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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성서에 나오는 지명과 성경단어 ***
1. 예루살렘
고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계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성스러운 도시였다. 도시가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기원전 35세기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기원전 25세기경의 고대 문서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아브라함 시대의 살렘은 전통적으로 예루살렘과 같은 곳으로 간주되었다. 예루살렘에 붙여진 별칭들로는 다윗 성 , 하느님(주님)의 도성, 시온, 정의의 도읍, 충실한 도성 , 거룩한 도성, 진실한 도성, 아리엘, 야훼삼마 같은 것들이 있었다.
1)지리적 환경과 역사
팔레스티나 중앙 산악 지대에 있는 예루살렘은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약 60km 떨어져 있었고 해발 770m 정도 되는 고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도시 주변에는 키드론과 힌놈 같은 깊은 골짜기들이 있었다. 건조하고 바람 많은 지중해성 기후를 띠고 있었으며 농사를 짓기조차 척박한 땅으로서 물조차도 충분하지가 않았다.
예루살렘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은 구약의 다윗 임금 때부터였다. 다윗 시대 이전에는 여부스라고도 불렸는데, 당시에는 간선도로에서 떨어져 있었고 천연자원도 별로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더군다나 그곳은 이스라엘이 그때까지 정복하지 못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다. 다윗은 그곳을 점령한 후 수도로 삼았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것은 통일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다윗이 남쪽과 북쪽의 지파들을 통합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예루살렘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이었던 것 같다. 통일 왕국의 중앙에 위치해 있고 남부 지파(유다와 벤야민)와 북부 지파(나머지 열 지파)들이 구분되는 경계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양쪽 지역을 통솔하고 하나로 묶기에 적절한 위치로 판단되었던 것 같다. 이 밖에도 당시 여부스족이 차지하고 있어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도시였다는 점과 골짜기로 둘러싸인 지형 조건이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한 천혜의 조건이었다는 점도 이곳을 수도로 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후 다윗은 가장 먼저 계약의 궤를 그곳으로 옮겨 왔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형태의 예배와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계약의 궤가 모셔진 예루살렘에 모였다.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수도로서 예루살렘의 영원성은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신 것과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하느님과 예루살렘 사이의 연관성을 튼튼하게 한 사람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었다. 예루살렘의 영광은 솔로몬 시대에 최고조에 달했다.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갈라진 후 예루살렘은 남유다의 수도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비록 북 왕국이 정치적으로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그곳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가끔 예루살렘에 올라옴으로써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대한 충실성을 보여 주곤 하였다.
기원전 721년 북 왕국이 아시리아에게 패망한 이후에도 남 왕국은 수도 예루살렘과 함께 상당기간 동안 독립국으로 존속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된 것은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의해서였다. 이전까지 예루살렘은 때때로 주변국들의 침입 위협과 약탈을 당하기는 했지만 본래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었다.
바빌론에 의해 철저하게 폐허가 되어 버린 이후 예루살렘은 예전의 영화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유다인들의 삶과 믿음의 중심지로 남아 있었다. 파괴와 재건을 반복해 가며 로마제국 시대에 이른 예루살렘과 성전은 헤로데 대임금에 의해 좀 더 화려한 형태로 복구되었지만 기원후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또 다시 파괴되고 말았다. 예수님 시대에도 예루살렘은 유다인들의 믿음과 예배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오가곤 했다.
2) 계시 역사에서 지니는 의미
(1)구약 성경
거룩한 도읍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이고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임금의 옥좌가 있는 곳이며 성막과 성전을 통해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지상 처소 로서 하느님 백성과 그분의 왕국을 상징했다. 하느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거룩한 도시요 그분의 옥좌 인 예루살렘은 유다인들에게는 지극히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던 곳이었다.
그들은 그곳을 찬양하고 동경했다. 예루살렘은 그 죄악으로 인해 멸망을 선고받기도 했지만 이는 언젠가 다시 회복될 것이며 예루살렘의 회복은 하느님께서 계약에 충실하심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표지가 될 것이다.
재건될 예루살렘의 모습은 메시아적 개념의 토대 위에서 묘사되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다는 것은 메시아의 왕국이 서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예언자들은 역사의 종말을 예고하면서 그때에는 예루살렘의 모습이 새롭게 될 것이라고 언급해 왔다.
궁극적으로 메시아의 수도요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영광을 누리게 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예배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값진 새 모퉁잇돌 위에 재건될 예루살렘은 역사와 지리상의 범위를 넘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의 상징이 되고 구원의 빛이 퍼져 나오는 곳이 될 것이다.
(2) 신약 성경
구약의 개념은 신약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관해 하신 예고들 안에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루살렘의 파멸을 경고하던 때의 통렬함이 묻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땅히 받아야 할 심판으로부터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려는 열망을 표명하셨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예루살렘의 속량과 예루살렘에 내린 은총이 예수님과 함께 나타났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인류 구속 사업이 완성될 장소로 명시되었다. 주로 갈릴래아 지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생애 마지막 몇 주간을 예루살렘 (또는 근처)에서 보내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다시 일으켜지신 곳이 예루살렘이었고 승천하신 곳도 그곳이었다.
예루살렘은 또 성령강림과 함께 교회가 시작된 곳이며 복음이 처음으로 선포된 곳이었다. 그곳은 교회의 선교 활동의 중심지였으며 그곳으로부터 교회는 세상 끝까지 뻗어나갈 것이다. 예루살렘은 첫 번째 사도 회의가 열린 곳이었다. 바오로 사도도 예루살렘을 지상 교회의 중심으로 보았고 그곳을 자기 사명의 근원이 되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는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친 후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체포되었다.
신약 성경에서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예루살렘과 관련하여 천상 예루살렘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구원 역사 안에서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던 지상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예시한 것이다. 불충실한 지상 예루살렘은 사라지게 될 것이지만 새로운 천상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약속을 품고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 또는 천상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해 손수 형성하신 곳이며 당신 백성과 함께하시면서 영원히 통치하실 곳이다.
