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국인 성씨의 관향(貫鄕)과 입향선조(立鄕先祖)
.성의 영문표기를 통일해야 혈통의 뿌리를 이어 갈 수 있다
<성씨의 기원>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혈통을 잇는 겨레 붙이 의 표시로 “성”씨를 쓰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시조 주몽이 국호를 고구려하고 “성”씨를 고씨라 하고 , 백제의 온조 는 부여에서 나왔다고 “성”을 부여씨 그리고 가야국의 시조 수로왕은 황금알 에서 나왔다고 “김”씨라 하여 김해 김씨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이 기록으로 우리 나라는 부족국가에서부터 “성”씨를 사용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문헌상으로 “성”씨를 사용한 것은 고구려 건국초기인 1세기경부터이다
백제는 근고초왕 때, 신라는 6세기 진흥왕 때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씨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왕족이나 귀족들에게만 사용 되였다. 고려의 개국 공신들인 이홍유, 배현경, 신승겸, 복지겸 등이 처음에는 “성”은 없고 이름만 있었다 .배현경은 경주 배씨의 시조로, 신승겸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 복지겸은 면천 복씨의 시조로 하여 고려중엽부터 “성”씨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신라인 김행이 고려의 태조를 도와 권능이 많았다고 하여 권씨 성을 하사 받아 오늘날 안동 권씨의 시조로 출발했다. 고려때 귀화한 몽골인 에게 내린 “인”씨와 “장”씨가 연안 인씨,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고, 이조에 와서 태조 이성계가 여진인 동두란에게 “이”씨성을 내려 청해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일부천민들은 이조 때까지도 성을 가지지 못하다가 호적법 시행에 따라 혈통과 가계를 정리하여 우리 나라 사람 모두가 “성”씨를 가지게 되었다. 신증동 국여지 승람 에는 우리 나라의 성씨의 종류가 277개로 나와있고, 고종 때 발간한 증보문헌비고에는 496종류의 성씨가 나와 있어나, 1960년 인구조사에서 258성씨, 75년에는 249 그리고 85년에는 274성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국정부에서 호적법을 제정하여 혈통의 계보(Genealogy)를 정부가 맡아서 기록 보존하지만 가문별로는 족보를 만들어 나타나는 가계도를 통하여 문중의 존비, 항렬, 적서의 구별을 명백히 했다 족보는 보첩, 세보, 세계, 가승 가첩, 가보, 성보라 고도하고, 국가의 사승과 같이 조상을 존경하고, 종족의 단결을 도모하여 후손들이 화목의 기풍을 이루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정부에서는 호적법으로 개인들은 족보를 만들어 사용한 우리는 다른 민족보다 종족과 씨족의 뿌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씨족의 오랜 친족관념에 따라,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하여오다가 유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근에야 금혼령이 해제되는 민법이 국회에서 개정된바 있었다.
관향(貫鄕).적관(籍寬) 관적(貫籍) 본적(本籍) 성관(姓寬) 본(本)이라고도 부르는 본관(本貫)이란 개인의 시조가 태여 난 곳 또는 성 (姓)의 출자를 말하고, 개인의 부계 친족범위를 나타내는데 쓰이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당나라 이전부터 쓰고있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본관을 사용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고려 때부터 사용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려 초에 지배계급의 분류를 위하여 정착되어 간 성씨의 본관은 국가적인 제도로 시행 되여 오다가 995년 성종때 제도가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立鄕 先祖 >
지난해 미주지역 모 언론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1,5세 2세들에게 그들의 “성”씨의 본관을 아는 사람이 20%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나왔다.
“성”이 김가인데 “본”이 어딘 지를 아는 사람이 10명중 2명만 안다는 이야기다. 세계화시대에 따분한 족보타령인가하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이민 100년을 맞이하는 한인사회에서 우리가 우리이름을 영어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이 100년 안팎이다.
그래서 본관이 같은 전주 이씨라 할지라도 미국에 사는 동포들은 이민 온 사람의 취향에 따라 Rhee. Yi. Lee. Ri 등으로 쓰고, 정씨는 Jeong. Chung, 박씨는 Park. Bak. Bhak. 유씨는 Yoo. You.등으로 같은 성씨가 미국에 와서 성씨가 모두 달라 졌다. 심지어 같은 형제지간도 형은 Rhee, 동생은 Yi. 그 아래동생은 Lee로 쓰고있어 미국에 와서 새로운 성씨들의 시조가 된 것이다. Rhee/이씨의 시조가 될 생각으로 성을 그렇게 쓴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안별로라도 성씨의 표기를 단일화해야 할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모두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일이지만 처음 항공권을 구입하는 여행사 직원은 어김없이 무슨“이”가인가를 묻는다 그것은 “Lee”/이 가냐, “Yi”/이 가인가를 묻는 것이다. 미국사람 아무도 이 사람들의 성씨가 같다고는 하지 않는다. 자기는 전주 이씨이고 왕국을 5백년이나 끌어온 왕족이며 초대대통령 이승만도 같은 전주 이씨라고 미국 친구에게 얘기했다가 미국인친구가 이승만 의 “이”는 Rhee 로 쓰고 당신은 Lee로 쓰는데 어찌 같은 성씨이냐는 질문에 말문을 닫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1903년 이 우리들의 이민의 시초라고는 하나 본격적인 이민의 시작이 1964이민법의 개정이후로 생각하면 우리 이민사회는 이제 한 세대를 마감하는 전환기에 있다. Los Angles에 있는 이민 100주년 LA 기념 사업위원회에서 한인족보를 만드는 사업을 계획한다고 한다. 대단히 잘한 일이나 먼저 성씨의 영문표기를 일원화하는 운동부터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한글이나 한문으로 쓰면 문제가 없다고 하나 국제어로 정착한 영어의 표기기준을 먼저 세워야할 것이다. 한국정부에서는 지금이라도 여권을 신청할 때 성씨의 영문표기를 통일해야 할 것이다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혈통기록을 유일하게 보존해온 우리민족이 100년도 못 가서 같은 씨족들이 영어 표기 방법 때문에 문중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여 가고 있다. 이민을 와서 환갑을 넘기고 은퇴한 필자가 아는 한사람은 한국의 종친회 본부에 가서 00파에서 다시 분류되는 “로스엔젤스””파로 종파분리 승인을 받아와서 아들에게 집안 족보작성을 하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주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가는 이 시대를 우리가 편리하게 살다 가면 그만이긴 하지만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핏줄의 근원을 찾을 때 20세기후반 21세기초에 미국으로 이민 온 선조 들이 원래 는 한 핏줄이었음에도 아무 생각 없이 자기편리한데로 성(姓)을 표기하여 본관대신 나는 Lee/이가 이고 당신은 Yi/이가 라 할지 모른다. 다른 민족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족보를 이민 와서 팽개치고 한 형제들이 이렇게 황당한 이유로 전연 다른 씨족의 뿌리가 되였다면 후손들이 평가는 무엇이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