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며 쓸개를 꺼내 꿈도 꺼내고 추억도 꺼내 먼지와 소음으로 뒤범벅이 된 술집과 거리에 늘어놓고는
지나가는 사람들 다 불러모아 약장수처럼 한바탕 너스레를 떨다가 철 지난 유행가 가락도 섞어서
저물면 주섬주섬 주워담아 넣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새빨간 저녁노을
세상은 즐겁고 서러워 살 만하다고, 그것이 지금 노을이 내게 들려주는 말이리
(신경림, '귀로에' 전문, 시집 <낙타>에서)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가을이 느껴졌다.
'귀로(歸路)'는 그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만이 아닌,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라는 뜻일 게다.
세상에 나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풀어놓고 전시하듯이 살면서, 때로는 누군가를 만나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철지난 유행가 가락을 불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해가 저물 무렵 그렇게 풀어 놓았던 것들을 주섬주섬 담아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새빨간 저녁노을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을까.
지나간 세월 돌이켜보면, 세상은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서러운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인생의 황혼 무렵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것이 마치 저녁노을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을 늘 가을이라는 계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