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 남용”
18개 혐의 중 16개 유죄로 인정
‘박 없는 박 재판’ 아쉬움 크지만
법원 판단 존중하는 게 법치주의
닫힌 권력과 일방 통치는 위험
현재·미래 권력은 거울 삼아야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판결은 지극히 드물다. 이번 재판을 놓고도 정당한 법의 심판이라고 보는 시각과 오류와 편견에 사로잡힌 판결이라는 비판으로 여론이 갈려 있다. 재판 과정에 결함이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법원이 구속 연장을 결정하자 재판을 보이콧했다. 1심 구속 기간(6개월)이 끝난 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진행하는 게 바람직했다는 의견은 법조계에서도 나왔다. 결국 역사적 재판의 법정에서 심판 받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떠나 반쪽재판, 정치재판, 여론재판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거부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용인되기 힘든 일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전직 국가원수가 국민이 위임한 사법권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몹시 실망스럽다”고 의견을 밝혔다. 재판 과정과 결과를 수긍하지 않는 국민도 일단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이 선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항소 절차를 밟으면 된다. 다시 재판이 열린다면 역사에 진실을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법정에 출석하기 바란다.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 있다. 전직 대통령 구속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느냐는 것이다.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드러난 2016년 말 각계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사퇴와 거국내각 구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을 제의했다. 탄핵-구속-재판으로 이어지는 불행한 사태가 예견되던 때였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화에 매달리다 기회를 놓쳤다. 당시 그 제안에 앞장섰던 송호근 서울대 석좌교수는 “통치 양식 자체가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고 본다. 잘못된 판단으로 이처럼 비감한 국면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사법처리는 ‘올바른 권력’의 필요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법과 제도 밖의 인물이 ‘비선’에서 권한을 행사해서는 안 되며, 절대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여론 수렴과 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에 기반해야 한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선한 권력도 언제든 악의적 권력으로 돌변할 수 있다”며 타락하기 쉬운 권력의 속성을 말했다. 이미 여러 차례 보고 겪었듯이 폐쇄적 권력과 일방적 통치의 끝은 비참하다. 전직 대통령 투옥 사태가 현재와 미래의 권력에 던지는 경고다.
기대는 높고 기준으 없는 사회 청년고통
청년 고통시대 … 대학 나와도 생활고에 마음의 병
신문T10면 TOP 기사입력 2018-04-07 01:58
부모는 조기 은퇴, 자녀는 비정규직
성실한 사람일수록 정신적 타격 커
“나가면 사고 칠까봐” 은둔 외톨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노의 폭탄
의학적 병 아니지만 실제로 아파
청년층 정신건강 연구·치료 시급
아픈 청춘, 실태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상조짐은 분명하게 보인다.” 요즘 한국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조짐은 통계적으로도 일부 드러난다. 성인에 비해 청년 우울증 증가율과 자살충동이 훨씬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2~2016년간 청년층 인구 10만 명당 우울증 환자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4.7%로 전체 세대 1.6%를 앞질렀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조사 결과 청년의 자살충동은 7.4%로 성인(5.2%)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살률(인구 10만 명당)은 지난해 10월 기준 20대(16.4)와 30대(25.1)가 모두 OECD국가들의 평균 자살률(20대 10.5, 30대 12.3)을 웃돌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왜 아프고, 어떻게 아픈지는 잘 모른다. 한창수(고대의료원) 교수는 “청년 정신건강 문제는 그동안 사회적 관심사가 아닌 탓에 전수조사를 해본 적도 없고, 연구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실상 파악이 안 되니 대책 마련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SUNDAY는 고대의료원·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함께 임상사례를 통해 청년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아픈지’ 살펴보았다.
탈출구 없는 경제적 고통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로 왔던 청년 A(28)는 하루종일 택배와 아르바이트 등 고된 일을 성실히 해온 청년이었다. 그는 은퇴하고 빚까지 있는 부모와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자살을 시도했다.
