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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이 피니 벌들이 바빠졌다.
고 작은 몸으로먼 거리를 오가며
부지런히 모아둔 꿀을 주인인 벌들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자기네 것처럼 다 떠가는 사람들
벌들에게 쏘여도
할 말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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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가기 전 날
흐린 하늘 쳐다보며
비 올까 봐밤새 마음 졸이는 동생
과자, 빵이며 과일, 음료수 챙겨 넣은 가방
몇 번을 안아 보며 잠을 못 자고 있다
하느님,
내 동생 마음 편히잠 좀 잘 수 있게
내일 올 비
하루쯤 미뤄 줄 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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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꽃만으로는 아름다운 꽃밭이 될 수 없다. 채송화, 해바라기, 장미, 맨드라미 백합, 코스모스, 튤립, 히야신스......
희고, 뷹고, 푸르고, 노란 갖가지 색깔의 꽃들이
함께 있어야 아름다운 꽃밭이 된다.
그림도 한 가지 물감으로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없고
음악도 높고 낮은 여러 음이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사람도 혼자서는 외롭다.
서로 다른 여러 사람이
뜻과 마음을 나누고 살아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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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한 번 내리니
시끄럽던 세상이 거짓말 같이 조용해졌다.
어느 정치가가
이 조용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검고 푸르고 높고 낮은 세상이
순백으로 하나가 되었다.
어느 화가가
이 깨끗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숭고한 자연의 순리 앞에
새삼 인간이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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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니 가뭄에 목말라 있던 풀과 나무가 생기가 돈다.
기운 없어 숙이고 있던 머리를 쳐들고 손이란 손을 들어 즐거워하고 있다.
그들이 말을 한다면 환호하는 소리로 귀가 멍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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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은 참 억울할 것 같다
못 생긴 얼굴을 자신들을 닮았다고 하니
이유 없이 욕먹는 기분일 게다
무심히 던진 말 때문에
상처받는 마음을 짐작이나 할까?
호박꽃을 못 생겼다고 한 건
어느 못 생긴 사람이
화사하게 밝은 호박꽃을
시샘하여 던진 말 아닐까?
누가 뭐래도
요란하게 화장한 얼굴보다
낮은 곳에서 항시 한 모습으로 화사하게 웃는
어머니 같이 포근한 얼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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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숙월 시인의 시 “어머니 앞에서는”를 읽고
45년 전 어머니께서 마지막 가시던 날
못다 운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직장 일을 핑계로 임종을 못한 회한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내게 있어 어머니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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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이곳에 오니
산비알에 붉은 흙이 흘러내리고
물풀 우거진 봇도랑에
참붕어와 버들붕어가 살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외딴집 초가 굴뚝에서
몽실몽실 연기도 피어나고
희미한 고가선 위로
강남 제비도 날고 있다.
욕망이 질주하는 시대에
살아 있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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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이 몸을 풀며 활동을 시작하고
흙 갈색 조각보에 녹색 패치가 덧대어지면
마음도 자연을 닮아 파스텔 물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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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이리처럼 사납던 날씨가 오늘은 양처럼 순해졌다.
겨울이 되돌아 온 듯 눈까지 내리며 차갑던 하늘이
티 없이 맑은 햇살을 화사하게 쏟아 내리고 있다.
드센 바람에 막무가내 흔들리던 나무들도
그새 힘겹던 기억 다 잊고
연초록 부신 잎들을 피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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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럴까.
넓고 평평한 길 다 두고
잡풀 무성한 오솔길 걸어가는 사람들
왜 그럴까.
따뜻한 안방 다 두고
밖에서 차가운 눈을 맞고 있는 사람들
왜 그럴까.
꽃피는 오늘 다 두고
지나간 시절 그리워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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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은 생각이 깊어서 겨우내 추위 속에서도 말이 없었나 보다. 힘들여 부르지 않아도 봄 오면 가지마다 잎 피고 꽃 피는 이치를 알고 있기에 산은 그렇게 여유가 있었나 보다. 죽은 듯 숨죽여온 산. 나무와 돌에서 미친 듯 뿜어대는 푸른빛을 보면서 사람이 산 못 되는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다.
* 내가 나도 모르면서
어두운 밤길 무얼 안다고
“조심해라. 조심해라.”
창을 깨는 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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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항시 말이 없고 젖을수록 생기가 도는 너는 인간과는 너무 멀구나.
어김없이 오가는 계절의 순리에 맞춰 푸르러야 할 때 푸르고, 물들어야 할 때 물들고, 벗어야 할 때 미련 없이 벗어버리는 무량無量한 네 법 앞에 사람인 내가 부끄럽다. 말없이도 때 따라 푸르고 누르고, 입고 벗고, 자유로울 수 있는 너의 탈속을 닮을 도리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