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생각: 느티나무에 커다란 양말을 걸어두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루돌프와 그 친구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굴뚝으로 내려와서 걸어놓은 양말에 선물을 가득 담아주고는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60대의 내가 다시 믿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에는 머리맡에 인생 최대의 양말을 걸어놓을 생각이다.
1999년 10월 중순, 난 최초로 외국행 비행기를 탔다. 독일의 루프트한자였고, 일본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였다. 말 그대로 촌놈이 비행기를 탔으니 이코노미였어도 퍼스트 클래스와 같았고, 간간이 무료(?)로 주는 먹을거리에 희희낙락한 기억이 또렷하다. 게다가 말만 하면 가져다주는 맥주와 와인은 9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조차 옆 동네 마실 가는 것처럼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랬던 내가 요즘엔 “비즈니스석을 위해서라도 복권이 맞아야 하는데...”를 남발한다.
각설하고, 11월에 들어서니 독일의 온갖 거리엔 크리스마스 장식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음악은 대부분이 캐롤이고, 어린아이들은 머리에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쯤은 기본으로 달고 다녔다. 12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조금 성탄절 분위기를 내는(그것도 방송에서나)우리와는 너무나 달라 신기하기조차 했다.
한 달 이상, 독일 어디서나 반짝거리던 크리스마스 장식이 시공을 넘겨 60대가 된 내게 다시 일렁거리고 있다.
2주 전 교회의 나무에 태양광 크리스마스 등을 아들과 달면서 20세기를 끝으로 사라져버린 크리스마스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면 아주 조심스레 크리스마스 등이 릴레이를 시작한다. 그 깜빡거림 사이로 산타클로스도 보이고, 루돌프와 친구들의 비행도 스쳐간다. 20세기 말 독일의 작은 마을 ‘그로스 게라우’와 프랑크푸르트 번화가의 성탄 장식들이 솟구쳤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산타클로스가 있고 없고의 문제와 우는 아이와 울지 않는 아이의 선물이 달라진다는 건 삭막해지고 뻔뻔해지는 내 인생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저 어른이니 어린아이의 마음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어리석음에 길들여졌을 뿐이다.
이번 성탄절은 산타클로스를 믿고 기다리자.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고스란히 믿고 울지도 말자. 새로운 집을 선물로 받았으니 멋지고도 화려하고 풍성하게 선물을 장식하자. 중앙의 느티나무에 커다란 양말을 걸어둬 하늘 축복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