** 계시(啓示) 1. 요약 신이 자신을 드러낸다고 이해되는 종교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 2. 내용 특히,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신에 의한 창조물, 역사, 인간의 양심, 그리고 성서를 통하여 나타난 계시라고 이해함으로써 이를 인간적인 경험이나 사유에서 유추된 진리와 구분하고 있다. 이에서 더 나아가 전통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서는 계시를 일반 계시와 특수 계시로 나눈다. 일반 계시는 삶의 모든 현상 속에 내재하여 있는 신의 의도를 지칭하는 것이고, 특수 계시는 신의 말씀인 성서와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하여 현실화된 구원의 섭리를 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구속사(救贖史)를 뜻한다. 이러한 이해에 근거를 두고 절대 존재이고 창조주인 신을 신앙하면서 그의 의도나 섭리를 파악하고, 그것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종교들을 일반적으로 계시종교라고 부른다. 힌두교의 전통에 의하면 베다(Veda)는 성선(聖仙)이 신비한 영감에 의하여 기술한 천계문학(天啓文學)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계시의 개념이 그리스도교에서처럼 진전되지는 않았다. 이슬람교에서는 계시를 영감과 구분함으로써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사 일반에서는 계시를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해하고 있는데, 신탁(神託)이나 미래에 대한 예견, 점복(占卜)·현몽(現夢) 등도 이 범위에 속한다. (1) 동학 : 우리 나라 종교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계시현상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崔濟愚)의 종교경험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는 37세였던 1860년, 마음과 몸이 떨리면서 공중에서부터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그러한 탈자적(脫自的)인 상황 속에서 신과의 문답을 통하여 한울님에게서 후천개벽의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듣고 득도한다. (2) 증산교 : 증산교(甑山敎)에서도 교조인 강일순(姜一淳)을 우주 최고의 주재신(主宰神)으로 믿으면서, 그가 대순(大巡)의 진리를 계현계시(啓現啓示)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계시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다. (3) 무속신앙 : 특히, 무속신앙에서는 신령들을 초청해서 신의(神意)를 듣는 공수과정이 굿의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볼 때, 그 종교현상이 가지는 계시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계시의 이러한 현상 때문에 신비경험과 관련돼서 논의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비경험에서 탈자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은 계시경험의 속성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경험내용은 신비경험이 초월적인 것과 종교 경험 주체 간의 신비적 합일인 데 반하여, 계시경험은 전적으로 초월적인 존재, 또는 신에게서 말미암은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또한, 계시를 초월적인 인식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이때 이러한 계시경험이 어떻게 이성에 의한 인식과 관련지어지는 것인가 하는 데 대한 논의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종교철학의 주제가 되고 있는 이와 같은 문제는 종교적 신앙의 주체에 대한 논의와 아울러 서로 다른 여러 종교의 인간관을 구성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종교 사제의 예언자적 기능이 전통적인 계시 개념의 맥락에서 다루어지기도 한다. 개인의 윤리적 실천이나 사회의 구조적 이념체계나 역사의 진전에 대한 종교적 비판의 기능이 예언자의 소임으로 여겨지면서, 그것이 가능한 근거로서 절대자의 의도의 드러냄, 곧 계시적 권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일반화된 개념으로는 종교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 일반에서도 일상적으로 말해오던 영감의 존재론적 근거로 계시가 논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는 예술가의 당위적인 창작 동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인 힘에 대한 사로잡힘, 그것으로 인한 새로운 세계의 열림을 지시할 뿐, 초월적인 절대자의 자기 현시라는 고전적인 개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계시가 지닌 고전적인 개념을 함축하면서도 종교 현상 일반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선택되는 종교학적 개념은 성현(聖顯)이다. 그러나 성현은 신성(神聖)이 드러난 현상, 곧 종교 현상의 구조적 속성을 지시하며, 그 현상의 의도를 해석하고자 시도할 뿐 계시의 주체인 신성의 인격적 속성을 필연적으로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신학적 개념의 계시와는 다른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의 변천과정에서 계시에 대한 현대적 인식의 변모를 엿볼 수 있다. |
2. 사마리아(Samaria)
사마리아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 북 왕국인 이스라엘의 임금 오므리는 비싼 값을 치르고 산 땅 사마리아에 기원전 9세기 초 새로운 수도를 세웠다. 그곳은 남 왕국인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8km 떨어져 있었다.
사마리아는 주변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도시였기에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가 쉬웠고 또한 남북뿐만 아니라 동서를 잇는 주요 도로가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으므로 오므리 임금 이후 한때 번영을 구가하기도 했다. 사마리아는 처음에 한 도시의 이름이었지만, 후에 이스라엘 또는 에프라임처럼 북 왕국 전체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사마리아는 지정학적인 좋은 위치와 값진 곡물이나 올리브, 포도 등을 생산할 수 있는 비옥한 땅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은 페니키아, 시리아 등 이방 국가들과의 교역이나 교류가 잦았던 이유로 이방 종교와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았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순수성을 잃을 가능성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북 왕국이 기원전 721년경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했을 때 아시리아 임금은 많은 사마리아인들을 다른 곳으로 추방하고 사마리아에는 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민족들을 데려와 정착시켰다. 이후 사마리아인들은 이민족들과 피가 섞여 혼합 인종이 되었고 그들의 종교 역시 이민족들이 갖고 들어온 이방 신들 때문에 혼합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사마리아는 아시리아에 뒤이어 차례로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의 통치 아래서 기원전 30년경 사마리아는 헤로데 왕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는데, 이때 헤로데는 사마리아를 세바스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했다. 사마리아는 파괴되고 재건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살아오다가 기원후 66-70년 유다인들의 반란 때 다시 파괴되었다.
신약 시대에 사마리아는 북쪽의 갈릴래아와 남쪽의 유다 사이에 놓여 있는 중앙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팔레스티나의 요르단 강 서부 지역은 크게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이 세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사마리아는 동쪽으로는 요르단강, 서쪽으로는 지중해, 남쪽으로는 요빠 계곡, 북쪽으로는 이즈르엘 평야(에스드렐론 평야)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구약에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사마리아 사람들로 지칭했지만, 신약에서는 사마리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사마리아 사람들로 지칭했다.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의 종교적인 전통을 신봉하던 사람들도 사마리아인이라 불렀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오경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모세오경만이 그들의 교의와 관습들의 기초가 되었고 그들은 제정일치 체제 아래서 대사제가 정하는 규율을 따랐다.
모세를 하느님께서 보내신 최고의 예언자요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개자로 생각했으며, 심판 날에 의인들은 낙원에서 부활하고 악한 사람들은 영원히 타오르는 불 속에 떨어진다고 믿었다. 그들은 다윗 가문에서 나올 메시아보다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 줄 구원자를 기다려 왔다. 그들은 또 유다인들보다 안식일이나 정결례 등 율법을 더 엄격하게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의 거룩한 산인 그리짐 산을 이스라엘의 예배가 이루어지는 유일한 장소로 쓰려고 하느님께서 택하신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비록 공동의 신앙 유산을 나누어 갖고 있었지만, 서로 반목하며 접촉하지 않았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율법적으로 정결하지 않고 로마에 호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을 무시하고 경시했다. 사마리아인이라는 말 자체가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경멸의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 신앙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유다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은 구약 시대부터 생겨난 것으로 그들 사이의 분열은 오래전부터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마리아가 아시리아에 의해 파괴된 이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시리아에 의해 강제 이주해 온 사람들로서 비록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받아들여 예배하기는 했지만, 이를 그들이 이미 믿고 있던 다신교적인 신앙과 혼합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온전한 유다인도, 온전한 이방인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은 비록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을 때 이스라엘인이 아닌 사람들이 자기들의 지역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이스라엘의 후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이 순수한 이스라엘 혈통을 지키지 못하고 혼합주의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그들의 참여를 거부했다. 이때부터 반목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해서 사마리아인들이 기원전 4세기경 그리짐 산에 그들만의 성전을 세웠을 때 두 민족은 완전히 분열되었다.
이방인들이 그러했듯이,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인들을 이스라엘 가문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같은 시대 유다인들의 태도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경건한 유다인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셨다. 즉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시면서 사마리아 여인과 거리낌 없이 접촉하셨고 이때 사마리아 여인은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그분을 메시아로 고백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충실하셨지만,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으셨다.
이 점은 예수님께서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과 진리로 참되게 예배하게 될 종교가 장소에 연계되어 있던 종교를 대신할 것임을 알려 주신 것에서 분명하게 표명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유다 사회로부터 추방된 이들을 당신 자신과 연계시킴으로써 의로움은 혈통이나 종교의식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믿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임을 계시하셨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모든 이방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기초를 놓으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 사도들에게 사마리아에도 복음을 전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셨고, 사도행전에서는 그분의 말씀처럼 초대 교회가 사마리아인들에게 성공적으로 복음을 선포했다고 서술해 주고 있다.
3. 갈릴래아(Galilee)-갈릴리
신약 시대의 갈릴래아는 팔레스티나를 이루고 있던 주요 세 지방(갈릴래아, 사마리아, 유다) 가운데서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던 이곳의 남북 간 길이는 80km, 동서 간 길이는 50km 정도 되었다. 갈릴래아의 동쪽 경계는 갈릴래아 호수와 요르단 강이었으며 서쪽과 북쪽은 시리아, 페니키아와 접경을 이루고 훌레 호수에 이르렀다. 남쪽은 에스드렐론 평야와 이즈르엘 계곡이 사마리아 지방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고원지대에 속한 갈릴래아는 북부 갈릴래아와 남부 갈릴래아로 나눌 수 있는데, 두 지역이 지형이나 기후 조건에 있어서 많이 달랐다. 북부 갈릴래아는 바위와 산이 많았고 레바논 산맥이 계속 이어지는 곳이었다. 아주 높은 곳은 해발 1km가 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남부 갈릴래아는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였고 해발이 평균 500-700m 정도였다. 그리고 비옥한 에스드렐론 평야를 비롯하여 곳곳에 평야가 많았으며 기후도 북부에 비해 따뜻했다.
