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27년전인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전두환의 총칼에 많은 사람이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
다 피 흘려가며 쓰러진 날입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사진을 올려 봅니다.
80년대 후반 노태우 정권 시절에도 광주에서는 5월은 한달 내내 광주민중항쟁기념 행사가 열렸습니다.
직장 관계로 광주에 발령 받아 잠시 살던 시기에 우리집은 전남대 후문근처에 살고있었지요.
사진 찍는 시간에도 큰 길에서는 데모가 한창이고 다흰이는 날라온 최류가스에 인상쓰고있네요.
지금 보니 못생긴 우리 다흰이가 아직 첫돌도 지나기 전에 최류탄 가스와 돌멩이 사이를 유모차 타고
아슬 아슬 잘도 다닌 기억이 납니다. 아마 다흰이는 이때부터 최류가스에 내성이 생겼을 텐데..
지금은 최류탄없는 세상에서 대학 생활을 잘 하고있으니 그나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해 9월에 광주 망월동 5.18묘지를 방문했었습니다.
묘역 입구에 전두환 기념비를 부수어 바닥에 깔아놓고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밟고 지나도록 했네요.
오~그런데 지금의 다흰이 모습이 그 시절의 엄마를 많이 닮은것 같군요.
벌써 19년이 지났으니... 예쁜 다흰 엄마에게 진작에 더 잘 해줄걸 후회도 됩니다.
사진을 보니 지금은 나이 먹어 늙어버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첫댓글 1980년 5월. 그땐 제가 중학교 1학년 이었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저의 중학생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그때 저는 친구들과 버스 뒤켠에 앉아 전날의 9시 뉴스화면과 신문지면을 가득 채웠던 광주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끔찍한 루머들을 얘기하며,이렇게 날씨가 더운데 학교에서는 왜 동복(교복)을 벗으라고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투덜거리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에 가서 왜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하고 있는지 너무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땐 많이 어리고 순수해서 그런 생각밖에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의 각박함이 그 시대를 겪으며 차츰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다흰이가 엄마를 닮았군요. 옛사진을 보며 아내를 생각하는 전집사님 마음 참 아름답습니다. 돌도 안된 다흰이가 그 때 거기 있어군요..ㅁ다흰이 사진이 실감나는 역사의 한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