#제과기술자로 직장을 다니고 있던 B(23·여)씨는 환청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렇게 평생 일만 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큰 이유였다. 조기 은퇴한 부모가 중년 우울증에 걸리고, 착한 딸은 생활고의 압박을 크게 느꼈다는 것이다.
노후준비 없이 조기 은퇴하는 부모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에서 부모 세대의 빚이 자식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사회구조는 청년 정신 고통에 직격탄을 날린다. 자신들도 비정규직에 낮은 임금으로 어려운데 여기에 부모가 중년기 우울증까지 겪게 되면 자녀들도 정신적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청년들일수록 더 정신적으로 아프다. 두 사례는 약물치료를 하고 있지만,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치료가 안 된다는 게 문제다.
부모의 모럴해저드
#‘조기유학’과 ‘학자금 대출 빚’.
요즘 신경정신과를 찾는 청년들의 원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례다. 특히 나홀로 조기유학을 한 청년들 중엔 적응장애, 우울 등 다양한 정신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 군에선 관심사병이 되거나 외국서 따온 학위와 자격증으로 취업은 했지만 적응장애와 왕따로 직장에서도 떠도는 생활을 하다 정신과를 찾는다. 이들을 추적해보면 한국에서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려워 부모들의 탈출구로 조기유학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보호해주고 롤모델이 돼주는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 과도한 긴장감 속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향이 있다. 또 학자금 빚으로 인한 고통도 생각보다 심각하다. 과거엔 노력과 학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빚만 남긴 학력이 청년들에게 분노와 억울함을 가중시킨다. 부모들도 학비를 대줄 수 없으면 진학이 아닌 다른 진로를 찾아주는 등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출처] 청년 고통시대 … 대학 나와도 생활고에 마음의 병|작성자 ahncs0518
ㆍ6·13 지방선거와 보수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과 김기식 금융감독원 원장 임명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굳게 믿던 초엘리트 판사와 관료들에게는 ‘코페르니쿠스 혁명’과 같은 충격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강금실 법무장관이 ‘일탈’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일상’의 공포다.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무기력하게 구속되는 것을 본 터라 ‘충격과 공포’는 미래진행형이다.
보수가 몰락하고 있다. 2016년 총선에서 2당으로 밀리더니 2017년 대선에서는 역사적 참패를 당했다. 1987년 이래로 보수가 서서히 몰락한 이유는 선거 때문이다. 선거는 보수의 가장 약한 고리다. 다른 영역의 보수·수구 카르텔이 강고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평평했던 선거는 치를 때마다 보수의 성을 조금씩 무너뜨려왔다.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지금 보수진영의 선거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포비아’ 수준이다. 6·13 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즉 ‘북한에는 강경하고 시장에는 관대한’ 전통적 보수세력의 몰락을 볼 수도 있다.
지방자치는 민주당의 핵심 브랜드다. 30년 전인 1988년 총선에서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지방자치’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제1야당이 되었다. 1990년에는 단식까지 하면서 지방자치선거를 쟁취했다.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대표가 김대중 총재가 입원 중이던 세브란스병원으로 찾아가 지방자치선거에 합의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1987년 대선에 출마했던 김대중은 금권 선거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관권 선거’를 막지 못하면 앞으로도 대통령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고 판단했다. 밑바닥 권력을 바꾸지 않고는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듬해인 1991년 3월에 기초의원 선거, 6월에 광역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단체장 선거는 1995년에 처음 실시되었지만 기초단체장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앞다퉈 단체장에 도전하는 시대로 바뀌는 데는 불과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권력을 만드는 지방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제흐름을 놓친 건 그렇다 쳐도
국내 정치 변화를 읽는 수준은 끔찍할 정도다
대망의 히스테리 증상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가 보이는 과대망상은
열등감·패배감·불안감 등에
사로잡힌 결과다
노무현은 누구보다 지방자치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정치인이었다. 낙선의원 시절이던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든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오늘날 친노 핵심으로 불리는 쟁쟁한 인사들이 그 시절 연구소에서 실무를 보면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지방자치와 관련한 책과 잡지를 만들고, 수많은 출마 희망자들을 조직하고 교육했다.