갈릴래아는 사마리아나 유다에 비해 연중 강수량도 조금 더 많은 편이었고 평야도 비옥했다. 특히 남부 갈릴래아는 농업이 주를 이루었으며 유명한 작물들에는 밀, 보리, 포도, 석류 열매 등이 있었다. 또 갈릴래아 호수를 중심으로는 어업이 발달했다. 갈릴래아의 주요 수출품들은 올리브기름, 곡물, 어류 등이었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올리브기름은 오랫동안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아 왔다. 또한 갈릴래아는 이곳을 관통하는 국제 무역로를 이용하던 대상(隊商)들에게서 관세를 받아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구약 시대에 갈릴래아는 처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 납탈리 지파에 분배된 고원지대 국가 북쪽에 있던 작은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후 왕정 시대를 거치는 동안 그 주변 지역까지를 포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2) 그래서 납탈리족과 그 주변의 아세르족, 즈불룬족, 이사카르족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함께 어울려 살고 있었던 지역까지도 갈릴래아에 속하게 된 것 같다.
기원전 734년경, 아시리아 임금인 티글랏 필에세르가 갈릴래아를 정복했을 때 그는 그곳 주민들을 포로로 끌고 갔고 대신 그곳에 이방인들을 데려와 정착시켰다. 이후 6세기 동안에 걸쳐 갈릴래아는 바빌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 등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침략을 당했다. 그 결과 유다 민족과 이방 민족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165년경 마카베오 유다는 형 시몬을 시켜 이민족들의 공격을 받고 있던 갈릴래아의 유다인들을 빼내와 유다 지방에 정착시키기도 했다.
기원전 104년경 갈릴래아를 정복한 하스몬의 임금 아리스토불루스 1세가 그곳 주민들에게 할례와 유다교 신앙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여 유다교적인 분위기가 대세를 이룬 적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갈릴래아는 이민족들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이처럼 유다인, 아르메니아인, 이두래아인, 그리스인, 페니키아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살게 됨으로써 이방인적인 요소들이 넘쳐 났던 갈릴래아는 이민족들의 땅이라 불리기도 했다.
기원전 63년 팔레스티나가 로마제국에 함락된 이후 신약 시대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갈릴래아는 헤로데 임금의 뒤를 이은 헤로데 안티파스가 영주로서 다스리고 있었다. 그 뒤로는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와 헤로데 아그리파스 2세가 차례로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이후 갈릴래아는 유다교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갈릴래아에서 발견된 회당의 잔재들은 기원후 2세기부터 7세기까지 그곳에서 유다교가 번성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갈릴래아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는 지역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삶의 터전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이었으며 그래서 갈릴래아 사람이라 불리기도 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공적인 직무 수행의 대부분이 갈릴래아 지방에서 이루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공적인 직무 수행의 중심지였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당신의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셨고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해 보이셨다.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33가지 큰 기적들 가운데서 25개가 갈릴래아에서 이루어졌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32가지 비유 이야기들 가운데서 19개가 갈릴래아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전해 주신 곳도 갈릴래아였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 갈릴래아 출신이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보다 앞서 가시어 그들을 만나신 곳도 갈릴래아였으며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주신 곳도 갈릴래아에 있는 산에서였다.
그러나 남쪽의 유다인들은 북쪽의 갈릴래아 사람들이 유다 민족으로서의 혈통을 순수하게 보존하지 못하고 전통 역시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멸시하고 무시하기까지 했다. 사실 갈릴래아 사람들은 그 말투도 약간 독특해 다른 지방 사람들과 구별되었으며 그곳의 결혼 풍습 등의 여러 가지 관습들도 유다 지방의 그것들과 많이 차이가 나기도 했다. 복음서에서는 당시 예루살렘이나 유다 지방의 유다인들이 갈릴래아 지방의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고 있었음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유다교의 편협한 율법주의나 바리사이적인 편견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갈릴래아 사람들은 배타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유다 지방 사람들보다 예수님의 존재와 갈릴래아에서의 그분의 직무를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4. 베들레헴(Bethlehem)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팔레스티나의 남쪽 유다 지방에 속한 마을로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 정도 떨어져 있던 이곳은 해발 약 770m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은 중앙 고지대를 따라 남북으로 난 주요 도로가 지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도로는 남으로 헤브론과 브에르 세바를 거쳐 네겝 지방과 이집트로 뻗어나갔다.
베들레헴은 유다 산맥의 바위 많은 지맥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경작할 수 있는 땅은 주로 협곡들 사이에 있는 작은 땅들뿐이었지만 그래도 목초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보리와 밀을 재배하고 목축을 했다. 동쪽으로는 유다 광야가 펼쳐져 있고 주변 지역에는 비옥한 언덕과 계곡들, 무화과와 올리브 과수원, 포도밭 같은 것들이 있었다.
기후는 여름과 겨울 평균 기온이 각각 섭씨 23도와 14도 정도되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였다. 평균 강우량은 약 47cm였다. 베들레헴의 이름은 아마르나 편지에 처음 등장한다. 성경에서는 살마가 베들레헴을 세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도시의 기원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마을이었다.
구약에서 베들레헴은 처음에 에프랏으로 알려졌지만 보통은 유다 베들레헴 또는 에프라타 베들레헴으로 불렸던 것 같다. 이곳은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판관 시대에 사제로서 미카에게 봉사했던 한 레위인의 고향이었다.
베들레헴은 또 다윗 임금 초기에 필리스티아군 주둔지였으며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하나인 엘하난의 고향이기도 했고 다윗의 부하인 아사엘이 묻힌 곳 으로써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이 요새를 구축한 도시들 중 하나였으며 유다인들이 바빌론의 압제를 피해 이집트로 달아날 때 지나간 곳이었다. 이 밖에 바빌론 유배로부터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베들레헴 사람들이 언급되기도 한다.
구약에서 베들레헴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특히 다윗과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곳을 메시아적인 연관성을 지닌 도시로 묘사하고 있다. 보아즈와 룻의 이야기를 주로 기록한 룻기의 무대가 바로 베들레헴이었는데, 그들은 다윗의 조상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다윗은 조상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목자로 일하다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 미카 예언자는 베들레헴이 메시아의 탄생지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예언에는 다윗을 잇는 임금 중의 임금, 목자 같은 임금이 다윗 조상 대대로 고향에서 나오리라는 중요한 사실이 내포되어 있었다.
신약 시대에 와서 베들레헴은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의 탄생지로서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당시에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복음서 저자들도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마태오는 이 사실을 미카의 예언이 실현된 것으로 해석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베들레헴을 다윗의 고을이라 일컫고 있다.
한편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후,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자리라고 추측되는 곳에 주님의 탄생 교회가 지어졌으나 6세기 초에 파괴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6세기 중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더욱 크고 화려한 교회가 다시 세워져 기본 구조를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유다의 베들레헴 외에도 북쪽 즈불룬 땅에, 나자렛에서 북서쪽으로 약 11km 떨어진 곳에 같은 이름의 도시가 또 있었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이스라엘 판관이었던 입찬이 태어나고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5. 산헤드린(최고의회)
‘산헤드린’이라고도 하는 예루살렘의 최고의회는 신약 시대 유다교의 최고 통치 기구였다. 당시 팔레스티나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은 유다교 최고의회에 종교적, 법률적,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상당한 자치권과 권위를 허용했다. 그러나 최고의회는 로마가 정해 놓은 한계 내에서만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사형 같은 중대한 형벌의 경우에는 로마에서 직접 담당하도록 넘기거나 로마 당국의 승인을 받아 처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단순히 유다교의 종교적인 문제인 경우에는 로마가 거의 간섭하지 않았던 것 같다. 최고의회는 대사제와 수석 사제들, 귀족 계급의 원로들 그리고 율법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인원은 우두머리인 대사제를 포함해 71명이었던 것 같다. 사제들은 주로 사두가이들이었고 율법 학자들은 대부분 바리사이였다.
