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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글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凡 草
<454회>
자연이 살아 숨쉬는 거창 오지 마을
< 2012년 6월 17일, 일요일, 맑음 >
어제 오전부터 1박2일 일정으로 거창 오지 마을인 가북면 용암리를 다녀왔다. 미스포터 신랑이 운전하는 테라칸 차를 타고 6명이 거창 오지 마을로 갔다. 금요일에는 비가 많이 왔지만 토요일은 날씨가 맑아서 여행하기에 좋았다. 가는 길에 가조면에서 거창 명물인 쑥돼지고기를 5만원어치 사서 미정씨 집으로 들어갔다. 미정씨 남편인 동진거사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정씨 방에 만들어 놓은 여러가지 효소
미정씨는 점심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다가 우리가 도착하자 바로 상을 차렸다. 반찬이 어찌나 많은지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거창에서만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산나물 요리가 그득했다. 천궁, 왕고들빼기, 곤달비, 명아주, 케일 등, 쌈에다 명아주 무침, 고구마 줄기, 고사리에다, 매화꽃 물김치, 곰취 장아찌, 초피나무잎 장아찌, 그 외에도 많은 반찬이 있었는데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황제 수라상 수준이라 먹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우리는 미정씨가 준비한 성의를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민들레 뿌리차와 오미자 차를 마시고 덕동마을 육잠스님을 뵈러 갔다. 육잠스님이 있는 마을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 마을인데 스님이 정성들여 가꾸어 놓은 마을이라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아담한 개울, 수수한 나무다리, 자연 그대로를 살려서 가꾸어 놓은 정원, 미술 작품 같은 화장실과 창고 등.... 영화를 찍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하며 여기 저기를 둘러보다가 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스님은 작년에 만났던 나를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었다.
스님 방에서 생강나무 꽃차를 대접받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윈드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머머~ 어머! 저것 좀 봐요.” 모두가 무슨 일인가 놀랐는데 나비가 엉겅퀴에 앉아 있는 장면을 보고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미스포터 신랑이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저게 뭐가 신기해서 그렇게 놀랍니까? 김해에도 나비는 많아요.” “그래도 너무 예쁘잖아요. 나비가 날개를 폈다 벌렸다 하는 모습이 그림 같아요.” 그것 말고도 윈드가 어찌나 자주 감탄사를 터뜨리는지 스님도 연방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을 때 윈드가 기자처럼 스님이 임길택 시인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어보자 스님이 지나간 이야기를 꺼냈다. 임길택 선생님이 거창에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샛별초등학교 주중식 선생님과 같이 찾아왔다고 했다. 나도 동시 습작을 할 때 주중식 선생님을 지면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서 귀를 기울였다. 육잠 스님은 임길택 시인과 편지를 오래 주고 받았다는 말도 했다. 내가 혹시 그 유품인 편지를 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스님은 보관해둔 편지함에서 여러 통을 내어놓았다. 여러 편지 중에서 임길택 시인이 죽기 전에 쓴 편지를 유영주씨가 대표로 읽었다.
육잠스님은 편지 낭독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편지가 참 좋군요. 1997년 그 당시로 돌아간 것만 같습니다. 나도 저런 편지를 받았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려주는군요.” 요즘에는 문자나 전화로 대신해서 편지가 많이 사라졌지만 편지는 쓴 사람의 숨결을 그대로 전해주는 장점이 있다. 스님과 임길택 시인이 편지를 자주 주고 받았다는 말을 들으니 참 낭만적인 교류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을 때 스님 산방 아랫집 사람이 전기톱으로 나무를 잘랐다. 스님이 산방 주변을 그림처럼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는데 새로 이사온 사람은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있어서 비교가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덕동 마을을 도시 사람들이 들어와서 무분별하게 개발한다면 스님이 이 마을을 떠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었다. 이 그림같은 마을을 보호하기는커녕 왜 자꾸만 파괴하려고 할까? 스님처럼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소박하게 꾸밀 수는 없을까?
스님이 쓴 서예 작품들, 벽을 가득 메웠다!
