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시골 우리동네 사람들은 우리살고있는 곳을 세집매라고 했다.
예순네, 혁이네, 그리고 우리집.. 세집이 삼각형으로 있어서...
혁이네는 아버지가 고등학교 교사셨는데
아들이 여섯, 딸셋 9남매 중에 제일 큰딸 하나만 시집가고
8남매와 부모 10식구가 방2개짜리 집에 살았었다.
집이 좁으니까 집은 넓고 식구는 없는 우리집에 와서 왁자지껄 지내고...
내 동생방에서 적어도 한 아들은 늘 기거하곤 했다.
아마도 엄마가 젊은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곤 했었어서...
거기에 사촌인 나보다 5살많은 용이오빠도 시골에서 와서
큰아버지집인 혁이네서 학교를 다녔는데
눈치가 보이고 힘들기도 한지 우리집에 와서 엄마한테 하소연도 하는것 같았고...
그리고 우리들한테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해주곤 했었다.
특별히 용이오빠가 군대갔다 와서는 군대생활 이야기랑 해주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용이오빠는 진짜 혈육같이 느껴져, 늘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고 했었다.
키가 그집에서 제일 큰 정이오빠는 나보다 6살이나 많았는데
중학생이었던 나는 서울대에 다니던 정이오빠가 참 멋지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대학교 1학년때 정이오빠가 우리집에 와서 내 동생 인석이 방에서 며칠 있을때
나는 "이때다.." 물리학 교과서를 가지고가 모르는것들 배운적도 있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어느날
정이오빠가 편지를 주면서 "이거 진이한테 전해줄래?" 해서
나는 그 편지를 진이 언니한테 주었다.
예쁘고, 얌전한 진이 언니는 우리동네 교회 목사님 딸이였었는데
1955년 그시절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었다.
그후 동네(교회)에서 "정이와 진이가 연애를 한다" 소문이 있었는데
몇년후 진이 언니는 이화여대 음대에 들어갔고..
진이 언니는 아버지이신 목사님이 다른교회로 가시는 바람에 서울로 이사를 갔었는데...
어느날 동네에 어떤사람이 진이 언니가 중량교쪽으로 엉엉 울면서 가는걸 봤다고 했다.
아마도 그 첫사랑 연애가 그렇게 끝난 모양...
그런데 몇년후.. 정상이 오빠가 군대에 갔다온 다음인가..
정이오빠가 나한테 서울에 같이 가자고..
나는 밤중에 정이오빠와 뻐스를 타고 진이 언니네 집이 있는곳에 갔는데
정이 오빠가 나한테 집안에 들어가 진이 언니좀 불러내 달라고 했다.
내가 집안에 들어가 정이 오빠가 밖에서 기다린다고 진이언니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진이 언니는 정이 오빠를 만나러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뒤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때 진이 언니는 다른사람을 사귀고 있었다고...
고려대학교에 다니는 운동선수 였다고 하던가(?)
하여간 진이언니는 그사람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주위사람들 말에 의하면 정이 오빠는 두고 두고 오랜세월 진이 언니 이야기를 하곤 한다고 했다.
내 동생은 대학때 군대갔다가 제대하고 와서 대학 졸업하고는
영~ 직장구할라고 애쓰지 않고
빈둥빈둥.. 하다가 큰아버지 병원에 가서 잔 일이나 도와드리곤 했었다.
엄마가 답답해서 "너는 왜 취직자리를 알아보지 않니?",
"정이가 어떤 회사에 높은 자리에 있던데, 가서 취직 좀 부탁해봐"하면
내 동생은 체면은 있어서
네~ 대답만 하고는 절대 가지를 않았다.
답답한 엄마는 동생 취직을 부탁하러 직접 정이 오빠가 부사장으로 있는 건설회사를
찾아가셨 다고 한다.
비서실에서 비서가 부사장실로 조ㅇ규씨란 사람이 찾아 왔다고 알려주니까
정상이오빠가 부사장실에서 급히 나와 엄마 손을 잡고 반가워 하면서
"어떻게 오셨냐" 하면서 자기 방으로 모시고 들어갔다고...
그래서 엄마가 "우리 석이 취직좀 시켜줘요" 했더니 당장
"석이 한테 이력서 가지고 우리 회사로 오라고 하세요"
그렇게 해서 동생이 취직이 됐었다.
그때 그분은 부사장 이었지만, 엄마를 만나니 옛날 옆집 살던 청년으로 돌아가
엄마를 그렇게 반가워 하고 이야기 하고.. 했다고
정이 오빠가 두고 두고 참 존경스럽고 또 고맙다.
첫댓글 청이님 어릴때 추억을 아주 생생히 기억하시고 계십니다.
처음부터 천천히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추억입니다.
예전에는 남자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직접 다가가지 많고
중간에 청이님같이 누구에게 부탁을 했었네요.
저도 어릴때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친구오빠(경기중학교)를
속으로만 좋아 하다가 미국와서도 계속 좋아 했었지만
결혼은 제 네째 이모부친구와 했지요.
요즘 사람들에게는 있을수 없는 일이지요.
좋아하면 바로 부딪혀서 서로 맘에 맞으면
데이트도 하는데,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소극적으로 속으로만 좋아 했던것 같아요.
그래도 참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했었지요.
어릴때 서로 이웃으로 사시던 인연으로
남동생분이 취직도 하셨군요.
어릴때 추억이 저도 잠깐 생각났어요.^^
청이님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동화같은 이야기네요.
예전에 가난했지만 다들 순수하고 사람살아가는 정이 있었는데.
방두칸에 10명이나 살았는데, 조카까지 공부하러 왔으니...
청이님 옛 이야기들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겠네요.
요즘 한국사람들이 너무 삭막해져 사람냄새나는 그 시절 드라마를 보면서
잃어버린 정을 되찾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