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를 떠나면서 - 유금호
-지중해 통신 제5신
밤이 깊어가도 잠이 오지 않아 선실을 빠져나가 10층 데크, 안락의자에 누워서 담배를 태워들고 오랫만에 달을 보았다. 멀리 항구의 불빛과 둥그렇게 커지기 시작한 지중해의 달, 얼마 안 있어 만월이 되면 추석....., 잊고 있었던 고국 생각을 한다.
뱃전 아래 바닷물 쪽으로 눈이 갔다. 선체 가까이 무늬지어 흔들리던 물결을 보고 있다가 흰빛으로 뒤채이며 뛰어오르는 고기떼를 보았다. 처음에는 빛에 반사되는 물결이거니 무심했는데, 자세히 보니 학꽁치 떼일까, 수면 가까이 수천 마리가 전진하다가 돌아서고, 회전하고, 다시 전진하고, 그 중 몇 마리가 불빛을 반사하며 수면 위로 뛰어 오르면서 흰 비늘이 눈부시게 반사되더니..... 다시 회전하고... 그러나 잠시 시선을 멀리 보냈다가 다시 내려다 본 뱃전의 바닷물에는 거짓말처럼 고기떼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산토리니 섬에 내렸을 때 부두의 투명하던 물속에서 잠시 작은 열대어들 수 백 마리가 수면 가까이 헤엄치는 모습을 본 것 말고는 지중해에서 처음으로 본 물고기 떼였다.
지중해의 섬들은 자꾸 나그네를 유혹하고...
내일은 하루 낮을 쉬지않고 스페인 바로셀라를 향해 항해를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모레 새벽 스페인에 도착, 배를 내리면 이번 바다 위의 생활도 끝이 난다.
생각해 보면 여행이라는 것은 일상에서의 일탈이다.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 일탈의 유혹이 아니라면 아무도 여행을 하지 않으리라.
몇 해 동안 개인적으로 참 많이 싸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 마사이 마라 초원에서 사자 떼를 뒤쫓아 다닌 적도 있고, 짐바브웨의 빅리아 폭포 앞에 망연히 서 있기도 했다.
빅토리아 폭포로 다가가는 작은 마을 시골길에서는 아프리카 홍돼지가 새끼들을 데리고,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건너는 것도 보았다.
빅토리아 폭포부근에서 여행객들과
몽골 바양고비 사막의 몽고인들 겔 속에서 잠을 깬 새벽, 그 초원의 새벽하늘을 수놓고 있던 주먹크기의 별들에 놀란 적도 있었다. 왜 같은 별이 지역에 따라 그 크기가 그렇게도 다르게 다가오는지 그것은 오래 오래 내 의문 중의 하나였다. 몽골초원의 오후, 야생 낙타를 붙들어다 타보기도 했고, 실크로드의 작은 오아시스, 돈황의 명사산에서는 사막 위에 나타난 맑은 시냇물 신기루에 속기도 하면서 월야천에 뜨는 달을 바라보면서는 쓸쓸했다.
러시아에서 '붉은 화살"이라는 이름이 붙은 밤 열차로 '페테스부르그'에서 '모스크바'까지 밤을 세워 달리면서 창밖으로 끝없이 계속되던 그 자작나무 숲의 기억 역시 자주 더올라온다. 카자스탄으로 내려가 돈황과는 반대편에서 그 텐샨산맥, 만년설 녹아내리는 시린 차가운 물에 몸을 씻었던 그 치기....
몽골 초원에서는 양을 한 마리 잡아먹기도 하고...
브라질 아마존 지류에서 원숭이 떼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면서는 그곳 인디오들과 강물에서 실제 악어 잡이를 했던 기억도 바로 엊그제 같다.
안데스 산정, 마추픽추 정상에서 내 생일날 비에 젖으면서 혼자 소주 팩을 뜯어 생일을 자축하며 마셔 본 술 맛을 기억하고 있으며, 쿠바의 고히 마을, 헤밍웨이가 낚시 다녔던 포구에서 그가 낚시를 다녔던 바다물 색깔도 잊히지 않는다. 일본 쓰시마, 오래된 비석들 앞에서 옛 조선 사신들이 머물었다가 간 흔적 앞에서 느낀 이상한 감회 역시 여전히 생생하다.
베트남의 호치민 시의 밤거리
그러면서 세상의 다양성, 삶의 여러 형태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듯싶다.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의 여름, 그 똑 같은 그 시간에 나는 추위로 몸을 움츠리는 곳에 있던 적도 있고, 한국에 눈이 너무 많이 오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뜨거운 태양이 내려 꽂히는 암보셀리 초원에 서 수 백 마리 버팔로 무리들이 일으키는 먼지 구름도 보면서,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은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사고의 획일성과 편견을 반성하기도 하였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그 정반대의 밤낮과 계절, 그 다른 풍경과 습속 속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원형의 동일성에 대한 확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과 다른 것을 찾아 떠났지만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가 있고, 생존에 대한 욕망과 남녀의 사랑과 희생....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 극복을 위한 위무를 찾고 있다는 것, 그렇게 세상이 너무 많이 같고, 닮아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다가드는 일종의 허무감.
바로셀라에서는 우리 황영조 선수가 달렸던 그 마지막 마라톤 코스를 따라 헐떡거리며 올라가 그곳 운동장 정문 길 건너 언덕에 화강암 부조로 새겨진 황 선수 모습앞에 서면서는 잠시 숙연해졌다.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그 긴 시간의 외로움.
바로셀라 운동장 밖에 새겨진 조병화 시인의 글
운동장 건너편 언덕에는 바로셀라 시와 한국의 경기도가 자매결연을 맺은 기념으로 고 조병화 시인이 쓴 글이 새겨져 있었다.
조병화 시인이 쓴 그 한글로 쓴 글씨들 앞에서 갑자기 세계가 아주 좁아진 듯한 느낌이 잠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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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병화 시인이 쓴 그 한글로 쓴 글씨들 앞에서 갑자기 세계가 아주 좁아진 듯한 느낌이 잠시..... 쉬임없는 나그네 행보에 찬미 찬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