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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하하씨네를 통해 관람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작문의 핵심은 절제 라고.
줄이고 또 줄이겠지만 절제가 될런지는 우려된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남들의 여행 루트나 스타일을 쫓지말고
나만의 테마를 정해 스스로 여행을 디자인하는, 스위스에 이어 이탈리아편이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유구한 역사가 남아있는 유적지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아름다운 건축물,
신과 같은 존재 미켈란젤로를 만날수있는 로마와
내게 눈물과 감동을 준 로마속의 작은 나라 바티간시국,
그리고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과 아름다운 두오모성당,
흠모해 마지않던 다비드상을 만날수있는 피렌체 두도시를 택했다.
이탈리아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면적은 한반도의 1.5배.
인구는 약 6000만명. 통화 단위는 유로(1유로-1300원 정도).
물가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에는 습도가 높고 여름은 건조해서 수분보충이 필요하다.
스위스의 마테호른을 뒤로하고 국제선 열차를 이용 꽃의 도시로 불리는 피렌체에 당도한것은 여행 6일째 날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꽃피운 아름다운 도시로서
기원전 2세기 때 부터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르네상스 황금기를 보여주는 우피치미술관,
미켈란젤로의 걸작이 있는 아카데미아미술관,
세기의연인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운명적 만남이 있었던 베키오다리,
두오모의 큐폴라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스카이라인 만으로도 지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10년간 헤어졌던 연인의 재회를 다룬,
우리 씨네에서도 다같이 감상했던 에쿠오가오리의 소설 '냉정과열정사이'의 배경이 된 도시이다.
여행자의 덕목은 부지런함이 아닐까싶다.
이른 시간 간단한 조식후 맨먼저 찾은곳은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이 모여있는 우피치미술관이다.
16세기 중반에 건축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당시 피렌체의 절대 권력이었던 메디치가문의 사무소로 사용하기위해 지어졌는데
메디치가문은 오랜 세월 동안 예술가들을 적극 후원하여 많은 작품을 남기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ㄷ자 형태의 건물로 1.2.3층 총 2500여점의 작품이 소장되어있으며 2시간 이상 줄을 서서 입장한 후
다 둘러 보려면 적어도 한 나절은 필요하다.
우피치미술관에서 놓치지말아야 할 작품은,
성화에서 성모마리아를 그린 큰 제단화를 의미하는 '치마부에'의 '마에스타'이다.
비잔틴양식을 따랐을뿐 아니라 원근법에 대한 관심과 고전 요소의 적용을 그려냈다.
나란히 걸려있는 치마부에의 제자인 '조토'의 마에스타와 비교하여 보는 재미도있다.
조토는 르네상스 회화의 선구자라고 불릴만큼 뛰어난 실력자로
입체감이 느껴지는 구도와 인간적인 성모의 표정, 굴곡 등을 잘 표현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매우 사실적이고 잔인해서 관람자를 멈칫하게 하는 그림이다.
성모마리아 중 가장 젊고 아름다운 '성 모자와 두 천사'는 수녀원의 한 수녀를 모델로 그렸는데
그림을 그리다가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고한다.
두 사람의 옆모습을 그려 서로 영원히 마주 볼수 있도록 한 감동적인 '우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도 있다.
이번에는 누구나가 다 아는 '비너스의 탄생' '프리미베라' 가 있는 '보티첼리'의 방으로 들어가보자.
사실 이 작품은 길게 설명하고 싶은데...
요약하자면, 봄이라는 뜻의 프리미베라는 제목처럼 보티첼리의 인생에 봄을 선사했다.
메디치가문의 화가였던 그는 결혼 축하를 위한 이 그림으로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감상 포인트는 왼쪽부터,
신과 인간의 소통을 맡은 전령의 신인 머큐리,
비너스를 수행하는 세명의 여신 심미신,
사랑의 신으로 비너스의 아들인 큐피트,
그리고 아프로디테로 불리는 미의 여신 비너스는 머리위에 반원형 아치가 후광처럼 둘러 싸여있다.