최고의회는 특히 최고 법정 역할을 했는데, 유다교의 관습이나 실행이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판결을 내리는 권위를 갖고 있었다. 그곳은 하급 법정에서 다룰 수 없는 문제들을 가져가는 최종 법정이기도 했다. 최고의회가 어떤 일에 관해서 판단할 때, 그 기준은 율법이었다. 구약의 율법은 종교의식뿐만 아니라 유다인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다루었기 때문에 최고의회의 영향력은 유다인들의 삶 전반에 미쳤다. 예수님 시대에 최고의회의 관할지역은 주로 남부 팔레스티나의 유다 지방이었던 것 같다. 최고의회는 신중하고 공정하게 판단을 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절차와 장치들을 갖추고 있었지만, 예수님 문제에 관해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최고의회가 모세 때의 원로 모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보다는 대체로 바빌론 유배 후에 형성된 것으로 본다. 그리스 시대 팔레스티나는 내정(內政) 자치 상태였고 세습 대사제가 관장하는 원로 귀족회의가 실제로 다스렸는데, 이것이 나중에 최고의회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카베오 시대에 볼 수 있는 원로와 사제단이 최고의회와 비슷한 형태였던 것 같다. 율법 학자들은 나중에 가서 최고의회에 포함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최고의회에 관한 언급은 대부분 예수님의 수난이나 재판과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회는 초대 교회를 반대하던 유다인들의 중심에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한편 지역의 공동체 지도자들이나 원로들로 구성된 소규모 지방 의회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의회는 신앙문제를 다루는 법정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지역의 회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사람들을 회당에서 쫓아내거나 신체적인 체벌을 가하는 일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6. 나자렛(Nazareth)-나사렛
로마의 속주(屬州)였던 갈릴래아의 남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나자렛은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이 살았던 곳이다.1) 나자렛은 레바논 산맥의 남쪽 끝머리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석회석 구릉지의 해발 약 360m되는 곳에 세워진 마을이다. 동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 이렇게 세 면이 산이나 언덕으로 둘러싸여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에스드렐론 평야가 내려다 보였다.
나자렛에서 갈릴래아 호수 남쪽 끝까지의 거리는 약 24km, 지중해까지의 거리는 약 32km였다. 이곳은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이 충분했으며 땅이 비교적 비옥하여 과일이나 곡식, 채소, 야생화들이 자라기에 적합했다. 또한 프톨레마이스와 데카폴리스를 연결하는 도로 등 무역로나 다른 도로들이 이곳 나자렛 근처를 지나갔다.
하지만 마을 자체가 주요 도로를 끼고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나자렛은 당시 갈릴래아 지방에서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주요 지역 가운데에는 속하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자렛은 한적한 외딴 곳으로 도시로부터는 빗겨나 있던 지역이었다. 이렇게 나자렛은 지형적인 조건들 때문에 이스라엘의 국가적이고 종교적인 삶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주목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다지 관심을 끌만한 지역도 아니었다.
구약 성경 안에서는 나자렛이라는 지명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나자렛은 신약 시대에 와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사셨던 장소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예수님의 고향이 나자렛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 또는 나자렛 출신의 예수님이라고 불렀다. 한편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나자렛 분파라고 불렀다.
마리아는 바로 이 나자렛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 탄생에 관한 예고를 전해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며 탄생하신 후에는 헤로데 임금의 어린아이 대학살을 피해 잠시 부모님과 함께 이집트로 피신해 거기서 사셨다. 그 후에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오시어 소년 시절을 거쳐 메시아로서의 공적인 직무를 시작하시기 직전까지 거기서 사셨다. 한편으로 나자렛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공적인 직무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과 그분이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배척하기까지 했다.
7. 광야
성경에서는 ‘광야’라는 용어가 ‘사막’이라는 용어와 거의 같이 사용되고 있는데, 광야는 대개 건조하고 사람이 살기 힘든 불모의 땅을 가리킨다. 팔레스티나에서 광야라고 할 때는 다음의 몇 가지 형태의 지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즉 바위나 모래로 이루어진 황무지뿐만 아니라 가시밭, 산악 지대, 숲 그리고 목축이 가능한 목초지나 대초원 등이다. 팔레스티나의 광야에는 아주 짧지만 비가 오는 시기도 있고(3월-5월 초) 그곳의 유목민들이나 반유목민들에게 물을 공급해 주는 샘과 오아시스도 있다. 팔레스티나에서 광야는 대부분 동쪽과 남쪽 지역에 있었는데 성경에도 광야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즉 브에르 세바, 벳 아웬, 수르, 에탐, 다마스쿠스, 신, 친, 시나이, 파란, 에돔, 카데스, 모압, 크데못, 지프, 마온, 엔 게디, 유다, 기브온, 여루엘, 트코아 등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는 의미가 깊다. 그들은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40년 간을 지냈다. 이 광야 체험에 대한 기억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에 걸쳐서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시험과 시련의 장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하느님과의 친교의 장소로서 그분의 보호와 은총을 체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구약 성경에서 광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경우가 많다. 광야는 귀신과 해로운 짐승이 출몰하고 스산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며 바람이 휘몰아치고 씨앗을 뿌릴 수 없으며 사람이 살지 않는 위험과 고난과 죽음의 영역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배고픔과 목마름과 상실이 있는 끝없고 무서운 나쁜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광야라는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긍정적인 이미지도 갖고 있다.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했듯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해 주시는 곳이고 보호와 영적 쇄신의 장소가 되기도한다. 하가르와 모세와 엘리야는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다윗이 장래를 위해 필요한 훈련을 받은 곳도 광야였다.
구약 성경에서는 광야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도시와 나라를 사막으로 만드실 것이다. 하지만 성령이 쏟아져 내려오는 구원의 때에 사막은 꽃과 나무가 무성한 낙원으로 바뀌어 정의의 터전이 되고 그곳에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 광야는 고행이나 수련, 정화, 기도의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극기의 생활을 하면서 회개와 세례를 선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공적인 직무를 시작하기 전에 단식하시고 기도하시며 광야에서 40일을 보내셨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시는 동안 그분께 광야는 기도의 장소로서 아버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셨던 곳이었다.
8. 신약성경 속 화폐의 종류
요약 신약 성경에는 그 당시에 쓰던 여러 화폐가 등장한다. 즉 데나리온, 렙톤, 미나, 스타테르, 콰드란스, 탈렌트 같은 것들이다. 이 가운데 미나나 탈렌트는 무게 단위로 사용되었다. 당시 화폐들의 값을 지금의 수치로 환산하여 평가하기는 결코 간단치가 않다.
1) 로마의 화폐
* 데나리온
은으로 만들어진 로마 시대의 기본 화폐로서 1데나리온은 당시 일반 노동자가 받는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값어치를 지녔던 것 같다. 1드라크마(그리스 은화)는 1데나리온과 거의 값이 같았다.
* 아스
동전으로서 1아스는 약 1/16데나리온이었다.
* 콰드란스
역시 동전으로서 1콰드란스는 약 1/64데나리온과 값이 같았다.
2) 그리스의 화폐
* 드라크마
은으로 만들어진 그리스의 기본 화폐로서 1드라크마는 1데나리온(로마 은화)에 해당했다.
* 스타테르
은화로서 1스타테르는 약 4드라크마와 거의 값이 같았다.
* 렙톤
동전으로서 당시 유통되던 동전들 중에서 가장 값이 쌌다. 1렙톤은 약 1/144드라크마였다.
* 미나
1미나는 약 100드라크마에 해당하는 값어치를 지녔다.
* 탈렌트
탈렌트는 화폐가 아니라 화폐의 계산 단위였다. 탈렌트의 값은 아주 높았다. 1탈렌트는 약 6,000드라크마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녔다.
