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김상옥시조문학상 - 이 광 시조집 <예순 마을을 지나며> 중 자선시조
설법 외 9편
이 광
하늘이 눈을 내리네
참 고요한 말씀이다
한 마디
또 한 마디
받아 적는 목마른 땅
포근히 감동에 잠겨
눈 그치자 눈부시다
바늘
잘 뚫린
귀가 있어
주변 사정 다 듣는다
꿰매야 될 일이 있고
시쳐야 할 때가 있다
가난한 삶을 받들어
실을 꿰던
그 손길
건포도를 먹다가
먼 데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힌*
탱글탱글 포도알이 빛과 향 다 내주고
고치 속 번데기처럼 우화를 꿈꾸었나
기다려 때가 되자 결국은 한입거리
길들면 놓지 못할 두고두고 누릴 단맛
가진 자 오래전부터 포도를 말려왔다
오뉴월 햇살 아래 포도송이 같은 젊음
내일의 씨는 뱉고 오늘을 꿀꺽 삼킨
세상의 손아귀에서 생이 점점 말라간다
* 이육사 <청포도>에서 따옴.
예순 마을을 지나며
마음 비우든지 마음 잘 달래든지
졸음처럼 밀려오던 허무는 잠재우고
조금씩 깨우치거나 뉘우치며 사는 거네
둥지에 깃든 새는 쉬이 울지 않는다네
주저앉은 자리에서 민들레 꽃피우고
자드락 등 굽은 소나무 길눈을 밝혀주네
살아온 날이 깔려 살아갈 길을 여네
돌아와 다시 서도 되돌릴 길은 없네
생이란 왕복의 여정
표는 오직 편도 한 장
시인의 시간
나그네 생을 읊던 뻐꾸기도 떠나가고
한여름 더욱 달군 매미 소리 멈춘 요즘
지상은 노래를 잃고 밤을 맞아 적막하다
그 적막 한 귀퉁이 톱질하는 귀뚜라미
내던져 깨진 이름 사금파리 반짝이듯
별들도 어둠 속에서 글썽이며 울고 있다
소리꾼 구음 같은 바람결이 푸른 속내
먼 길을 오는 내내 저토록 흐느꼈나
막막한 무연고 설움 살붙인 양 거둔다
유리창 저 불빛은 소리죽여 우는 건가
두 눈에 고막 있어 돌아보며 듣는 사람
깊은 밤 세상의 기척 옮겨적는 시간이다
귓바퀴
이리 와 저긴 아냐 한쪽으로 쏠려가고
성난 말 날뛸 때면 그 자리 휘돌았지
헛소문 쫓아 구르다 멎지 못한 내리막길
돌아보면 바큇자국 풀이 자라 덮여 있고
설운 소식 싣고 가다 또 한 짐 싣는 수레
어느덧 바람의 지청구 잠재울 줄 안다네
방음벽
투명은 눈을 속여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소리마저 막아둔 채 훤하게 감춘 위험
조망을 살리는 동안 새들이 죽어간다
살의는 없었다고 외면하는 저 무표정
그 아래 숨탄 것들 날개 꺾여 싸늘하다
석양은 고개 숙이고 땅을 덮는 어두움
소리 없는 부딪힘에 사람도 쓰러진다
나는 새 떨어뜨리는 권세를 가진 이들
저들만 서로 통하는 방음벽을 치고 산다
밀물
더는 더
가질 못해
돌아서야 했던 나날
하지만
또 한 걸음
그를 향해 내민 발길
한 번도
품어준 적 없어
해일로도 오곤 했다
멀리서 온 아픔
퀭한 눈 빠진 젖니 헝클어진 머리카락
난민촌 여섯 살 소녀 다친 동생 들쳐업고
맨발로 병원을 찾아 한 시간을 더 걸었다
피난 중 헤어진 아빠 하루빨리 보고 싶은
그 꿈이 포격으로 무너지지 않았으면
가자*의 사진 한 장에 두 손 모은 아침나절
전쟁을 끝낸다며 계속 잇는 전쟁통에
손녀 또래 아이들이 십자가 지고 간다
저 먼 곳 딴 세상인가 거리감이 사라진 날
- 《통영문학상 수상작품집》2026. 통영문학상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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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김상옥시조문학상 - 이광 시조집 <예순 마을을 지나며>
김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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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0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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