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낀 지난 일요일(18일)은 쉬고, 처음 맞는 일요일입니다. 9월 말이지만 아직 날은 덥습니다. 그러나 절기는 어김없어서 7시 40분쯤 신설동 사명당의집을 나서는데 벌써 어둡습니다. 한 달 전과는 학연히 다릅니다.
낮에는 제영법사와 운경행님이 청도 홍시를 두 개씩 포장했습니다. 홍시는 색깔이 붉고 한 개 시식해보니 맛이 좋습니다. 거사님들 대부분 치아가 좋지 않아 감을 좋아합니다. 오늘부터는 둥굴레차를 따뜻하게 데웠습니다. 저녁을 먹고 제영법사와 을지로 입구에 들어서니 굴다리에 그림자가 한 둘 씩 어른거립니다. 거사님들이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가로등이 희미한 도로 저 편에서 고관절이 불편한 스마일 거사님이 양쪽 자팡이에 의지하며 걸어 옵니다. 오늘은 특별히 스마일 거사님에게 약간의 촌지와 의약품(연고)를 보시했습니다. 지난 추석에 드려야 하는데 오늘에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오신 거사님은 90명이 조금 넘었습니다. 청도 홍시 280개, 백설기 250쪽, 둥굴레차와 커피 각각 100여 잔을 보시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서로 추석인사를 하며 반가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봉사하신 분은 퇴현 전재성 박사와 거사봉사대의 해룡님, 병순님, 종문님입니다. 도반 전재성 박사는 요사이 테라가타(장로계경) 번역을 한창 마무리 하는 중입니다.
추석을 지내고 본 을지로 거사님들의 얼굴은 여전합니다. 피곤한 얼굴들이지만 인사를 건네면 미소를 띄고 얼굴을 조금 폅니다. 낮이 익은 오래 된 사람은 눈을 마주치지만, 얼굴이 낮선 사람은 눈을 피합니다. 이 모두 생명이 자기를 지키는 모양입니다. 오늘도 담담한 마음으로 보시를 회향했으니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생명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밥과 물, 그리고 옷과 잠자리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만나서 인사를 하며 서로 반가움을 나누는 일은 생명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미소를 짓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미소는 상대방에게 안심과 평화를 줍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미소의 본질은 결국 조화와 균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면 사람은 고통을 느낍니다. 생명을 낳은 자연의 뜻을 생각하며, 희망의 끈을 다시 조여맵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