9.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 주제였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의 이미지는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느님의 나라는 서로 다른 여러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성경에서 볼 때 하느님 나라의 첫 번째 개념은 하느님께서 왕권을 행사하신다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은 왕권과 주권을 지니고 세상을 통치하는 분이시며 훗날 세상을 다스리러 오실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주적이고 영원히 지속되며 영광과 권능과 광채가 넘쳐나는 나라이다. 신약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느님 나라의 개념은 구약 성경에서 그토록 강조한 하느님의 주권에 토대를 두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다윗의 옥좌를 하느님의 나라로 언급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다윗 왕국은 하느님의 왕권이 구체적으로 행사되는 나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하느님의 통치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하느님께서 지상에 세우실 미래의 왕국을 예견해 주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앞으로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는 악이 완전히 극복된 곳으로서 그곳에는 행복과 평화와 기쁨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라는 고통을 겪은 후,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와는 거리가 먼 자기들의 현실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라는 개념을 영적인 실재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하느님의 나라는 신약 성경의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시고 그것의 신비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씨 뿌리는 사람, 겨자씨, 누룩, 보물, 진주상인, 그물, 포도밭 주인,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종에게 재산을 맡기는 주인, 저절로 자라는 씨앗 등에 비유하여 설명해 주셨다.
이러한 비유들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은 하느님의 통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와 그 나라와의 관계 형성을 강조하기도 하셨다. 또한 성장하는 하늘나라와 완성을 향한 과정으로서의 하늘나라 그리고 어느 것보다 우선하는 가장 고귀한 가치로서의 하늘나라의 성격에 관해서도 분명하게 밝혀 주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제자들과 초대 교회가 선포했던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는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것이기도 한 이중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우선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다고 선포했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형태의 메시지를 되풀이해 전해 주셨지만 ,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나라가 당신이 수행하고 계시는 사명 안에 이미 현존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권능의 행위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현존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들이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인격과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의 권능과 회개하고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들의 믿음의 응답 안에서 찾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권위에 복종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이미 와 있는 하느님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은 오지 않았지만 미래에 올 것으로서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들 안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온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 어떤 차별 없이 하느님의 나라에 초대를 받고 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부와 명예, 지위 같은 것들은 결코 필요치 않다. 종교 지도자, 부자, 권력자라고 해서 특별하게 대접을 받거나 환영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겸손한 사람들이라야 참으로 그 나라를 차지할 수가 있다. 그런데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다음과 같은 행위들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즉 회개하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믿어야 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그 나라를 우선적으로 찾고 구하여야 하며 그 나라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속의 가치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그 나라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10. 할례(포경수술, 환상 절제술)
남성 성기의 포피를 잘라 내는 것을 할례라 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받아야만 했다. 처음에는 주로 아버지가 할례를 베풀었지만 후에는 전문가가 담당했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할례를 받던 날 이름도 함께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주변의 이집트나 아라비아, 모압, 암몬, 에돔 등에서도 할례가 행해졌지만 할례는 특히 이스라엘 민족의 예배 의식과 관습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할례는 단지 외과적인 절차에 머무는 일이 아니었다. 구약 성경에 따르면 히브리인들의 할례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 그리고 그 후손들과 계약을 맺으시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스라엘에게 할례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물리적 상징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다른 민족과 구별하는 아주 결정적이고 특징적인 표시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방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자들로 여겨졌다.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란 표현은 경멸적인 용도로 사용되면서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에서 제외된 사람들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다른 민족들에게 할례는 사춘기 무렵 받는 일종의 성년식의 일부였던 것 같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에게 그것은 이스라엘의 세대가 물리적으로나 영성적으로 계속 계승되어 가고 있음을 상징했다. 히브리인은 할례를 통해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고 공적인 의식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할례를 받아야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하신 약속을 나누어 받을 수 있었다. 할례는 특전뿐만 아니라 동시에 의무도 부여했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특별한 종으로 부르신 거룩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인들은 그분과 맺은 계약을 믿고 그분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인들과 더불어 살던 외국인이나 종들에게도 할례를 받을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마카베오 시대 이스라엘의 많은 여자들은 할례를 베풀지 말라는 이교도 임금에게 저항하여 계약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기도 했다.
할례라는 물리적인 행위는 영적인 의미와 결부되어 마음의 할례라고 표현되기도 했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말하는데, 그것은 순종에서 나오고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하는 그런 사랑을 말한다. 할례는 하느님께 온전히 헌신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외적인 상징이었지만, 내적인 헌신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예언자들은 마음의 할례를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 내용에 성실하게 응답할 것을 촉구했다.
유다인들의 할례 관습은 신약 시대에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할례를 받으셨다. 유다인은 할례 받은 이, 이방인은 할례 받지 않은 이로 구분될 정도로 할례는 유다인들에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이방인들에게도 과연 할례를 요구해야만 했는지의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문제를 다룬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입장은 그리스도교적인 믿음과 친교에 할례가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다계 신자들이 할례를 고집하는 것은 유다이즘을 뛰어넘어 이방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장벽이 될 수도 있었다.
사실 사도 바오로 역시도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데 할례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계약이 모든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고, 또한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하느님 백성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할례는 이미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된 옛 계약의 일부일 뿐이다. 할례를 옛 계약의 상징으로 간주한 바오로는 나아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세례를 새로운 의식적인 상징으로 강조하고 있다. 사실 아브라함도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참된 할례는 내적인 것으로서 회개와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마음의 할례이다. 신약에서도 구약에서 말한 할례의 영적인 차원이 되풀이되고 있다. 육체적인 할례는 순종하는 행위가 동반될 때만 가치가 있다. 그리고 할례라는 외적인 상징은 계명을 지키는 것과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 그리고 새로운 창조라는 실재들과 비교하면 별 의미가 없을 수밖에 없
11. 회개
그리스도교에서 회개는 단순히 마음을 바꾸는 것 또는 과거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회한의 감정을 갖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회개는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서 마음과 행동의 완전한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그것은 죄나 악으로부터 돌아서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의식적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참된 회개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준다.
구약 성경에서 회개란 우선적으로 회개를 드러내는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회개를 위해 의식을 거행했다. 단식을 하거나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며 옷을 찢고 소리 내어 울거나 기도를 합송하거나 죄를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들은 회개를 나타내는 의식이었다. 이러한 의식들을 행함으로써 개인이나 공동체는 자기 죄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들은 물론 그것을 통해 진정한 회개를 기대할 수 있기도 했지만 경계해야 할 측면이 있었다.
즉 자칫하면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헌신과 의로움의 길을 걷게 하기보다는 단순한 회한의 표현이 된다든가 아니면 잘못된 지난 행동이 빚은 결과를 피하려는 욕구에 그칠 수도 있었다. 사실 회개했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면, 아무리 회개의 의식을 거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다음으로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외쳤고 우리는 그들의 외침 안에서 회개의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민족 전체가 회개하라는 요구를 전해 들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사악한 삶에서 돌아서 하느님께 순종하고 그분께 신뢰를 두는 삶을 살도록 요구받았다. 예언자들의 그러한 외침은 진정으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라는 요구였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와 인간이 하느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만 하는지를 강조해 주는 것이었다.
회개란 전적으로 새로운 태도와 자세를 갖고 하느님 앞에 나서기 위해 그때까지 간직해 왔던 잘못된 삶의 태도와 습관을 단호하게 떨쳐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회개란 하느님께서 인간 삶의 모든 측면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된 회개는 정의나 사랑, 겸손 등의 행동으로 표명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회개의 열매는 구원이고 악으로부터의 구출이다. 회개의 내면적인 특성은 하느님께서 새겨 주시는 새로운 마음과 정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회개하라는 예언자들의 외침은 신약 시대의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 안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으니 메시아를 맞아들이기 위해 회개해야 한다고 외쳤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증거로 세례와 죄의 고백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행동을 요구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내용 속에도 회개하라는 것은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회개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로서,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일은 예수님께서 행하셔야만 했던 중요한 사명에 속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유다인과 이방인들을 향해 회개를 선포하라고 명하셨다. 세례자 요한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도 회개의 선포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회개의 메시지가 요한의 것보다 확대되어 나타난다. 즉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회개 안에는 당신 자신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연계되어 있다.
