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의 개념 정의와 유형을 나누는 기준, 그리고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의 수준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 Orpinas & Horne(2006)은 학교폭력의 유형과 수준을 이론적으로 구분하였는데,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violence)’, ‘공격적 행동(aggression)’, ‘괴롭힘(bullying)’으로 제시하였다. 우리나라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에서는 학교폭력을 수준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유형에 따라 나누어 규정하고 있다. 「학교폭력예방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학교폭력’의 정의는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이다.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은 공격적인 행동과 괴롭힘을 폭력과 함께 포괄하여 광의의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와는 별도로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따돌림과 사이버 따돌림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 문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1990년대 중반에는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었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정부가 중심이 되어 학교폭력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04년의 「학교폭력예방법」과 이 법에 근거해 2005년부터 ‘제1차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점점 심화되었다. 학교폭력을 경험하는 학생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가해학생의 경우 학교폭력을 장난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새로운 유형의 학교폭력이 등장하였다. 또한 일진으로 대표되는 폭력서클을 통해 조직적으로 학교폭력이 진행되었고, 먹이사슬식으로 상급학교와 하급학교 간의 학교폭력 대물림 현상도 나타났다(정제영 외, 2018).
2004년에 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은 2019년까지 24회에 걸쳐 전부 및 일부개정이 이루어져 왔다. 특히 2011년 말에 대구에서 중학생 자살 사건이 발생하고, 잇따른 자살로 이어지면서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2012년 2월 6일, 정부는 ‘무관용의 원칙(zero tolerance)’을 천명하면서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2012년 「학교폭력예방법」의 주요 개정 사항을 이전 법안과 비교해보면, 학교폭력의 개념, 추진체계 및 구성,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 구성 등 여러 분야에서 이전 법의 미비점을 보완하였다. 이 개정에서 학교폭력의 개념에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폭력’으로 개념을 확대하였고,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국무총리로 격상하는 등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2012년부터 정부는 자치위원회의 가해학생 조치를 학생부에 기재하는 등 법 적용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정책의 시행으로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피해응답률이 낮아지고,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학교폭력 예방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의 엄격한 정책 시행은 긍정적 효과와 함께 학교 구성원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는 부정적 영향도 초래하였다. 학교에서 학교폭력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법적 절차에 따른 행정사항으로 변질되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친구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을 모두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자치위원회에 회부하도록 함으로써 교우관계를 회복시키는 교육적 노력은 사라졌다. 아이들은 다툼 후에 화해하고 잘 지내지만 부모들의 싸움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학교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경미한 사안을 화해시키면 해당 교원은 잠재적 범법자가 된다. 실제 2017년에 교사가 화해시킨 사안이 학교폭력 사건의 은폐로 언론에 보도되고 관련 교원이 징계를 받게 되면서 자치위원회 심의 건수가 전국적으로 급증하였다.
2019년 8월 20일에 학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공정성을 높이면서 학교의 자체해결 권한을 높이는 방향으로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정된 내용이 시행되었다. 2019년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에 대한 ‘엄격한 대응과 처벌 중심의 행정 패러다임’에서 ‘화해와 교우 관계회복 중심의 교육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는 법률의 개정 이유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원회’) 심의 건수의 증가로 담당 교원 및 학교의 업무 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되어 왔다. 자치위원회 전체위원의 과반수를 학부모대표로 위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학교폭력 처리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또한, 경미한 수준의 학교폭력 사안인 경우에도 자치위원회의 심의대상이 되어 담당 교원 및 학교장의 적절한 생활지도를 통한 교육적 해결이 곤란한 상황이 지속되고 행정절차와 처벌 중심의 조치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2019년 8월에 시행된 「학교폭력예방법」의 주요 내용은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에 관련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학교에 두던 자치위원회를 폐지하고, 교육지원청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하였다. 둘째,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10명 이상 5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전체 위원의 3분의 1 이상을 해당 교육지원청 관할 구역 내 학교에 소속된 학생의 학부모로 위촉하도록 하였다. 셋째, 피해학생 및 그 보호자가 심의위원회의 개최를 원하지 아니하는 경미한 학교폭력의 경우 학교의 장은 학교폭력 사건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되, 그 결과를 심의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넷째, 학교의 장은 학교폭력 사태를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전담기구 또는 소속 교원으로 하여금 가해 및 피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고, 전담기구로 하여금 학교장의 자체해결 부의 여부를 심의하도록 하였다. 법 개정으로 2019년 9월 1일부터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학교장 자체해결 제도’가 시행되었다. 행정적 준비가 필요한 제도적 변화는 2020년 3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2019년 9월 1일부터 시행된 학교장 자체해결 제도는 학교의 교육적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다만 ‘경미한 사안’의 확대 해석을 경계하기 위해서 자체해결 대상이 되는 사안을 명확하게 제한하고 있다. 경미한 학교폭력의 법정 조건은 4가지로 제시되었는데, 첫째, 2주 이상의 신체적ㆍ정신적 치료를 요하는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은 경우, 둘째,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셋째,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넷째, 학교폭력에 대한 신고, 진술, 자료제공 등에 대한 보복행위가 아닌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함으로써 학생들 사이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교육적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학교장 자체해결 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당사자 학생들 사이의 교우관계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학교의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다.
향후 「학교폭력예방법」의 목표인 학교폭력의 예방과 근절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교폭력 예방에 관련된 규정이 보완되어 학교현장에서 사전에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적극적인 조치들이 시행되는 것이 필요하다(박주형, 정제영, 김성기, 2012). 현재의 학교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들은 상당 부분 사후처리에 관련된 법적, 제도적 장치와 절차들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되고 있으나 학교폭력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교폭력 발생 이후에 중요한 것은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피해학생에 대해서는 그 가족과 관련자까지 치유와 보호를 위한 제도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는 징계벌이 아닌 교육적 조치가 되어야 한다. 외부에서 소년법에 의한 처벌을 받은 경우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학교에서 가해학생에 대해 조치를 하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해학생 조치가 실질적으로 교육과 반성, 재발 방지의 효과가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령을 기반으로 하는 제도는 정책이 우선 갖추어야 할 기본적 요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교육 분야에서 제도와 절차 등의 법령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그 효과가 학교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학교폭력을 단기간에 예방하거나 근절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실효적이고 종합적인 학교폭력 대책일지라도 그 대책이 학교현장에 착근되기 위해서는 현장의 주체인 교원들이 그 정책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여 대책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학교공동체의 구성원인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에서 모두 노력할 때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정제영,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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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박주형, 정제영, 김성기(2012).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과 동법 시행령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연구. 교육행정학연구, 30(4), 303-323.
정제영, 한유경, 김성기, 박주형, 선미숙(2018). 학교폭력 현안 및 변화 양상 분석. 한국교육개발원.
정제영(2019). 학교폭력 예방 대책과 법의 관계 및 개선 과제. 제100차 대한교육법학회 연차학술대회 자료집.
Orpinas, P. & Horne, A. M. (2006). Bulling Prevention: Creating a Positive School Climate and Developing Social Competenc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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