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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식민지 경성을 누빈 'B급' 건축가들의 삶과 유산'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에서 활동했던 13명의 건축가를 통해, 우리의 근대 건축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980년대에 종로의 랜드마크였던 화신백화점을 지은 박길룡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최초이자 최고의 건축가'란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고대(보전)의 본관을 건축하고 해방 이후에도 지속적인 활동을 했던 박동진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그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이화여대 건물을 지은 강윤과 박인준, 김세윤, 김윤기, 이천승 등의 활동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그들의 삶과 건축 활동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우리가 시인으로만 알고 있는 이상(김해경)의 건축가로서의 면모와, 건축용어사전에 심혈을 기울였던 장기인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전 편찬 작업에 잠시 참여를 했던 적이 있었던 지라, 사전을 만드는 일이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전히 혐장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사용하던 건축용어가 통용되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데, 아마도 장기인은 그러한 현실에서 건축 용어를 정리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켰을 것이다. 이밖에도 나카무라 요시헤이, 다마타 기스지와 오스미 야지로 등 일본의 건축가들의 활약에 대해서도 소개를 뻬놓지 않았다. 또한 일본으로 귀화하여 조선에서도 활동했던 윌리엄 보리스라는 인물과, 전통 가옥을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근대 한옥의 개념을 확립한 정세권 등 당시 젊은 건축가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공부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다양한 건축인들의 어적과 우리나라의 현대 건축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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