즉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내용 안에는 회개와 믿음이라는 것이 마치 동전의 두 양면처럼 내포되어 있다. 즉 인간은 회개함으로써 죄에서 돌아서게 되고 믿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회개와 믿음이라는 이중의 방향 전환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인 셈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 사도들은 회개에 관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했다. 사도들의 복음 선포 역시 사실상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사도들은 그 두 가지가 죄의 용서를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회개를 통해서 악함과 죽은 행실을 떨쳐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일 뿐만 아니라 명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지고의 선물인 회개 없이는 어떤 인간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침으로써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삶과 행동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회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참된 회개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새로이 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회개하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2. 기적(Miracle , 奇蹟)
성경에서는 기적이라는 용어를 하느님께서 특별히 개입하신 결과로 보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경이로운 역사적인 사건들을 가리키는데 사용해 왔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은 마술과 같은 속임수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해 역사에 개입해서 하시는 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또한 그것은 그분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성경에서 기적적인 일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다른 용어들에는 표징이나 징조 또는 이적 등이 있다. 이 용어들은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던 기적이라는 용어보다는 보다 더 구체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구약 성경 속 개념
구약 성경에서 전해 주는 기적 이야기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구출하여 광야생활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시고 모든 맏이들을 죽이셨으며,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가게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와 물을 내려 주셨으며, 십계명을 주셨고, 예리코를 점령케 해 주신 여러 가지 기적적인 순간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구약 성경에서 그 다음으로 기적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는 곳은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활동에 관계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음식이나 물을 주셔서 살려 주셨다든지, 죽음이나 질병 또는 독으로부터 구해 주셨다든지, 하느님께서 자연을 통제해 주셨다든지, 적들을 물리쳐 주셨다든지, 이교 신 바알의 예언자들과 대결하셨다든지 등 여러 가지 기적들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기적들을 열거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에게 나타나신 기적 , 이사악의 출생에 관한 기적, 기드온의 양털에 관한 기적, 히즈키야의 병을 낫게 한 기적, 다니엘이 사자 우리에서 구출된 기적, 요나의 기적등이 있으며, 하느님의 존재와 당신 백성을 위한 그분의 계획이 이사야나 에제키엘, 다니엘 같은 예언자들에게 드러나기도 했다.
기적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신 메시지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본질을 계시하시고 인간과 맺으신 사랑의 계약에 충실하심을 드러내 보여 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적이고 구원적인 행위들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람들은 기적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며 모든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표명된 그분의 권능과 사랑과 영광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2) 신약 성경 속 개념
구약 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에서 전해 주는 기적들도 본질적으로는 하느님의 구원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는 많은 기적들이 소개되고 있다. 복음서에서는 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이야기들을 기록해 주고 있으며, 사도행전에서는 그분의 제자들이 행한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을 수록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행하신 기적들 가운데 대부분은 치유 기적과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 행위였다.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중풍 병자, 손이 오그라든 사람,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말 못하는 사람, 하혈하는 부인 등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셨으며 악령 들린 사람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셨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연을 향해서도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그것은 그분만이 홀로 행하셨다. 거기에 해당하는 것들로는 물 위를 걸으심, 풍랑을 가라앉히심, 수천 명의 군중을 먹이신 빵의 기적,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카나에서의 기적,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게 하심, 물고기 입에서 은전을 찾아내게 하심,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심 등과 같은 기적들이 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분이 누구이신지, 또 이 세상에 하느님의 통치가 시작될 수 있도록 그분께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시는지를 설명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을 보내어 메시아이신지를 확인하기 위해 던진 질문을 받으시고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라고 한 이사야서의 말씀을 들어 응답해 주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행한 기적들이야말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 왕국에 관한 약속들이 실현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징이며 예수님께서 가져다주실 구원을 미리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분께서 바로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로서 자연과 죽음과 악을 지배하는 주님이심을 밝혀 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시험하기 위해서나 보여 주기 위한 증거로서 기적을 행해 보이라는 요구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사도행전에서 전해 주는 사도들의 기적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졌으며 하느님의 구원을 표명해 주는 것이었다. 사도들은 이미 예수님께로부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사도행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기적들 가운데에는 치유 기적이 가장 많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다른 기적들이 있었으니 다음의 내용들을 참조해 보라. 사도 바오로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사도직을 증명하는 징표로 간주하기도 했다. 한편 바오로가 초대 교회 공동체 안에 치유의 은사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은사를 받은 신자들이 있었음을 언급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때로는 사도들 외에 일부 신자들에 의해서도 기적이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13. 갈릴래아(갈릴리) 호수(The Sea of Galilee킨네렛 호수, 게네사렛 호수, 티베리아스 호수)
갈릴래아 지방에 있는 이 호수는 너무 커서 때로는 바다라고도 하는데 성경에서는 킨네렛 호수, 겐네사렛 호수, 티베리아스 호수 등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이름들은 모두 호수 주변에 있던 지방 이름들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구약 성경에서는 킨네렛 호수 또는 겐네사렛 호수라 부른다. 신약성경에서는 겐네사렛 호수 또는 티베리아스 호수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주로 갈릴래아 호수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아무런 수식어 없이 호수라고만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갈릴래아 호수는 하프 또는 심장 모양을 하고 있다. 길이는 가장 긴 곳이 약 20km, 폭은 가장 넓은 곳이 약 11km 정도였고 원둘레는 약 39km나 되었다. 해수면은 지중해보다 210m 가량 낮고 수심은 24-48m 정도 되었다. 지중해로부터는 36km쯤 떨어져 있었다. 북부 요르단 계곡 단층 심층부에 자리하고 있는 이 호수의 물은 염분이 없는 민물이었고 요르단 강의 물이 이리로 흘러들었다. 요르단강의 물은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여 훌레 호수를 지나 갈릴래아 호수에 이르며 사해에까지 이어졌다.
호수 주변은 남쪽과 비옥한 겐네사렛 평원이 있는 북서쪽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높고 낮은 산이나 언덕 또는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대체로 호수 서쪽 지역보다는 동쪽 지역이 더 험준한 편인데 산의 높이가 600-1000m 이상 되는 곳도 있었다. 이곳의 지질은 주로 현무암층으로 덮인 석회암이었다. 이러한 지형 조건 때문에 자주 차가운 바람이 비탈을 타고 세차게 불어와 호수의 따뜻한 표면과 부딪치면서 심한 폭풍이나 갑작스런 폭풍우를 일으키곤 했다. 신약 성경에서도 갈릴래아 호수에서 풍랑이 일었던 것에 관한 제보들을 전해주고 있다.
이곳의 기후는 열대성이었다. 따뜻한 기후와 주변 계곡의 비옥한 충적토, 풍부한 천연자원과 물 등의 조건 때문에 이곳에서는 밀, 보리, 무화과, 포도 그리고 온갖 야채가 다량으로 생산되었다. 북서쪽의 겐네사렛 평원에서도 호두, 무화과, 올리브, 포도와 갖가지 종류의 야생화를 수확했다. 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셉은 갈릴래아 호수 일대를 과일이 잘 자랄 수 있는 비옥한 중심지로 묘사한 바 있다. 그런 천혜의 지형 조건 때문에 호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며 그 결과 여러 가지 산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호수의 물은 민물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어업이 발달하기도 했는데, 복음서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이 지역에서 어업이 번창했음을 전해 준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인 시몬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도 어부였다. 이밖에도 이 지역에서는 선박 제조업, 제혁 산업, 염색 산업 등이 발달했고, 특히 어류 저장업은 로마제국 안에서 그 기술을 인정받을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기원후 1세기 무렵 갈릴래아 호수는 상업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갈릴래아 지방의 대부분 도로들이 이 호수로 연결되어 있었고 호수 동서쪽 간의 왕래도 잦은 편이었다. 또 호수 주변에는 예수님께서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셨던 카파르나움과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필립보의 고향인 벳사이다, 그리고 헤로데 안티파스 임금이 세운 갈릴래아 지방의 수도인 티베리아스 그리고 그 외에 가다라, 막달라 등의 큰 도시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복음서들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세하게 전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기 안드레아 그리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기 요한이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거기서 그들을 첫 번째로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으며 엄청난 고기를 잡게 한 기적을 보여 주기도 하셨다. 또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많은 병자와 악령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셨으며 수천의 군중을 먹이신 기적을 행해 보이셨다. 또한 갈릴래아 호수 위를 걸으셨으며 호수에 일었던 풍랑을 꾸짖어 잠잠하게 가라앉히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바로 그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께서는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시는 동안 배를 타고 자주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다니셨던 것 같다.
