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전용 ‘효자동사진관’ 창업한 박진원씨
직업군인 되려고 강원대 편입… “입대 전 여러 사람 만나려고 창업”
춘천 팔호 광장에서 강원대 후문 방면으로 이어진 서부대성로. 흰 바탕에 명조체로 ‘효자동사진관’이라는 이름을 내 건 간판이 눈에 띈다. 회색의 작은 스튜디오와 카메라·컴퓨터·액자 등이 놓인 책상. 아담한 사진관의 사장은 강원대 학생 박진원(30·불어불문) 씨다.
사진관은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박 씨는 자신의 출발이 조금 늦었다고 말한다. “춘천엔 연고가 없어요. 다른 지역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4년 동안 직장생활도 했죠. 그렇지만 항상 제 꿈은 직업군인이 되는 거였어요.”
박 씨는 늦은 나이지만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와 도전을 시작했다. 군장학생 선발 프로그램을 통해 군인이 되고자 강원대 불어불문학과에 편입한 것. 군장학생이 되기 위해선 학생이라는 신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진관 창업은 입대 전 학교를 더 재밌게 다니는 방법을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다. “이 나이에 다시 학교에 다니려니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군인이 되기 전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다가 사진관을 차리게 됐어요.”
박 씨는 사진을 전공하거나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20대 초반 사진관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살렸다. 회사원 생활을 하며 번 돈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수익 욕심은 없었다.
처음엔 월세만 나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열었다.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진관보다 촬영에 걸리는 시간도 길고 찍는 컷 수도 훨씬 많았다. 손님이 오면 1시간가량 동안 300~500컷을 찍는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다. 대신 저렴한 가격에 더 편안한 분위기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흑백사진관’이라는 콘셉트는 창업을 위해 자료조사를 하다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를 차용했다.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이 일이 최근엔 입소문을 타 제법 손님이 많아졌다. 박 씨가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평일은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주말은 아침 10시부터 온종일 영업을 한다.
주말엔 손님이 몰려 하루에 7~10팀까지 촬영을 할 때도 있다. “홍보라고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전부인데 어떻게 아셨는지 많은 분들이 찾아와요. 최근엔 강릉에서 온 분들도 있었어요. 서울에서 춘천으로 놀러온 손님들이 기념으로 사진을 찍기도 해요.”
대학가에 있어서 젊은 커플을 타깃으로 했는데 의외로 가족단위 촬영이 잦다. 가장 많이 오는 손님은 ‘군인 커플.’ 박 씨는 자신의 꿈이라 그런지 군인 손님을 맞으면 더 반갑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사진관을 열고 처음 받은 여자 손님이다.
“아직 사진관 공사가 끝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직접 가게 내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한 여성이 언제부터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가게가 완성되자마자 찍어드렸죠. 첫 손님이라 제가 더 신이 나서 말도 걸고 열심히 찍어드렸더니 다음번엔 남자친구와, 그 다음엔 친구들과 오더라고요. 사진관이라는 업종이 단골 손님을 만들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그분은 어느새 제 단골이 됐어요.” 사진을 통해 만난 인연을 이야기하는 박 씨의 목소리가 상기됐다.
하지만 이런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1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 상반기에 박씨는 직업군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입대할 예정이다. 아쉽지만 일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기대한 대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에 대학가 근처에서 영업을 하다 보니 술을 마시고 오는 손님도 더러 있다. “어머니뻘의 학교 선생님이 술 한잔 드시고 오신 적이 있어요. 회식을 하다 혼자 나와서 사진 하나 남기고 싶다는 분도 있었고요. 마흔인 남자 두 분이 술 마시다 우정사진을 찍기도 했죠.”
애초에 큰 욕심을 갖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박 씨는 그저 앞으로도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많이 만들고 싶을 뿐이다. “사진관 규모가 작아요.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많이들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효자동사진관의 박진원 씨는 오늘도 카메라 앞에 앉아 새로운 인연과 이야기를 기다린다. 용지수 시민기자
춘천 서부대성로 효자동사진관의 외관 모습.
효자동사진관 사장 박진원 씨가 사진관에서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조정하고 있다. 박 씨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촬영하면 자연스러운 사진을 만든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