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가(五友歌)와
어부사(漁父辭)를 다시 살펴본다... (2)
정자 안은 어떤가.
정자이니 다른 정자들과 마찬가지로 주변 경관이 잘 보이게 한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연정은 온돌까지 마련되어 있다.
바로 정자 한가운데 사방 2.5m 정도의 온돌 방바닥을 깔아 정자 아래 아궁이에서 불을 때도록 되어 있어 한겨울에도
이곳에서 즐길수 있게 만들었다.
윤선도의 후손이 기록했다는 <보길도지>를 읽어보자.
윤선도는 날씨가 화창하면 반드시 세연정으로 향하되 첩은 오찬을 갖추어 그 뒤를 따랐다. 정자에 당도하면 자제들은
시립하고 기희(妓姬 : 기생)들이 모시는 가운데 못 중앙에 작은 배를 띄웠다. 그리고 남자아이에게 채색옷을 입혀 배를
일렁이며 돌게하고 공이 지은 가사로 완만한 음절에 따라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당 위에서는 관현악을 연주하게 하였으며 여러명에게 동·서대에서 춤을 추게하고 혹은 옥소암(세연정에서
올려다보이는 산중턱의 흰 바위)에서 춤을 추게도 했다.
윤선도는 하루도 음악이 없으면 성정을 수양하며 세간의 걱정을 잊을수 없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세연정을 둘러보며
보길도지에 기록된 윤선도의 풍류를 생각하면 사치도 그런 사치가 없다.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자제들은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하고, 온갖 기생들과 악사들은 춤과 풍악을 연주해야 했다.
어린아이(물론 노비의 자제겠지만)까지 동원하여 연못위에 조그만 배를 저어야
했고, 세연정 바로 옆이 아니라 500m도 더
떨어진 곳에서 춤을 추어야 했고, 겨울이면 아궁이에 군불까지 지펴야 했다.
누가 ? 윤선도가 ? 아니 윤선도의 주변 사람들, 특히 아랫것들 즉 노비들이다. 춤을 추던 기생이 바위에 미끄러져 물 속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윤선도는 파안대소를 했다던가. 일부러 바위가 미끄럽게, 그래서 춤을 추려 발을 움직였다간 미끄러질
수밖에 없도록 해 놓았다던가. 취미도 이 정도면 할말을 잊게 한다. 사치의 극치, 그것이 <세연정>의 모습이다.
특기할것은 이곳 세연정에서 기생들과 악사들이 노래를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곡이 바로 <어부사시사>라는
점이다. 물론 지은이는 윤선도가 분명하다. 그런데 흔히 고기잡이 나간 어부가 노를 저으며 부르는 노래라고 알고
있지만 <어부사시사>는 '어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윤선도 혼자만의 노래이다.
그것도 직접 바다로 배를 띄워 풍랑을 맞으며 혹은 고기를 낚으며 부른 것이 아니라 세연정에 앉아 연못에 떠있는 조그만
배를 보면서 노를 저어 가는 동자를 보면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기존의 어부가를 풀어놓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윤선도는
분명 탁월한 능력이 있음이 틀림없다.
<어부사시사>를 보자.
이 노래는 효종 4년(1653년), 윤선도가 67세 이후 전남 보길도의 부용동에 은거하면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춘하추동
4계절을 각각 10수씩으로 읊은 총 40수로 된 연시조로서, 고려 때부터 전하여 온 어부사(漁父詞)를 명종때 이현보가 <어부가(漁父歌)> 9장으로 개작하였는데 이것을 다시 윤선도가 후렴구만 그대로 넣어 40수로 개작한것이다.
원가(原歌)와 이현보의 개작가는 한문 고시를 그대로 따서 토를 붙인것에 불과하지만, 고산은 난삽한 한시구(漢詩句)를
대부분 우리말로 바꾸었다. 3장 6구의 시조 형식에 후렴구를 첨가한 형태의 이 노래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표현 기교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 윤선도를 국문학상 단가의 제일인자로 꼽는데에는 전혀 손색이 없도록 한 작품이라
하겠다.