비너스 옆의 꽃의 여신 플로라,
플로라를 좋아하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있다.
긴 금발 머리카락과 손으로 몸을 가리며 수줍게 서있는 '비너스의여신'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거품에서 태어난 여자' 라는 뜻으로 제우스와 바다의 요정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개 껍데기에 서있는 비너스는 10등신의 미녀로 모델은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시모네타로 알려졌다.
이 두 작품은 보티첼리의 대표작이며 우피치미술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다.
그 외에도 스승인 베로키오의 작품이지만
레오나르도다빈치가 스승이 그리다만 귀퉁이에 천사들을 그려 놓았을뿐인데
그 뛰어난 실력에 충격을 받은 베르키오는 그날 이후 더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조각에만 전념했다는, '그리스도의 세례',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동방박사의 경배', 그리고 '수태고지'이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함을 알리는 의미의 수태고지는 매우 사실적이고
백합꽃을 들고있는 날개 달린 가브리엘의 모습이 흥미롭다.
그리고 눈부시게 뽀얀 살결을 드러낸채 누워있는 누드화, '우르비노'의 비너스가있다.
제66실에는 '라파엘로'의 방으로서 빼어난 외모를 가졌으나 3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의 초상화도 걸려있다.
아침 8시부터 두시간 동안 줄을 서서 들어간 우피치미술관을 나온것은 점심때가 훨씬 지난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쫄쫄 굶주린 배를 움켜 쥐고 안먹어보면 후회한다는 티본스테이크와 종잇장처럼 얇은 피자로 배를 불리고나와
지금은 시청사로 사용하는 베키오궁전 앞에 있는 시뇨리아광장을 지나
피렌체의 야경을 한 눈에 감상할수있는 미켈란젤로광장으로 향했다.
베키오다리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도 되지만 우피치미술관에서 체력을 다 소진해 13번 버스로 오르니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다.
아르노강을 중심으로 두오모와 '조토의종탑'이 높게 보일뿐 대부분의 집들은 얕으막히있다.
두오모를 돋보이게하기 위한 고도제한이라도 있는걸까.
키가 작고 못생긴 미켈란젤로가 교황으로부터 그림 완성이 늦는다고 꾸중을 들으면
여기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도망와서 홀로 달래곤했다는 후문이다.
널찍한 돌담 위에 걸터 앉아 늦도록 피렌체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다음날은 역시나 8시부터 줄을 서서 올라간 두오모의 큐폴라 이야기다.
우선 큐폴라를 오르기 위해서는 약 50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하므로 든든한 체력과 편한 신발이 필요하다.
절대 두명이서 나란히 올라갈수 없는 좁은 계단에 통풍이 잘 안되어 몹시 덥다.
빙글빙글 나선형이라 어지럽다는 호소도 간혹 들린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흔적으로 벽과 계단은 반질반질 윤이 나있다.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으로 '꽃의 성모마리아'라는 뜻이다.
1296년부터 약 150년간 당대 유명 건축가들의 손길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성당의 백미는 지름 42m에 이르는 거대한 돔이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피렌체 시내의 전경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매우 인상적이다.
연인과 함께 오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대나뭐래나.
내려갈때도 역시나 줄을 서서 내려와 미켈란젤로의 빛나는 문화유산인 '다비드'가 있는 아카데미아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켈란젤로가 26세때 3년에 걸쳐 만든 최고의 걸작 다비드는 5m가 넘는 거대한 대리석 조각상이다.
영웅 다비드가 있는 문을 들어서자 관광객들로 발을 디딜 틈도 없이 혼잡했으나
내 눈에는 오로지 멀리에 서있는 다비드를 향해 한 눈 한번 팔지않고 그의 앞에 다다랐다.
처음엔 미술책에서 보던대로 그냥 미소년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가며 바라본 다윗은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트린, 분노에 찬 표정과 힘있는 모습으로
어느 순간 숨이 멎는듯한 충격을 받는다.