14. 회당
신약 시대 유다교 회당은 유다인들 가운데 견고하게 확립된 기구이며 제도였다. 유다인들의 공공 집회 장소였던 회당은 지역 공동체의 종교적, 사회적 활동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예배와 종교적인 모임을 위한 장소요 학교였으며 사법적인 절차를 집행하는 곳이기도 했다.
회당의 출현은 유다교 역사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회당은 종교의식에 있어서 전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다. 회당의 출현과 더불어 공적인 종교의식의 성격은 극적인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즉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으로서 그때까지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희생 제사가 기도와 종교적인 학습과 권고로 대체된 것이다. 공동체를 대표해 공적인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사제라는 작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종교의식은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이제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처럼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바깥뜰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되었으며 모두가 직접 종교의식을 이끌어 가는 주체로 참여하게 되었다. 게다가 회당은 성전처럼 어떤 한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 생겨났을 정도로 보편적인 기구로 자리 매김하였다.
회당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바빌론 유배 무렵에 회당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거나 바빌론 등 각지에 흩어진 유다인들에게 믿음의 중심이 되었던 곳을 잃게 한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유다인들이 유배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자발적으로 모여 종교적인 의미의 모임을 가졌던 것이 회당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유배 기간 동안 성전 의식을 거행할 수 없었던 유다인들에게 회당은 성전을 대신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유배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이후에도 회당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유다인들은 축제 때마다 성전 의식에도 참석했고 지역에서 거행되었던 회당 의식에도 계속적으로 참여했다. 회당은 성전과 달리 유다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어느 지역이든 설립되어 있었다. 유다인 남자 10명 이상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회당이 세워진 것 같다.
회당이 생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종교적인 것으로서 성경을 가르치고 율법을 배우며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특별히 안식일은 공적인 예배를 올리도록 정해진 중요한 날이었다.2)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루어진 예식은 다섯 부분으로 나눠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스라엘아 들어라’로 시작되는 유다인들의 신앙고백인 ‘쉐마 이스라엘’을 낭송했고 이어서 기도를 바쳤다.
그러고는 성경 봉독과 해석과 설교 시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 예배의 중심이었다. 모세오경을 읽었고 예언서의 일부를 해설해 들려주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권고의 말씀이 주어졌다. 그러고 나서 설교가 행해졌는데 이때 초청을 받은 사람이 설교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제의 축복으로 예배가 마무리되었다. 사제가 없는 경우에는 기도로 끝맺음 했다. 회당의 예배 형식은 그리스도교 종교의식에도 반영되었다.
지역 원로들이 회당을 전체적으로 감독했지만 회당의 직접적인 관리자는 회당장과 시중드는 이였던 것 같다. 회당장이 맡은 책임은 회당 건물과 재산 그리고 예식에 관한 일을 총괄적으로 감독하거나 계획하는 것이었다.
시중드는 이의 특별한 직무는 회당의 시설과 성경 두루마리를 관리하고 예식 중에 성경 두루마리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성경 읽기를 가르치거나 율법을 위반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벌인 채찍질을 집행하거나 안식일을 알리는 나팔을 부는 일을 했다. 회당 건물은 크기나 형태가 다양했지만 대체로 직사각형 모양이었고 출입구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게 했다. 안에 있는 시설로는 성경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궤, 성경 봉독과 연설을 위한 단, 등잔, 예배자들이 앉는 의자 등이 있었다.
신약 시대 팔레스티나를 비롯하여 로마제국 전체에 퍼져 있던 회당은 그리스도교의 시작과 성장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설교자로서 회당에 자주 초청되었던 것 같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공적인 사명을 시작하신 후에 자주 회당에 가시어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아픈 이들을 고쳐 주셨다.7) 그리스도교 초기에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회당 예식에 참여하고 있었고 사도들과 초기 선교사들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회당을 거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9) 회당에서는 유다인들뿐 아니라 유다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복음 선포를 위해 회당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회당에 자주 드나들면서 보여 준 개방적인 친교의 모습은 유다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왜냐하면 유다인들은 그들의 개방적인 태도로 인해 계약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본질적으로 나타내는 유다교 의식의 순수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회당의 유다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반대하고 박해함에 따라 그리스도교와 회당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15. 갈라디아(Galatia)
갈라디아는 지명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기원후 1세기경에는 두 곳을 지칭했다. 한 곳은 지리적, 민족적인 면으로 구분할 수 있는 좁은 범위의 갈라티아였고 또 한 곳은 정치적, 행정적인 면으로 구분할 수 있는 좀 더 넓은 범위의 갈라티아였다.
먼저 지리적이고 민족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갈라티아는 본도와 비티니아와 리카오니아 그리고 아시아 사이에 있는 중앙 소아시아 북쪽 내륙의 고원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서 켈트(Celt)족 또는 골(Gaul)족들이 정착해 살던 곳을 가리켰다. 기원전 3세기 말경 고대 유럽 지역의 골 사람들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인구 때문에 영토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침략한 후, 자기 형제와 싸우는 비티니아의 임금 니코메데스 1세의 요청으로 소아시아로 건너와 용병으로 내전에 참가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그곳에 남아 인근의 갑바도기아와 프리기아 등을 공략하며 세력을 확장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기원전 275년경 셀레우코스 임금인 안티오코스 1세와 이어 기원전 232년경 페르가몬의 임금 아타루스에 의해 제지당했다. 그 후 그들의 영토는 중앙 내륙의 북쪽 고원지대로 제한되었다. 이후로 그들이 정착한 이 지역을 갈라티아(Galatia)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 이름은 바로 골(Gaul)이라는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이 갈라티아에서 정복자로서의 지위를 누리며 살던 골 사람들은 기원전 189년경 로마에 정복당했다. 그런데 로마는 그들에게 얼마간의 독립적인 체제를 허용하였고 갈라티아인들은 자기들의 임금이 다스리는 예속 왕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24년경 마지막 임금인 아민타스의 죽음으로 갈라티아 왕국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갈라티아의 주요 도시들로는 안퀴라, 페시누스, 타비움 등이 있었고 대부분이 농촌 지역에 살고 있던 갈라티아 사람들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였다.
두 번째로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갈라티아는 기원전 24년경 골족의 마지막 임금이 죽은 후 그 지역을 완전히 자기 제국에 예속시킨 로마가 만들어낸, 보다 넓은 범위의 지역을 지칭했다. 로마제국은 갈라티아라는 지명을 골 사람들이 정착해 살고있던 기존의 갈라티아뿐만 아니라 리카오니아, 파플라고니아, 밤필리아, 프리기아, 피시디아 그리고 본도 등의 일부 지역까지 포함하는 아주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였다. 이 새로운 행정 단위의 수도는 안퀴라였다.
