녹아 들어 있었으므로, 아니란 그에게는 마치 호흡하는 공기, 필요불가결은 하지만 그것을 깨닫는 일은 좀처럼 없었던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존은 마치 죽음의 손이 태평스런 그의 가정에 표를 찍은 듯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었다.
존은 냉장고에서 양고기를 꺼내고 커피를 끓여서 뻔뻔스럽게 화학적 순도를 보장하는 상표를 붙인 딸기 마멀레이드를 앞에 노고 외로운 식탁에 앉았다. 냄비에 볶은 고기와 황갈색의 구두약 같은 드레싱을 친 샐러드가, 잃어 버린 행복 속에서 지금은 헛된 환영처럼 보였다. 내 가정은 해체되고 말았다. 후두염을 앓는 장모가 내 가정의 수호신을 하늘 저 편으로 쫓아 버렸다. 쓸쓸한 식사를 마친 존은 거리로 나 있는 창가로 가서 앉았다.
담배를 피울 기분도 나지 않았다. 창 밖의 거리는, 나와서 어리석은 행위와 환락의 춤에 끼라고 요란스레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존 혼자만의 밤이었다. 그럴 생각만 있다면, 누구의 잔소리도 듣지 않고 외출할 수 있으며, 길거리의 명랑한 독신자처럼 자유로이 환락의 현을 뜯을 수도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거나, 정신없이 떠들어대거나,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거나, 무엇이든 하고 싶은 짓을 할 수 있었다. 환락의 여운이 떠도는 채로 돌아오는 그를 잔뜩 벼르며 기다리는 케티도 없다.
바란다면 새벽의 여신이 전등불을 흐릿하게 만드는 시간까지 놈팡이 친구들과 매클로스키 집에서 당구를 쳐도 하등 상관없다. 이 프로그머어 아파트가 몹시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을 때도 언제나 그를 묶어 두고 있던 결혼이라는 사슬이 이제 풀렸다. 케티는 가 버린 것이다.
존 파킨즈는 자기 감정을 분석하는 습관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케티 없는 너비 10피트, 길이 12피트의 방에 이렇게 앉아 있으니, 자신의 불안한 주조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뚜렷이 깨달았다 아무런 색다른 변화도 없는 가정 생활의되풀이 때문에 의식 속에 잠재워져 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이, 그녀의 존재를 상실함으로써 심하게 일깨워진 것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가 날아가 버릴 때까지는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진실로 감상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속담이나 우화나 혹은 그 이상으로 서득력 있는 명언으로 이미 신물이 나도록 들어오지 않았던가?
'나는 정말 숙맥이었군.'하고 존 파킨즈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케티를 그렇게 다루어 오다니, 밤마다 아내와 함께 집에서 밤을 보내는대신, 바깥으로 뛰어나가 젊은 놈들과 당구를 치고 술을 마시고 떠들어 대곤 하지 않았는가. 가엾게도 케티는 무엇 하나 마음의 위언도 받지 못하고 외로이 집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동안 나는 바보짓만 했다.
존 파킨즈여, 너는 죄 많은 인간이로구나! 사랑하는 케티를 위해서 무언가 보상을 해 주자. 밖에 데리고 나가서 뭐든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주자. 그리고 매클리로스키의 놈팡이 친구들과는 오늘 이 시간부터 단단히 손을 끊자.'
확실히 창 밖에서는 거리가 존 파킨즈를 향해서 모무스를 따라서 함께 춤을 추라고 요란스레 불러대고 있었다. 매클로스키네 집에서는 여느 때의 단골들이 여느 때의 밤 승부를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을 메꾸려고 할 일 없이 당구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앵초의 길도 흔쾌한 당구의 큐소리도 케티를 잃은 파킨즈의 지난날의 잘못을 후회한 마음을 유혹할 수는 없었다.
사랑하는 것을 여태까지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았고, 사랑하는 것을 여태까지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았고, 오히려 반 경멸하고 있다가 빼앗기고 보니 지금은 애닳도록 그리웠다. 후회에 가슴이 저미는 파킨즈는 자기의 계보를 더듬어 낙원에서 천사에게 쫓겨난 아담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존 파킨즈의 오른손 옆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등에는 케티의 파란 블라우스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케티의 모습을 희미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소매 중간쯤에 그를 편안하게 해 주고 기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일할 때 그녀의 팔의 움직임이 만들어 낸 가느다랗게 주름이 잡힌 독특하게 구겨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냘프면서도 마음 설레게 하는 야생 히아신스의 향기가 블라우스에서 떠올랐다. 존은 블라우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 차가운 얇은 옷을 들여다 보았다. 케티는 한번도 이렇게 차가운 적이 없었다. 눈물이, 그렇다! 눈물이 존 파킨즈의 눈에서 솟았다. 이번에 케티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내동댕이쳐 둔 보상을 할 것이다. 그녀 없는 생활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문이 열렸다. 케티가 조그만 손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존은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아, 돌아오게 돼서 정말 잘 됐어."하고 케티가 말했다. "어머니는 그리 대단치 않으셨어요. 샘이 정거장에 나왔대요. 그리고 어머니는 그저 잠깐 발작을 일으키셨을 뿐이고, 전보를 친 바로 뒤에 금방 깨끗이 나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기차로 돌아왔죠. 아, 커피 한 잔 마셨으면."
프로그모어 아파트의 3층 정면 방이 <여느 때의 관습>으로 그 기계를 되돌리기 시작했을 때 그 삐꺽거리는 톱니바퀴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벨트가 미끄러져나가고, 용수철이 움직이고 기어가 조정되어 수레바퀴는 다시 여느 때의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존 파킨즈는 벽시계를 쳐다 보았다. 8시 15분이었다.
그는 모자를 집어 들고 문간으로 걸어갔다.
"여보, 어딜 가시죠? 나도 알고 싶군요, 존 파킨즈." 케티가 덤벼들 듯한 어조로 물었다.
"잠깐 매클로스키네 집에 들러서."하고 존은 대답했다. "친구들과 당구나 두어 판 치고 올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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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 오 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