돌멩이가 든 가죽 전대를 왼쪽 어깨에 걸쳐 메고 돌멩이를 쥐었을 오른손은 힘줄과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있는,
가슴의 근육과 탄탄한 엉덩이 발목의 복숭아뼈까지도 해부를 통해 터득한
섬세한 묘사가 소름끼치도록 감탄을 넘어서서 경이롭기까지하다.
말없이 조각상을 돌며 떠날줄을 모르자 딸아이는 기다리다못해 1시간후에 만나기로하고 다른곳을 둘러보러 가버렸고
그 후로도 오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신은 왜 미켈란젤로 한 사람에게만 저런 뛰어난 재능을 주셨을까
열등감과 질투심과 경외감에 정수리 끝으로 피가 몰리는 경험을했다.
연애세포도 하나 남김없이 사라진줄 알았는데 이성에게서 느끼는 감정...이었을까?
말없이 미술관을 나와 노천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때까지 그 기분은 지속되었다.
다음날은
아르노강 위에 세워진 다리중 가장 오래된 다리로 1345년에 축조된 베키오다리의 귀금속 가게들과 가죽제품을 둘러보며
'산 조반니세례당' '조토의종탑' '산 로렌체성당' 을 둘러보았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3대째 이어오는 맛집의 천연재료만을 사용하는 젤라토를 맛보며
로컬들이 많이 이용하는 골목의 레스토랑에서 여러 종류의 파스타도 맛보며 심신을 쉬게했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약국에서 한껏 드레스업을 한 한국인들이 즐비한 가운데 믿을수있는 천연화장품인 유명 제품들을 쇼핑하고
예술과 문화의 상징 피렌체를 떠나 고대 로마제국의 중심이었던 로마로 건너갔다.
피렌체에서도 느낀거지만 로마 역시 몹시 노화된 노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의 당연한 느낌일터이다.
스위스에 이어 이탈리아 피렌체의 기행문을 쓰면서
읽는이의 느낌은 무감각한데 내 혼자만의 기분에 도취되어 장황한 설명이 부담스럽지않았나 우려되어 로마편은 접기로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미술전공자의 눈이 아니면 적당히 지나칠 수도 있었을 명작을 설명을 곁들이니 그래도 그 감동이 전해 옵니다. 언니랑 같이 간다면 설명을 제대로 들을 있어 참 좋을 것 같은데(ㅠㅠ) 글 쓴이가 감동이 없다면 죽은 글이 될 겁니다.
언니 로마 편 수고해 주시면 안될까 ^ㅋ^
나는 잘 모르겠는데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떤 인자가 있기에 귀족들이 화가를 음악가를 후원하고 감상하고 하고 하는 능력을 가지고 그리고 연주하고 하였는지 너무 우리의 조상들과 달라서 좀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곳이 이태리고 로마였던 것 같더군요. 거기도 먹고 살기는 우리 만큼 어려웠을 것인데 우리는 기껏해야 제례음악 그리고 궁중음악 미술이래야 꿈같은 동양화 참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여행이었는데 설명을 들으니 또 그 때의 생각이 되살아 나네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 후손들이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
괜히 자신이 초라해 지는 곳이 그리고 그 후손은 자존도 높고 하데요.
정말 자세히 기록해주시고 작품을 잘 묘사해 설명을 해주셔서 직접 걷고 보는 체험은 아닐지라도 상상이 됩니다. 아쉽게도 저는 간접경험이지만 전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기억이 생생할 듯 싶습니다 저도 로마편 기다릴께요
냉정과열정사이의 소설 배경이 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피렌체의 두오모성당은 우리 딸래미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곳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를 통해서나 봤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이렇게 직접 보고 난 후의 감동을,직접 느꼈던 만큼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었을테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감동이 전해짐을 느낍니다.온 몸으로 느꼈을 전율을 통해 평생의 추억으로 남겠지요. 로마편도 기대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