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최옥분
올해도 탱자가 제법 열렸다. 봄이면 새하얀 여린 꽃을 피우고, 주인이 돌보지 않아도 여름 내내 태양과 비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가며 열매를 키워내, 가을에 보석 같은 탱자가 주렁주렁 달렸다.
늦가을 아버지는 묘제를 지내고 봉송을 가져 오셨다. 한지에 떡과 전을 따로 분리해 싸왔다. 아버지는 봉송을 풀어 떡을 골라 주셨는데, 떡을 먹은 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한지에 배어나온 고기기름이 떡에 묻은 것이다. 나는 알레르기 체질이라 고기만 먹으면 두드러기가 난다.
엄마는 풍로에 숯불을 지피고 냄비에 말린 탱자 삶은 물을 온몸에 발라 주고 먹여 주셨다. 산골에 약국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민간요법으로 두드러기가 나면 언제나 준비해둔 탱자로 그렇게 해 주신다. 그러고 나면 가렵던 두드러기가 가라앉는다. 탱자는 나에게 두드러기 특효약이었다.
가시도 쓰일 때가 있다.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아오면 어머니가 삶아주신다. 우리는 탱자 가시를 따와 형제들이 둘러앉아 살을 빼먹기도 하고, 많으면 국도 끓여 주신다. 소금을 넣어 삶은 다슬기는 간간하고, 쌉싸래한 맛이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종기가 났을 때도 가시로 상처를 땄다. 고름이 빠져나간 자리에 이 명례 고약을 한지에 발라 호롱불에 데우면, 차갑고 딱딱한 고약이 말랑해진다. 상처에 붙여 주시며 하시는 말씀, 울고 있는 딸에게
“괜찮다 이제 자고나면 다 나을 끼다”
그때는 왜 그렇게 종기가 잘 낳는지
지금은 체질이 바뀌어 고기를 먹어도 두드러기가 나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해마다 상비약으로 준비해 두지만, 알레르기가 생기면 병원에 먼저 달려가 약 처방을 받아 오게 되어 쓸 일은 별로 없다.
탱자가 아토피에도 좋다고 한다. 아토피가 있어서 고생하는 어린손녀를 위해 잘 익은 탱자 한소쿠리를 땄다. 새콤한 향기가 진동을 한다. 탱자는 애벌 씻어서 소쿠리에 건져놓았다 물이 빠지면, 큰 그릇에 붓고 밀가루를 뿌려 다시 하나하나 부드럽게 비벼가며 여러 번 세척을 했다. 탱자는 표면에 진액이 나와 그냥 씻으면 깨끗하지가 않기 때문에 밀가루로 씻고 나니 아기가 목욕하고 난 것처럼 맑고, 황금빛 보석 같이 빛났다. 씻은 탱자를 얇게 썰어 건조기에 말리고 햇볕에도 말려 딸에게 보냈다.
말린 탱자는 비타민C가 많아 적당량을 넣고 끓여 아토피에도 바르지만, 꿀을 넣어 마시면 감기 예방에도 좋고 혈관 질환과, 항암 효과도 있으며 그밖에도 여러 가지 효능이 많다고 한다.
탱자나무는 남편과도 많이 닮았다. 그 많은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달고 살았을까. 가시가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도 되어주지만 때로는 참 많이도 아프게 했다.
젊은 시절 친정을 가거나 나들이를 갔다 좀 늦게 오면 가시를 곧추세우고, 자존심을 조금만 건드려도 가시는 날카롭게 찔러댔다. 그럴 때마다 탱자가시가 하나하나 가슴에 박혀 쌓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하느님을 찾아가 항의를 했다. 남편의 가시를 잘라주던지, 내 가슴에 박힌 가시를 뽑아달라고 애원 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제단위에 가시를 하나하나 뽑아 올려놓았다. 빈자리가 남아서 세상에 흩어져있는 온갖 나쁜 것들을 하나씩 주워와 함께 차려 놓고, 갖가지 사연을 바라보니 탱자가시는 별개 아니었다.
성격과 식성이 반대다보니 아차 하면 부딪힌다. 이제부터는 가시가 보일 때 마다. 다치지 않으려면 한발 물러서는 길밖에 없다. 남편 왈
“나는 건들지만 않으면 된다.”
그 말이 내개는 참으로 부당하지만, 탱자나무의 성질이 그러하니 어찌 하겠는가, 이웃집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천성 고치는 약은 없다’고 하셨다.
그 푸르던 탱자나무도 빛이 바래고 탱자가시도 이제는 조금 무디어졌다. 나도 어떻게 하면 찔리지 않을까, 탱자나무의 성질을 잘 파악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탱자나무는 보기와 달리 속 깊은 정이 있었다. 겨울이면 숨을 곳이 마뜩찮은 여린 참새들에게는, 언제나 쉴 곳을 내어주는 넉넉함도 있다. 연로하신 친정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면 남편은 항상 아버지를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드린다. 밥상에서는 생선뼈도 발라주는 다정한 모습에서 가시는 보이지 않고 탱자의 향기가 났다. 가시나무인줄만 알았는데 향기로운 나무였다.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지저귀던 어린 참새들은 다 자라서 새 둥지로 떠났다. 그 푸르던 탱자는 온 여름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잘 견뎌내고 가을 햇살에 노랗게 익어가듯, 우리의 삶도 고운 단풍처럼 물들어가겠지, 지금쯤 고향마을 앞 학교 울타리 탱자나무에도, 황금빛 보석이 주렁주렁 달려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