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청 석
우리나라 전역에는 오백년 천년 된 노거수들이 더러 있다. 대부분이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들이다. 게중에는 이팝나무나 팽나무도 더러 있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에 속한다. 소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삼백년쯤 되는 나무는 있어도 오백살 넘은 소나무는 만나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연륜을 넘겨보이는 소나무가 있었다. 그 노송이 서있는 곳은 여수시 화양면 이천리. 실로 거대한 풍체였다. 소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다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소나무는 어느 나무를 지칭하더라도 이름만 들어도 정감이 간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주변에 어디에나 있는 나무이고, 이름 또한 수수하고 정답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호흡을 함께한 나무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소나무를 일러 사람들은 백목지장(百木之長)이라고 한다. 나무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뜻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희귀목을 귀하게 여기고 대접해주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소나무의 품위를 아는 이라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라고 해서 홀대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각별하게 여긴다.
지난해 한국갤럽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조사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소나무가 43.8프로로 수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은행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느티나무가 3-4프로로 뒤를 이었다. 이를 보더라도 우리들 마음속에 소나무가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지조. 절개. 충절. 기개와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우리의 감성과 정서,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에 이 소나무가지를 끼어 넣었으며 간장 독에는 소나무 숯을 넣고 땔감과 목재 뿐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널에 육신을 담아 묻어왔던 것이다.
소나무는 이렇듯 긴요하게 쓰여왔다. 잎에서부터 뿌리까지 버리는 것이 없었다. 흉년에는 송기로 구황을 했으며 솔잎으로 술을 담그고 송편을 찌며 관솔로는 불을 밝혔다. 땔감도 다른 나무에 비해 화력이 월등하여 도기장들이 그릇을 구울 때는 이 소나무만을 썼다. 해서 가마터를 잡을 때는 좋은 흙이 나는 곳 못지 않게 소나무 땔감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을 택했다. 적어도 그릇이 구워지는 1250도를 유지하려면 이 소나무 장작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비교적 도끼 밥도 잘 먹는 나무다. 참나무나 아까시아가 도끼 날을 물고늘어지기 일수인 반면에, 이 소나무는 딱 부러진 성정만큼이나 결을 따라 잘 쪼개진다. 그렇다고 결코 무른 나무도 아니어서 고대광실 큰 집의 대들보나 기둥은 온전히 이 소나무가 쓰여왔다.
나는 십여 년 전에 소나무 분재를 길러본 적이 있다. 결과는 이십여 개중에서 고작 두 그루를 살렸을 뿐이지만, 처음 살리기가 어렵지 일단 한번 살려놓으니 이놈만큼 생명력이 끈질긴 놈도 없었다. 거의 물도 주지 않고 놓아두는 데도 끄떡없이 자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근성 있는 나무임을 알게 되었다. 옮겨 심으면 잘 살지는 않지만 한번 살려고 마음먹으면 잘 죽지도 않은 나무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소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시사철 푸르러 청정한 기상을 보여주는데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잎의 독특한 모양새와 줄기의 구갑무늬에도 빠져드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다 소나무특유의 향기도 한몫하지 않는가 한다. 나무 중에 향기가 나는 것으로는 서향과 금목수와 향나무 등이 있지만 소나무의 향기도 결코 그에 못지않는 것이다. 은근한 선비의 고매한 인품내음이라고나 할까.그래서 문인목(文人木)은 모두 소나무를 칭했는지 모른다.
나는 소나무를 떠올리면 고향의 어느 바위 위에서 자라고 있는 반송을 잊지 못한다. 열악한 바위 위에서 자라기 때문에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그 집채만한 바위를 스스로 깨뜨리고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게 한없이 신비롭기 때문이다. 향리 원로들의 말에 의하면 당신들이 어렸을 적에도 노상 그 모양 그대로였다고 하니까 키는 작지만 도대체 몇 살이나 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늘푸른 모습을 간직하고 변함없이 서있으니 여간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위용면에서는 아무래도 그 화양면의 그 노송을 따르지 못한다.
본래 소나무는 백년이 되면 가지가 늘어지고 이백 년이 넘으면 뿌리가 솟는다는데, 이 나무는 그만한 연륜 때문이겠지만 드러난 뿌리들이 서로 엉키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충북의 정이품송이나, 경상도의 석송령, 그리고 고창의 기묘한 소나무가 있다지만, 내 보기에는 이 나무도 분명 명품 송(松)에 들지 않을까 한다.
나는 나무들, 그 중에서도 노거수 소나무을 보면 나도 몰래 외경스러운 마음이 들고 가슴이 설레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고 우러러 보게 된다. 그다지 좋지 않은 입지조건에서 장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경심이 배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 이런 거목들은 예외없이 사람에게 유익한 기를 발산해주고 있다고 하니 신령스러운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신비감마져 들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때로 인생의 길을 묻고, 보듬어 줄 큰 어른이 절실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런 노거수도 많은 가르침을 주지 않은가 한다. 나이 들면서 더욱 늠름해지는 모습을 통해 생을 초탈한 듯한 자태는 어느 탈속한 거인의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그래서 나는 이런 나무를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행복해 진다.그런데 거기다가 생각나면 멀리 발품을 팔지 않고서도 찾아가 노송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크나큰 행운인가.
첫댓글 본래 소나무는 백년이 되면 가지가 늘어지고 이백 년이 넘으면 뿌리가 솟는다는데,.... 문인목라는 칭호도 적절하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