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묵돌입니다.
여러분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라는 시를 아시나요.
저는 하도 읽어대서 눈 감고도 외울 수 있는데요.
그 시에는 이런 문구가 있더랬습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허무할 정도로 담백한 시구詩句입니다.
어렸을 때는 이 시구가 영 밍밍하다는 느낌에
이렇게 저렇게 바꿔쓰면 어떻겠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건방진 시절이었습니다)
이제는 저 세 줄의 시구 안에 온 세계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지니
글이며 삶이란 정말이지 나이 먹기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기.
그리고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의 길고도 짧은 인생 속에서
꼭 해야할 일이라고는 저 두가지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단순해보이는 두 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저는 어젯밤에도 귓가의 모기 소리에 잠을 못이루다가
그만 못참고 일어나 전기파리채로 놈의 몸을 지져 죽였습니다.
늦든 빠르든 모든 것이 죽어가는 것들일 따름인데
우리는 어째서 서로를 미워하고, 사랑하지 못하는지.
이번 금요묵클럽 21기의 주제는 [WHAT IS LOVE?] 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려면
사랑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니까요.
우리는 노래가사에서, 길거나 짧은 글에서,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마음을 주고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듣고 씁니다.
그렇지만 그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랑, 그것이 가지는 형태가 얼마나 변화무쌍해 사람을 속이는지.
우리는 사랑 그 이상으로 '진짜' 사랑이라는 말에 천착합니다.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무엇이길래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는 것일까요?
유사이래 사랑을 정의하려는 인간의 무수한 시도가 있었지만
무엇 하나 '바로 이거다' 싶은 것이 없어 금방 잊히고 말았습니다.
'사랑이란 XX하는 것이다.' 나 '그놈의 사랑이 뭔지' 같은 말들은
너무 자주 쓰여서 문장으로서의 본질을 잃은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사랑이 무엇인지보다는
양자나 쿼크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의 정체를 쫓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사랑을 필요로 하고, 열망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Just one thing everybody wants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 뿐이죠
... It's love.
사랑.
Yes, all we're looking for is love from someone else.
그래요, 우리가 찾는 모든 건 누군가로부터의 사랑이에요.
- <라라랜드>, (2016) 중에서
그래서 우리는, 조금 낯부끄럽지만 피할 수 없는 일,
바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다가올 11월 한 달동안 해볼 예정입니다.
그렇게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작은 단서라도 얻어가게 된다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아주 진지하게 갈 것입니다.
환불? 이제는 말하는 것도 지칩니다. 될리가 없잖아요.
그럼 시작합시다.
금요묵클럽 21기 첫번째 모임에 대한 공지는 바로 이 아래 있습니다.
:: 금주의 묵픽 (Muk's pick) ::
「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그는 그녀가 필요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 세개의 명제는 일련의 고통과 무력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 Comment ::
독서모임 초입의 작품으로 사강의 소설만큼 잘 어울리는 책이 얼마나 있을까요.
1954년, 첫 장편소설이었던 <슬픔이여 안녕>의 메가히트로
18살의 나이에 프랑스 문단의 일약 스타가 됐던 프랑수아즈 사강.
<한 달 후, 일 년 후>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57년에 쓴 소설입니다.
마약과 애정행각, 신호위반과 과속 등으로 제멋대로 살았다는 인식과 달리
사강은 데뷔이후 말년까지 꽤 성실하게 작품을 내놓았던 작가인데요.
이십대 초반의 젊고 재기발랄했던 시절의 문체는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 달 후, 일 년 후> 는 바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고요.
특징은 다른 사강의 소설처럼 잘 읽힌다는 것,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묘사가 탁월하다는 것,
그리고 그녀답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있겠습니다.
실은, 그정도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 읽기 TIP ::
- 소담출판사 최신판 기준 총 187쪽의 짧디 짧은 장편 소설입니다. 1인분 같은 2인분, 중편 같은 장편이라고 해야할까요. 인물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거의 없고, 워낙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다보니 읽히기도 잘 읽힙니다.
- 대개는 이틀 내지 사흘이면 충분하고, 빨리 읽으시는 분들은 하루만에 다 읽을 수도 있지만... 모임 당일에 급하게 읽고 오는 버릇은 좋지 않습니다. 주중에 미리미리, 시간을 내서 읽어두도록 합시다. 책은 시간 날 때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서 읽는 것이니까요.
- 프랑스 소설을 처음 읽어보시는 분들을 위해,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사랑이며 연애관이 많이 다릅니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약간 맛이 갔다고 할까요.
-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기준으로 등장인물들을 평가한다면, 도덕과 비도덕을 편갈라 판단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일은 '소설에서만큼은' 좋지 않습니다. 판단하기보다는 관찰하는 마음으로, 더 나아가서는 그 서사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물길을 느낀다는 기분으로 읽어봅시다.
:: 모임장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23길 40 지하 카페 <공상온도>
- 홍대입구역 1,2 번 출구 6분 거리
:: 일시 ::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오후 8시 ~ 오후 11시
* 3시간 진행, 도중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모임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가급적 (특히 첫 모임에는) 시간에 맞춰 참석해주세요.
* 카페 <공상온도>의 방침상, 기존 고객 퇴장 및 대관 준비 시간으로 인해 오후 7시 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하오니 이용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 이번 기수부터 내부에 음료 반입이 불가합니다. 마실 것은 카페 내에서 자유롭게 주문이 가능하오니 참고해주세요.
:: 준비물 ::
- 「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구매 링크 - 예스24)
:: 기타 ::
첫댓글 공지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다보면, 저도 모르는 새에 허공에 시선을 두게 되고, 답을 찾을 수 없는 생각들에 잠겨 버립니다.
저도 드디어 묵클럽에.. 작가님과 만나게 될 날이 기대 되네요.
반갑습니다. 저도 뵐 날이 기대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묵돌님의 공지글은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러워서 잘 읽히네요
쑥스럽습니다. 후후
묵클럽내 사랑도 권장하시나요 그럼 ㅎ
제가 권장한다고 되는 일일까요?
도덕과 비도덕을 판가른다는 것이 정확히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 제가 했던 일 같네요...
이번 책은 조금 더 있는 그대로 즐기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어... 그게 얼마쯤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합니다...ㅋㅋ 그런 읽기방법이 마냥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치만 묵클럽에서의 작품읽기란 '읽는 즐거움을 느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요. 노파심에 덧붙인 말이라고 할까요. 특히나 불란서 소설은 우리나라 전통의 도덕적 정서로 판단하다보면 할수록 괴로워지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면 미쳐버리게 됩니다. (웃음)
오랜만에 열린 묵클럽. 왠지 긴장되여...
긴장말고 오세요. 제가 잘 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