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횔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어엉? 무슨날이지? 머리속 회전이 빠르게 굴러가다가, 아! 했다. 이렇다. 나만 그런가. 그럼 다행이고. 사실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않는다. 꿈에, 악몽도 아닌데, 악몽보다도 더 악몽같은 악몽에 다시 잠들기 어려운 꿈을 꾸고 불쾌했던게 어디 한두번인가. 손을 씻는데, 물도 어설픈데다가 아무리해도 씻기지가 않아서 난감했던 꿈에서 깨어났는데, 마치 꿈에서 처럼 난감하고 또 난감했던 지난날들이 세삼스레 떠올랐다. 결혼 시작부터 내 인생은 난감하고 또 난감했다. 달리 표현할길이 없다. 서울에서 전라도 광주로 이사짐을 실고 갔는데, 예고없이 간것도 아닌데, 남편은 마중은 커녕 방을 구해놓지도 않았고 당장 연락도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도 결국 지나가게 마련이긴 했다. 그러고도 이렇게 80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오긴 했지않는가. 그러니 그 인생이 오직했겠는가. 마산에서는 아예 여관에서 살았다. 부산에서도 몇개월인가 살았고, 연화리 집에서도 거이 일년 가까히 지냈다. 이제는 기억에도 없지만 왜 그만 두지못하고 그토록 살려고 애를 썼을까. 애들때문이라고는 말하지말자. 정말 애들 핑개는 말자. 나는 두아이 모두다 백일잔치나 돐잔치를 해준적이 없다. 백일사진 한장이 전부였다. 그렇게밖에 못되었음에도 뭘 바라고 질리도록 끔찍한 인생길을 끄덕끄덕 걸었을까. 어느날인가 반듯이 정신을 차리고 사람노릇 할거라는 기대가 정말있기는 해서였을까. 아니, 그냥 살았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그러는 동안 지치고 또 지처서 숨도 못쉬게 되었고, 고개를 들수도 없게되었지만 살기는 살아지더라고. 아무 계획도 없었고, 미래는 더욱 없었어도 살아지긴 살아지더라고. 남편은 내게 앓던 이였다. 곪아서 터지기 직전에 있는 상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그랬다. 막상 남편이 떠났을때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이었구나' 하는 박탈감외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런 헛된기대마저 끝나버렸다는 '망연자실' 을 어떻게 설명할수가 있을까. 그게 벌써 22년전 일이다. 아주가끔 꿈에서 남편을 볼때가 있다. 어쩌면 그렇게 생전하고 똑같은지,,, 나도 마찬가지다. 뺏기지 않으려고, 들키지 않으려고, 호주머니를 움키거나 숨기기에 급급한다. 부부로 28년을 살았는데,,, 이세상에서 유일한 남자였는데,,, 불행한일이 아닐수없다. 남편이 일찍 가준게 그나마 잘한일이고 다행이란 생각마저 하고산다. 이게 나이고 이만끔이 나의 부부관계다. 아무리 되짚어 생각해보아도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이 없다. 고마웠던적도 없고,,, 내가 잘한것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기도 하고,,, 악연이 맞는것 같다. 아들과 며늘 사이는 어떨까. 나처럼 무작정 참고 살아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다들 잘났으니까 알아서들 하겠지만, 자기좋은대로만 살수는 없지않겠는가. 상대방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면서 나만 좋을대로란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특히 아이들에게 희생을 돌려서는 안되지 않겟는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 자기위주다. 자기가 기준이고 자기가 중심이다. 극도로 이기주의가 넘치고 있다. 배려가 없다. 사랑은 더욱 없다. 그래서 매라르고 피패해지고 기댈대도 없게되었다. 내가 그렇다. 말은 안그렇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무정하기 짝이없다. 불필요한것을 줘놓고 생색을 내려고 할때가 얼마인가. 늘 나는 빈손이면서 상대방의 빈손을 섭섭해 하고있다. 참 몰염치다. 그래 몰염치다! 예쁘게 끝내기를 바라면서도 그럴 생각이 없는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