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외 2편
김영순
말은 제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
세렝게티 초원이나 한라산 기슭에서나
서로의 뒤를 봐주느라 그 일생이 다 간다
달과 고래
일부러 그대 안에 한 며칠 갇히고 싶다
행원리 어등포구 일곱물이나 여덟물쯤
기어코 월담을 하듯 원담에 든 남방큰돌고래
섬 뱅뱅 돌다 보면 거기가 거기인데
사람들이 내쫓아도 자꾸만 들어온다
네게도 피치 못할 일, 있기는 있나 보다
먼데 있는 저 달은 들물날물 엮어내며
하늘에서 뭇 생명을 조물조물 거느린다
한동안 참았던 그 말
물숨이듯 내뿜고 싶다
살금살금 살구나무
그래도 그리운 건 눈썹 끝에 달린 속세
어느 오름 자락에 세를 든 비구니 절
가끔씩 한눈을 팔듯 가지 뻗는 나무가 있다
그중에 살구나무 살금살금 돌담에 기대
'어디로 통화할까 그 사람은 누구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집을 뛰쳐나왔을까
해마다 웃자란 생각 가지치기 해봐도
그럴수록 부르고픈 이름이라도 있는 건지
설익은 살구 몇 알을
세상에 툭, 내린다
- 김영순 시조집 『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 2023. 시인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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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 달과 고래 / 살금살금 살구나무 / 김영순
김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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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1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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