널리 알려진 몇 수만 읽어보자.
<東風이 건듣 부니 믉결이 고이 닌다
돋 다라라 돋 다라라
東湖를 도라보며 西湖로 가쟈스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압뫼히 디나가고 뒫뫼히 나아온다> (春詞 3)
동풍이 잠깐 부니 물결이 곱게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東湖를 돌아보며 西湖로 가자꾸나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온다
세연정 두 연못을 윤선도는 동호와 서호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분
명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년닙희 밥 싸두고 반찬으란 쟝만 마라 닫 드러라 닫 드러라
청약립(靑蒻笠)은 써잇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오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無心한 白鷗난 내좃난가 제 좃난가> (夏詞 2)
蓮잎에 밥을 싸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닿 들어라 닿 들어라
삿갓은 썼다만는 도롱이는 갖고오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무심한 갈매기는 나를 쫓는가 저를 쫓는가
양반이 어디 직접 먹을것을 챙기겠는가. 연잎에 밥을 싸두라고 했지만 정말 윤선도가 연잎에 싼밥을 먹었을까.
이 노래를 부를때 윤선도는 옆에서 부채질해 주는 기녀를 끼고 산해진미 옥소반에 술잔을 들고 있었을것이다.
볏짚이나 갈대로 엮어 만든 청약립과 녹사의를 입어보았겠는가. 그저 그렇게 노래만 했을 뿐이다.
<옷우희 서리 오대 치운 줄을 모랄로다 닫 디여라 닫 디여라
조선(釣船)이 좁다 하나 부세(浮世)와 얻더하니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내일도 이리하고 모릐도 이리하자> (秋詞 9)
옷 위에 서리 오되 추운줄을 모르겠도다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낚싯배가 좁다 하나 속세와 어떠한가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내일도 이리하고 모레도 이리하자
서리가 내리고 눈보라가 친다해도 윤선도가 추위를 느꼈겠는가. 뜻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밖에서 들리고 보이는
풍악소리와 기녀들의 춤을 구경하면 그만이었다. 오늘 그랬으면서 내일도 그렇게 하고 모레도 그렇게 하자고? 아랫것들은
죽을 맛이다.
<간밤의 눈갠 後에 경물(景物)이 달랃고야 이어라 이어라
압희난 만경유리(萬頃琉璃) 뒤난 첨첩옥산(天疊玉山) 지국총 지국
총 어사와 선곈(仙界)가 불곈(佛界)가 人間이 아니로다>(冬詞 4)
간 밤에 눈 갠 후에 景物이 다르구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앞에는 유리바다 뒤에는 첩첩옥산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仙界인가 佛界인가 人間界인가 아니로다
눈내린 경치가 나쁠리 있겠는가. 윤선도의 눈에는 만경유리로 보이겠지만 쓸고 닦아야 할 아랫것들은 어떻겠는가.
그 속에 앉아 있으니 신선들과 부처들이 사는 세상이라 생각했겠지만 바로 문밖에는 노비들이 추위에 떠는 인간들의
세상인 것을. 분명하게 단언하건데, 어부사시사에는 결코 '어부'의 모습이 없다. 있는것은 윤선도의 사치요,
환상일 뿐이다.
첫댓글 그렇군요 님의 자료를 통해 다시금 느껴보는 그런 점들 앞에 잠시 생각해보고 갑니다 호사가 따로 없네요 그래도 시가 나타내는 건 한폭의 풍경처럼 자연스레 다가왔던 이유가 좋게보는 세뇌가 깔려 있어서 일까요 고운 하루 보내세요
엄경희님... 제가 이글을 쓰는 목적이 훌륭한 분을 좋지않은 분으로 악평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나 역시 윤선도를 깊이 모르는입장에서 배우려다가 잡힌글을 님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했을뿐인데 윤선도를 비하했다하여 심한공격도 받았어요....나도 윤선도의 내면생활을 알게되어 깜짝 놀란 사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