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정에 갔다가 뚱뚱이 이모의 소식을 들었다.
뚱뚱이 이모는 내 어린시절 근 10년을 우리집 일을 도와 주시던 가정부 였다.
엄마가 교직에 계셔 우리집에는 항상 집안 일을 도와주시던 분 들이 계셨다.
봉자언니, 고창댁아줌마, 춘심이언니, 철이엄마, 순천댁....
다른 사람들은 이름이나 고향이나 애들 이름으로 불려졌지만 이 이모는 150도 안되는 키에 유독 가슴이 커서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마치 살찐 북극곰 같다며 장난기 많던 오빠가 붙인 별명이었다.
나이는 엄마보다 서너살 많았 던가 싶고 아이들도 네명 이나 있었다.
산수동 우리집 근처에 사셔서 아침 6시 반이면 출근하셨다
내 학창 시절 기억속의 아침은 뚱뚱이 이모의 "띵똥"소리로 시작되어 톡딱 톡딱 도마소리 향긋한 쑥국 냄새로
추억된다.
엄마가 우리 네남매를 깨우시고 정신없이 통근 버스 타러 나가시면 못 일어 나는 막네를 깨우고 우리 밥먹여 도시락싸서
학교에 보낸다. 그리 다정한 말투도 아니고 항상 툴툴 거렸지만 언니랑 싸워 삐쳐 밥도 안 먹고 가면 도시락에 달걀 후라이도
하나 더 있고 나 좋아한는 식용류 안 섞고 참기름만 바른 구운 김도 비닐에 둘둘말아 넣어 주셨다
오빠는 전주로 유학을 가고 언니는 사춘기로 예민하고 동생은 어려서 뚱뚱이 이모의 기구한 인생 넋두리를 들어 주는
일은 주로 내몫 이었다.
열여덟에 시집 가 첫 날밤에 못생겼다고 소박 맞고 읍내에 나가 살림 차린 남편 얼굴 한번을 못보고 시부모 모시고
고생하다 친정 오빠가 논 두마지기 팔아 남편 노름빚 갚아줘서 3년만에 다시 만났단다.
4남네 낳고 사는 동안 안해본 일 이 없고 부지런하고 솜씨 좋아 돈도 좀 모았는데
점쟁이 집에 일 갔다가 공 들여야 사주팔자 좋아 진대서 집 한채를 갖다 바쳤단다.
남편과 사는 내내 키작고 못 생겼다고 둔하게 가슴만 크다고 하도 구박 받아 이모의 소원이 코 세우고 가슴작게 하는
수술이었다. 곗돈 타 소원 이루나 싶으면 장성한 아들들 사업 밑천에 사이비 종교에 빠져 영생을 얻어야 하는 딸
천국가는 차비로 이모의 소원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모는 평생 다른 집에 일을 다녀서 음식 솜씨가 참 좋았다
음식을 할 때마다 나를 불러 간 을 보라 했는데 나 또한 즐거웠다.
동생은 요리 잘하는 언니 솜씨는 정확한 간에서 나오는 데 어릴때 언니만 맨 날 불러 그런거 같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생각해 보면 날마다 시장에 가 좋은 재료로 제철 음식을 해주셔서 철이 바뀌면 어릴 때 먹던 음식이 계절별로
생각 나고 내 추억의 맛이 풍성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뚱뚱이 이모는 서울에서 식당 하기로 한 큰 아들 도와 주러 서울로 가셨다.
아르바이트 한 기념이라고 목걸이 하나 사 드렸더니 남편에게도 못 받아 봤다고 너무 좋아 하셨다.
아직도 진짜 이름도 모르는 뚱뚱이 이모는 치매가 심해져 사람도 못알아 보고 말도 못하셔서 요양원에 계시다가
2년전 돌아 가셨단다.
진달래 화전 좋아 하던 이모 생각하며 오늘 나도 화전이나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
첫댓글 언니의 음식솜씨는 그 이모님 덕분이었군요 어린시절 언니의 추억이 가슴찡하게 다가오네요~~
문뜩 공지영씨의 봉순이언니가 생각나네요. 근 10년 동안 이면 가족 처럼 지냈을 텐데 그런 뚱뚱이 이모가 돌아가셨다니 안타깝네요.좀 더 편안한 노후였으면 좋았을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