1994년 10월에 창립 1주년 기념으로 (출마자들을 교육하려고) 개최한 행사에는 출마 예정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는 남에게만 출마를 권한 것이 아니라 1995년 민주당 불모지인 부산 시장 선거에 직접 뛰어들었다. 선거 초반 노무현의 기세는 대단했다. 청문회 스타인 그는 탁월한 연설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집권당의 실세 중 하나인 민주자유당의 문정수 후보를 앞서 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돌풍은 거기까지였다. 훗날 ‘DJP 연합’으로 발전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지역등권론’이 서울에서 발표되자 갑자기 선거가 (노무현이 그토록 깨고 싶었던) 지역주의로 돌아가고 말았다. 노무현은 아군이 쏜 포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치자 그와 함께 지방자치, 지방분권의 시대를 꿈꿨던 동지들과 참모들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그의 유지를 위해 대거 출마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극복과 균형발전을 위해 싸웠다. 모두가 함께 잘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세종시와 혁신도시는 그의 유산이다.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이자 참모인 문재인 대통령은 한 발 더 나갔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해 개헌이 필요합니다.” 권력구조 개편보다 지방분권이 개헌의 절실한 이유라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을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력한 중앙권력을 어떻게 시민들에게, 지방에 골고루 나눠주느냐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를 대하는 태도부터 다르다. 만일 이번 지방선거에서 예상대로 민주당이 압승한다면 보수진영은 중앙권력의 상실과는 또 다른 충격을 받을 것이다. 수십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보수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걸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전국적 확산이다. 한국의 주류가 교체되고 있다.
어쩌다 그 강고했던 한국의 보수가 한순간에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지게 되었는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2012년 총선 때만 하더라도 탈북자와 이민자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할 정도로 개방적이었고 경제민주화를 받아들일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이념적 자폐증이 점점 심해져 거의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 ‘국민전선’을 보는 느낌이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가 위험하다. 사람도 잘나갈 때와 힘들 때 인격이 드러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크게 이겼을 때 오만에 빠지기 쉽고, 충격적으로 졌을 때 ‘네 탓’하며 자중지란에 빠진다. ‘분열해서 패배하고, 패배해서 분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리더십의 부재, 정체성의 혼란, 조직의 붕괴, 자부심의 소멸, 만성적 분열이 지난 몇 년간 계속되고 있다. 얼핏 지금 보수의 모습을 묘사한 것 같지만 사실은 몇 년 전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이다. 당시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새정치’도 없고, ‘민주’도 없고, ‘연합’도 없다는 조롱을 받았다.
나는 몇 년 전 칼럼에서 “새누리당은 ‘조직’이 ‘개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조직보다 개인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당이 어려워지고 보스가 위기에 빠져도 당과 보스를 살리기 위해 불출마선언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이 비판은 보수세력에 그대로 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자기들이 ‘모신’ 두 명의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데 그만둔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반면 민주당의 변화는 놀랍다.