사도행전에서는 갈라티아를 두 번 언급하는데, 사도 바오로가 두 번째와 세 번째 선교 여행 때 그곳을 두루 다닌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바오로가 첫 번째 선교 여행 때 복음을 전한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 등과 같은 도시들도 로마제국이 정한 더 넓은 범위의 갈라티아 지방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는 바오로가 소아시아 내륙의 갈라티아를 방문했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는데 그것이 갈라티아서이다. 이 밖에도 신약 성경 안에서 갈라티아를 언급하고 있는 곳은 갈라티아 교회가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참여했음을 지적한 코린토 1서(16,1)와 티모테오 2서(4,10), 그리고 베드로 1서(1,1) 등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1세기경 갈라티아라는 지명이 두 곳을 지칭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약 성경에 나오는 갈라티아라는 지명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를 놓고 오늘날 성경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골 사람들이 살던 좁은 범위의 소아시아 내륙의 중앙 갈라티아의 북쪽을 말하는 것인지(북 갈라티아 설) 아니면 후에 로마제국이 정한 더 넓은 범위의 갈라티아 지방을 말하는 것인지(남 갈라티아 설)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16. 거룩함
‘거룩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어근은 ‘잘라내다’ 또는 ‘분리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거룩함이 평범한 것이나 속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이 말은 신성(神聖)이나 신성(神性) 자체의 본질을 표명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 ‘거룩함’이란 하느님에 대한 구약 성경의 믿음을 표명해 주는 가장 핵심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1) 하느님의 거룩하심
구약 성경에서 보면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우선 거룩하신 분이시다. 하느님처럼 거룩하신 분은 아무도 없다.1)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은 하느님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하신 분, 유일하신 분, 전적으로 다른 존재로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시며 그 위에 높이 계시는 분, 영광스러운 분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과 본질을 드러내신 이후로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사야 예언자가 전해 준 영광의 노래인 ‘거룩하시다’라는 찬미가는 드높은 어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 앞에서 천사들이 세 번이나 소리 높여 불렀던 찬미가로서 하느님의 다른 속성들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절대적인 거룩한 성격을 강조해 주고 있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심을 걸고 맹세하신 것이나 당신은 사람이 아니고 거룩한 신이심을 단언하신 것은 하느님 고유의 속성으로서 그분의 거룩하심을 드러내 보여 주신 것이다. 이처럼 거룩함은 단지 하느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본질적인 성격을 표명해 주는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그분의 의로운 목적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그분의 거룩하심은 그분의 정의 안에서 드러난다. 또한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죄악에 대한 그분의 태도를 통해 분명하게 표현된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단지 그분이 당신 존재의 완전성 안에서 죄악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에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분의 거룩하심은 오히려 그분께서 죄악을 미워하신다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죄악을 미워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당신 백성을 죄악으로부터 깨끗하게 해 주심으로써 당신 자신의 거룩하심을 입증하신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자기의 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 앞에서이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이름 과 영도 거룩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2) 이스라엘의 거룩함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라 불린다.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께 속해 있고 그래서 신성(神聖)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로 ‘거룩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그들을 선택하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심으로써 그분께 속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함을 통해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거룩해져야 할 의무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율법에서 요구하는 거룩함은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전례나 의식의 측면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생활을 이끄는 윤리적인 측면을 모두 다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며 죄악을 멀리함으로써 거룩함의 모습을 지켜 가야만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하느님만을 유일한 신으로 섬기고 안식일을 지키며 그분께 예배드려야만 한다. 또 그들이 지켜야 할 거룩함의 윤리적인 측면에는 정직함과 진실함, 부모와 웃어른을 공경함, 하인을 공정하게 다룸, 이웃 사랑, 나그네를 친절하게 대접함, 약하고 가난하며 의지할 곳 없고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도와주고 잘 대해 줌, 성 관계에서 정결함, 미신을 피함 등이 포함되어 있다.
(3) 사물들의 거룩함
구약에서 ‘거룩한’ 것으로 분류되는 사물들은 그 자체가 본래부터 신성함을 지니고 있던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하느님과 연관을 맺음으로써 거룩한 것으로 간주된 것들이다. 사물들은 하느님과 관계되거나 그분과의 접촉을 통해서 거룩한 것이 된다.
구약 속 '거룩한' 사물들
(1) 장소: 하늘,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신 곳, 예루살렘, 시온, 약속의 땅, 가나안,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 성막과 성소와 성전등.
(2) 시간: 안식일, 축제일, 희년 등.
(3) 사물: 제단, 제사상, 계약의 궤 , 등잔대, 향, 희생 제물같은 성막과 성전의 기구들이나 부속물. 그 밖에 사제들의 의복, 제사 빵, 성별 기름, 양식 ,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세, 맏물 등.
(4) 사람: 대사제와 사제들, 하느님께 속한 맏아들과 레위인들, 예언자들 등. 구약에서는 사람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는 기름을 부어 성별(聖別)해 왔다.
(4) 신약 성경 속 개념
신약 성경에서는 구약 성경에서의 거룩함뿐만 아니라 거기서 찾아볼 수 없는 거룩함의 다른 모습들도 찾아볼 수가 있다.
(5) 하느님의 거룩하심
신약 성경에서는 구약 성경에 비해서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관해 많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구약 성경에서의 의미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을 거룩하신 아버지라 부르셨고,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을 때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소서’라는 말로써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하기도 하셨다. 이처럼 하느님을 아버지라 칭하고 그분을 거룩하신 분이시라고 할 때 강조되는 것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세상 만물 안에서의 그분의 내재성이다.
이러한 사상은 이미 구약의 거룩함 속에 담겨 있던 것이다. 또 한편 신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거룩하신 분’이라 칭하고 그분 홀로 ‘거룩하시다’고 말한다. 특별히 요한 묵시록에서 하느님을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주재자’ 라고 할 때 그 표현 속에는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정의가 함께 결합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거룩하시다’를 세 번 반복해서 노래한 이사야서 6장 3절을 인용한 요한 묵시록 4장 8-11절에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이 그분의 영광과 권능과 동일시되고 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
신약 성경에서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이 강조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자주 ‘거룩하신 분’이라 불리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에 또 그분 안에 충만한 성령께서 머물고 계시기 때문에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거룩하게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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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그분께서 거룩하신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거룩함과 똑같은 거룩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거룩함은 그분께서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유혹을 받긴 하셨지만 어떠한 죄도 범하신 적이 없었다는 사실 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분께서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실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인간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희생 제물이 될 자격을 갖추실 수 있었던 것도 그분 자신의 거룩함에 의해서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삶과 인격을 통해서 신적인 거룩함의 최고 모범을 보여 주셨다. 그분께서는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모범을 통해서 거룩함이란 단지 죄악을 피하고 선을 따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아버지의 뜻과 목적에 온전히 헌신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려 주셨다.
(7) 성령
구약 성경에서는 성령이 ‘거룩한 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개는 영, 하느님의 영, 주님의 영 등으로 지칭되어 왔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는 주로 ‘거룩한 영’인 성령으로 불린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일에 역사하신다.
(8)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거룩함
새로운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신약의 그리스도교 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민족이라 불린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도들 또는 거룩한 이들이라 불렸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함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주었다. 신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고 성령님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로 맺은 새로운 계약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거룩함의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결합함으로써 그리고 바로 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과 의로움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거룩하게 하는 수단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신약의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거룩하게 살도록 요구받고 있다. 신약 성경의 많은 곳에서 거룩함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궁극적인 소명이며 그들의 삶의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테살로니카 1서 4장 3절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밝히기도 한다. 부르심을 받고 뽑힌 결과로 얻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거룩함 은 우선 죄를 끊어 버릴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거룩함은 온갖 덕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을 요구하며, 무엇보다도 그들의 거룩함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사랑 안에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거룩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구원을 완성하시게 될 때 최종적인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밖에도 신약 성경에서는 성경, 율법, 계명, 사도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소명, 예언자들, 믿음 등이 하느님께 속한 것으로서 ‘거룩함’에 해당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편 모든 만물은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된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17. 골고타(골고다)
골고타(고대 그리스어: Γολγοθα, 영어: Golgotha)는 예루살렘에 있는 해골 모양의 언덕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장소.
('해골'을 뜻하는 아랍어). Calvary('벗겨진 머리' 혹은 '해골'이라는 뜻의 라틴어 calva에서 유래)라고도 함.
골고타는 네 복음서 모두에 나온다. 사형이 집행된 언덕은 예루살렘 성벽 밖의 길 근처에 있으며 예수가 묻힌 묘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곳의 정확한 위치는 불확실하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현재 거룩한 무덤 성당가 있는 장소이거나 다마스쿠스 게이트의 북쪽에 있는 고든의 갈바리아라고 부르는 작은 언덕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골고타(히브리어)는 라틴어로 칼바리아이 로쿠스 (Calvariae Locus)라고 하며 이것에서 영어 칼바리(Calvary)가 파생되었고, 그 장소는 예로부터 공개 처형장이었다고 하며, 그 이름의 유래는 언덕의 지형이 두개골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는 근처에 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18. 베데스다못
베데스다못(Pool of Bethesda)은 신약성경에서 나오는 예루살렘에 위치한 못이다. 신약성경 요한복음에 따르면 베데스다는 양의 문 곁에 위치하며, 그 둘레에는 다섯 행각이 있는데, 거기에서 수많은 병자들이 물의 움직임을 기다린다.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입수한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