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는, 잘 아시다 시피,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불자가 되었습니다. 왕유가 관리시험에 합격하여 벼슬을 얻었을 때, 어머니에게 비단옷을 선물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옷을 사양했습니다. “나는 옷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여래의 집에 살면서 인욕의 옷을 입고 있는데 다시 무슨 새 옷이 필요하겠느냐.” 왕유는 거듭 새 옷을 권했으나, 어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나를 욕망의 세계로 이끌려 하지 마라.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은 욕망만을 낳을 뿐이다. 나는 이미 아름답고 추함의 세계를 벗어났거니, 이 입고 있는 옷으로도 남부러울 게 없구나.”
왕유의 어머니 최씨는 당대 고승 보적선사에게 귀의하여 오랜 세월 수행을 한 보살입니다.
왕유의 벼슬길에는 풍파가 많았습니다. 왕유가 57세가 되는 756년 장안(長安)이 점령되자 왕유는 반란군에 사로잡혀 낙양으로 끌려갔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벼슬을 받았지만, 탐탁지 않게 여기고 종남산(終南山) 기슭에 별장을 짓고는 틈틈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난이 평정된 뒤, 왕유는 반란군에게 벼슬을 받았다는 이유로 다시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동생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저는 왕유가 지은 시 조명간(鳥鳴澗)을 읽고 한참이나 그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산새가 골짜기에서 우짖다 - 조명간(鳥鳴澗)
사람은 한가하고 계수나무 꽃은 떨어지며,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텅 비었다.
달이 뜨자 산새가 놀랐는지,
골짜기 속에서 때때로 우짖는 소리를 낸다.
人閑桂花落(인한계화락)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 時鳴春澗中(시명춘간중)
사람은 일 없이 한가하게 앉아있고, 마당의 계수나무에서는 꽃이 소리 없이 떨어집니다. 밤은 고요하고 산은 인적이 드물어 만상이 텅 비어 있는 듯합니다. 왕유의 시는 어느 봄 날 늦은 밤까지 한가하게 앉아있는 시인과 적막한 산의 풍경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이윽고 달이 뜨자 골짜기 사이에서 이따금 새 우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인은 무심하게 뜨는 달을 본 새가 공연히 놀라 우짖는다고 묘사합니다. 저에게는 이 마지막 두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공연히 달을 보고 우짖는 새소리는 이런 저런 오해와 시기로 왕유가 겪어야 했던 험난한 세상사가 아닌지요? 그럼에도 시인은 무심하고 풍경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한 세상 풍진 속에서 수행자가 다다를 수 있는 초탈한 경지를 보여준 왕유가 참 고맙습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