2015년 전당대회에서 문재인의 ‘이기는 정당’은 당시 민주당의 절박함을 잘 표현한 슬로건이었다.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다. (승리를 위해) 당대표직도 내려놓고, 측근은 불출마 선언을 하고, 수많은 인사들을 영입하고, 정체성이 다른 김종인에게 당을 맡겼다. 반면 새누리당은 개방과 혁신은 온데간데없고 코미디 같은 옥쇄 파동만 남았다. 보수의 붕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뿌린
지방자치, 균형 발전의 열매를
문재인과 민주당이 거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 보수는 길도 잃고, 힘도 잃고, 꿈도 잃었다.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변화를 이끄는 사람, 변화를 뒤쫓는 사람, 변화에 둔감한 사람, 변화가 두려운 사람. 한국 보수는 변화에 둔감하거나 두려워한다. 혁신을 게을리하다 스마트폰 시대의 패권을 애플과 삼성에 뺏기고 몰락한 노키아 같은 신세다. 화려했던 시절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미망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념적 퇴행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뒤를 보고 걸으면 빨리 갈 수도, 멀리 갈 수도, 똑바로 갈 수도 없다.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곧바로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를 둘러싼 유례없는 대화국면도 보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한국 보수세력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서 최근의 ‘흡수통일론’, 그리고 박근혜의 ‘통일대박론’에서 알 수 있듯이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에 방점이 찍혀 있다. 문제는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무력통일론이나 붕괴론에 기반한 흡수통일론은 주관적 희망의 반영일 뿐, 객관적 실체를 반영한 전략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반면 민주·진보 진영은 상대적으로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이 있다.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기 때문에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명의 민주당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적극적이었다. 1991년에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기 때문에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를 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북한응원단이 쓴 가면을 두고 ‘김일성 가면’ 논란이 있었는데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알려진 김영철과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식사를 하는 현실에서 벌어진 (1970~1980년대식) ‘상징조작’ 논쟁은 보수의 시대착오적 현실 인식만 노출시켰을 뿐이다. 중요한 점은 여론 지형이 점점 통일에서 평화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는 이 흐름을 놓치고 있다. (낙관할 수는 없지만) 만일 미국과 북한이 ‘평화체제’에 극적으로 합의한다면 보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보수는 안보에서만 ‘게임체인저’를 놓친 것이 아니라 외교에서도 큰 흐름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김정은)의 두려움은 중국이 (장성택이나 김정남 같은 인물을 내세워) 친중 정권을 세울 수도 있다는 의심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시진핑, 오바마, 박근혜 사이에 오갔던 전략적 대화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김정은의 대응은 두 사람에 대한 공개처형이었다.
중국의 두려움은 북한이 제2의 베트남이 될 수도 있다는 의심이다. 미국과 전쟁을 한 사이지만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위협하는 베트남처럼 북한이 ‘친미국가’가 되는 것은 중국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몽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로 미국을 움직여 중국을 견제하든, 중국을 움직여 미국을 견제하든 북한이 강대국의 역학관계를 이용하는 탁월한 능력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도 입증된 적이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북한은 미국을 지렛대로 중국을 움직이는 데는 성공했다.
솔직히 말해 1980년대까지 한국에는 미국과 일본이 전부였다. 안보를 지켜줄 나라도, 돈을 빌려줄 나라도, 물건을 사줄 나라도, 기술을 이전해줄 나라도 두 나라가 절대적이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도 두 나라를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들도 대부분 미국통 아니면 일본통이던 시절이었다. 국민의 반일 감정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미국이나 일본 입장에서도 소련, 중국, 북한이 공산국가인 상황에서 가난한 독재국가 한국마저 공산화된다면 다음은 일본 차례였기 때문에 한국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0년 한·소 수교,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1992년 한·중 수교는 한국 외교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게임체인저가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보수는 (아직까지) 외교, 안보, 경제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수십년 전의 패러다임 속에 갇혀 외교, 안보, 경제에서도 민주·진보 진영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
국제 흐름을 놓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 정치의 변화를 읽는 수준은 끔찍할 정도다. 대중망상의 집단 히스테리 증상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가 보이는 (보수표가 결집하면 이길 수 있다는) 과대망상은 열등감·패배감·불안감 등에 사로잡힌 결과다. 자유한국당이 지금과 같은 메신저로 지금과 같은 메시지를 계속 던진다면 단언컨대 역사적 참패를 당할 수도 있다. 명분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는 인물과 전략으로는 ‘원칙 없는 패배’가 예고될 뿐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나오던 단골 메뉴인 ‘연대론’이나 ‘외부영입론’은 쏙 들어갔다. 오히려 (민주당다운) 정체성과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잠재력을 경쟁력이나 능력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할 정도의 여유가 느껴진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뿌린 지방자치, 지방분권, 균형 발전의 열매를 문재인과 민주당이 거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방 권력의 교체는 한국 주류 교체를 가속화할 것이다.
