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문
서승현
분향을 마친
70대 은퇴한 총장님과
60대 은퇴한 여목사님
50대 글 쓰는 시간 강사 둘이
한 상에 둘러 앉는다
머리 희끗한 총장님 앞으로
절에서 소설 쓰는 시간강사가
홍어삼합수육을 옮겨 놓는다
나란히 앉은 은퇴한 여목사님이
덤덤하게 초장 접시 밀어 놓는다
장터 출신 시인은
은퇴한 총장님과 목사님과 소설가 앞으로
남광주 도깨비시장 풍경보따리 슬그머니 풀어 놓는다
백아산 골짜기에서 옹기종기 머리 맞대던
송이, 싸리, 능이, 표고, 노루궁뎅이 버섯
장수말벌 왱왱 꿀 흐르는 말벌집과 노봉방주
넓게 펼친 파란 방수천막지 위
푸른 단도처럼 펄떡거리는 은빛 전어떼
볕 좋은 시월 중순 장날 풍경에 더하여
실하게 살 오른 황룡강 미꾸라지 추어탕
보성 바닷가 파래물김치, 우럭미역국
영산포 홍어무침, 낙지젓, 전복장조림
화순 고들빼기파김치, 황새기고추무침,
실고추 얹어 갓 구워낸 육전, 굴전, 해물전으로
전라도 한정식을 가만가만 차린다
동글한 얼굴에 동글한 체형
검은 상복 치마 허리 질끈 동여매고
문상 오는 조문객들 맞이하랴
눈물 훔치랴 상차림 돌보랴
다정다감 자상한 60대 맏딸은
슬픔 속 잰 걸음으로 다가와
검은 머루포도 한 접시 밥상 위에 놓고 간다
우리는
영정 사진 속 고인의 고운 눈길 받으며
홍어삼합수육처럼 합을 잘 맞추고
남도 한정식처럼 풍성하고
검은 머루포도처럼 달게 익은 삶을
서로 다정하게 권하고 삼키며 조문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