우리가 그만 일어서려는데 미스포터 신랑이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이 쓰신 서예 작품을 볼 수 있습니까? 제가 서예에 관심이 많아서요.” 스님은 선선히 승낙하며 벽에 가득 쌓아놓은 서예 작품 중에서 몇점을 보여주었다. 서울 인사동에서 자주 개인전을 열었다는 스님은 서예도록도 보여주고 낙관을 찍어 서예 한 점씩을 우리들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참 고마운 선물이었다.
육잠스님이 나에게 준 글씨 선물 (행운유수... 구름처럼 움직이고 물처럼 흘러간다)
이어서 스님이 만들어 놓은 토굴 산방을 구경하러 갔다. 토굴까지 가는 길도 아주 어여쁜 산길이었다. 엉겅퀴가 무리지어 피어있고 꿀풀, 애기똥풀이도 줄줄이 피어서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길 옆에는 취나물, 수리취, 바디나물, 고들빼기 등이 발에 밟힐 정도로 많아서 나물밭 같았다.
두곡산방과 토굴, 은방울꽃 군락지 등을 돌아보고 미정씨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차를 타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윈드가 새로운 풍경을 볼 때마다 쉬지 않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야~~~ 저것 봐라. 오미자다!” “산딸기다! 저거 따 먹고 가요.” “꿩이다.” “어머 어머! 벼를 심은 논이 수채화 같아욧!” 미스포터 신랑은 귀가 아파죽겠다며 툴툴거렸지만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윈드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우리는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윈드 덕분에 많이 웃고 좋은 구경 하고 나니 하루 해가 다 지나 갔다.
오미자 열매
미정씨 집에서 바라본 건너편 산
저녁에는 우리가 사간 돼지고기와 여러 가지 산채 요리를 곁들여 또 풍성한 식탁을 즐겼다. 정말 오지 마을에 가길 잘했다. 나와 같이 간 일행들은 식탁을 꽉 채운 반찬에 감탄하며 이것 저것 맛보기에 바빴다. 미정씨 집에서 담아놓은 오미자 술을 내어놓았는데 빛깔이 아주 좋다며 여자들도 한 잔씩 맛을 보았다. 난 작년에 왔을 때 막걸리와 복분자술에다 오미자술까지 마시고는 그대로 쓰러져 기억을 잃은 일을 생각나서 술을 3잔 이상 마시지 않았다.
아욱 밭
저녁을 다 먹고 정묘 스님이 만든 용암선원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다가 절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부처님을 모신 방에서 잠을 자기는 처음이었다. 이것도 새로운 체험이었는데 다음날 어떤 사람은 가위눌렸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잠을 설쳤다고 했지만 나는 별다른 꿈을 꾸지 않고 잘 잤다. 미정씨 집이나 용암선원이나 650미터 고지라 여름인데도 하나도 덥지 않고 저녁에는 춥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모기도 거의 없었다.
오늘 아침에는 태자암 바위 코스를 답사했다. 후백제 견훤에 얽힌 전설이 서려있는 바위까지 올라가며 산나물을 뜯었다. 여자들은 두릅나무가 나올 때마다 반색을 하고 달려가서 순을 뜯었다. 산딸기, 명아주, 고들빼기, 뽕나무, 밀나물, 뚝깔, 취나물, 오미자가 수두룩하였다. 도시 근교에서는 보기 드문 엉겅퀴도 여기는 곳곳에 피어 있었다. 한 마디로 여기는 오지 마을이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생생하게 숨쉬는 곳이었다.
호두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명아주, 여긴 850미터 산이라 평지보다 어리게 자라고 있다
밀나물
뚝깔
이런 곳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여기마저 도시인들이 몰려들어 무분별하게 남획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끔찍했다. 제발 여기만은 오래 오래 이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할 텐데... 태자암 바위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차를 타고 산길을 올라갔다. 차에서 내려 산등성이를 넘어가니 해인사에서 가까운 고불암이 있었다. 고불암에서 비빔밥을 얻어 먹고 돌아와 차를 타고 미정씨와 작별했다.
연 줄기에 낳은 우렁이 알
우리는 오다가 함양에 들러 상림 숲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
미정씨네 뒷밭에서 본 우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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