“백성이 다 귀하면 나라 망해” … ‘양반들 리그’ 옹호한 정약용
[중앙선데이] 입력 2018.04.07 01:16 수정 2018.04.07 11:49
유형원 “귀천 차별은 천지의 이치”
이익 “백성, 악인이 많고 선인 적다”
양반·상놈 계급 사회 공고화 주장
청나라의 노비해방 알면서도 외면
‘백성이 근본’ 유학 본령에도 배치
근대적 평등 선구자로 보기 어려워
영·정조 임금보다 더 시대에 뒤떨어져
18세기 실학자들은 신분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근대 지향’의 실학이라면 신분제 폐지를 주장했어야 할 텐데, 실학자들의 발언에서 인간의 차별 없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선구적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분제 유지를 원칙으로 고수하면서 신분해방의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실학의 시조’ 반계 유형원은 신분의 귀하고 천한 차별이 불변의 이치이자 추세라고까지 말한다. “천지에 자연히 귀한 자가 있고 천한 자가 있어, 귀한 자는 남을 부리고, 천한 자는 남에 의해 부림을 당한다. 이것은 불변의 이치이고 역시 불변의 추세이기도 하다.” (『반계수록』 ‘奴隸’)
인간을 귀한 자와 천한 자로 나누어 보는 유형원의 인식은 “천하에 나면서부터 귀한 자는 없다(天下無生而貴者)”(『예기』)는 공자 유학의 본령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공자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백성은… 하대(下待)해서는 안 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民惟邦本)….”(『서경』) 동양 민본사상이 이 “민유방본”에서 나왔다. 이를 맹자는 “민귀군경(民貴君輕)”론으로 계승했다. “백성은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고, 임금이 가장 가볍다.” (『맹자』 ‘盡心下’)
백성을 천하고 어리석게 보는 시각은 공맹을 따르는 유학자의 말이라고 보기 어려울뿐더러 근대 지향적이지도 않다. 유형원의 신분제 옹호는 ‘학교론’에도 적용된다. 그는 사대부의 모든 자제는 입학을 허용했지만, 서민의 자제는 준재(“凡民俊秀者”)의 입학만 허용하고, 일반 서민 이하의 자제는 배제했다.(『반계수록』 ‘貢擧事目’) 또 유형원은 임금노동자(雇工)가 확산되는 때를 기다려 노비제를 점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이미 노비제 폐지가 시대의 흐름으로 요청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양반지주층을 안심시키며 노비제를 정당화하는 논변이었다.(김준석, 『조선후기 정치사상사 연구』, 157~163쪽)
‘실학의 중시조’ 성호 이익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유형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천하에 선자(善者)는 적고, 불선자(不善者)는 많다”(『곽우록』), “대개 백성에는 악인이 많고 선인이 적다”(『성호잡저』)는 발언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공맹의 성선설, 민본사상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이익은 이런 인간관을 바탕으로 하여 유형원이 그랬던 것처럼 신분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공맹보다는 관중이나 순자와 법가의 성악설에 기반을 둔 논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황태연, 『한국 근대화의 정치사상』, 65~73쪽)
노비제 해체 늦추려 점진적 폐지 주장
중국에서는 이미 송나라 때부터 신분 차별이 크게 완화되기 시작했다. 북송(960-1126) 시대 초기부터 과거 시험에 누구나 응시할 수 있게 했다. 신분보다 실력을 중시한 획기적 조치였다. 중국의 앞선 문물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요즘의 시진핑 정권이 보여주는 시대착오적 독재 행태와 착각해서는 안 된다. 15세기 명나라 때는 지배계층인 ‘신사(紳士)’의 각종 특권도 제한했다. 과거 급제자 본인 1세대에 한해서만 면세특권 등을 허용했고 세습을 금지했다. 신분 차별적인 주자학을 비판하며 왕수인(1472~1528)이 양명학을 주창한 것도 이 무렵이다. “길거리에 가득한 백성들이 모두 성인(聖人)이다”(『전습록』)는 양명학의 요지는 시대의 흐름을 대변하면서 공맹 유학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환기시켰다. (오금성, 『국법과 사회관행』 『모순의 공존』)
명나라 때는 또 과거에 합격한 신사만 노비를 소유할 수 있게 했다.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고 해도 법적으로 노비를 소유할 수 없었다. 부자들은 양자와 양녀를 들여 노비처럼 부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일종의 계약제로 언제든 신분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신분세습을 전제로 한 노비와는 달랐다. 청나라 강희-옹정-건륭제를 거치며 당시 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별이 완화되었고 1750년대 들어서는 법적으로 노비 소유가 금지되었다. (황태연, 『한국 근대화의 정치사상』, 94쪽)
임진왜란 의병장 중봉 조헌(1544~1592)이 일찍이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북경을 다녀온 후 선조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東還封事’·1574)에서 명나라의 신분제 실상을 알렸다. 조헌은 출신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명나라를 본받을 것을 제안하면서, 조선에서도 공·사노비를 양민화해 징병자원을 증대시키면 20년 뒤 100만의 정예 병사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족문화추진회, 『연행록선집Ⅱ』)
유형원은 『반계수록』(1670년)에 조헌의 ‘동환봉사’를 세 번이나 인용했다.(‘勿限門地’, ‘奴隸’) 유형원 스스로 “중국에는 노비가 없고 모든 용역에 임금노동자(雇工)가 쓰인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이익도 이미 중국에는 신분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음과 같이 단언한 것으로 보인다. “노비가 세습되는 것은 또한 고금에 사해를 통틀어 있어본 적이 없다”(『성호사설』). 이들이 중국의 노비제 폐지 사실을 몰랐다면 시세의 흐름에 무척 어두웠다고 할 수 있겠고, 알고 있으면서도 조선의 노비제 폐지에는 눈을 감았다면 이들은 ‘시대의 선각자’가 아니라 시대의 진실 은폐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황태연, 『한국 근대화의 정치사상』, 65~73쪽)
‘실학의 집대성자’ 다산 정약용은 어떨까. 정약용은 1731년(영조7) 노비종모법을 실시한 이래 노비가 감소하자 이를 비판하며 오히려 그 이전의 악습인 일천즉천(부모 중 한 사람이 노비면 그 자식도 노비) 방식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신해년(1731) 이후 출생한 모든 사노(私奴)의 양처(良妻·양인 신분의 처) 소생은 모두 어미를 따라 양인이 되게 하니, 이때부터 위는 약해지고 아래가 강해져서 기강이 무너지고 민심이 흩어져 통솔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노비법을 복구하지 않으면 어지럽게 망하는 것(亂亡)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목민심서』 ‘辨等’)
18세기 실학, 체제 개혁보다 수호 지향
백성을 어리석고 천하게 보는 시각은 유형원·이익에 이어 정약용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실학자들이 흔히 주자학을 비판하며 공자의 본래 사상으로 돌아갔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의 발언을 통해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약용의 “나는 나라의 모든 백성이 통틀어 양반이 될까 걱정한다… 다 귀하면 성공하지 못하고 이롭지 못하다”는 주장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여유당전서』, ‘跋顧亭林生員論’). 이미 해체 중이던 신분제에 대한 정약용의 시각은 개혁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수적이었던 것이다. (김영식, 『정약용의 문제들』, 29~40쪽)
오늘의 대한민국이 조선시대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신분제 폐지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법적으로 양인과 천민, 사농공상의 신분 차별이 없다. 현실적으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관행이 벌어지고, 금수저의 ‘갑질’이 횡행한다 하더라도 법 앞에서는 대통령이나 재벌이나 그 어떤 특권이 없이 모두 평등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 공무원의 ‘신분제 재도입’ 망언은 이례적으로 돌출해 보인다. 혹시 그는 18세기 실학자의 저서나 실학자들을 신분해방론자로 엉뚱하게 영웅시해놓은 20세기의 역사책들을 너무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