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8)
◇ 그 서방에 그 계집
계집아이처럼 예쁘장해
동네에서 인기 많던 매방이
장가가서 각시와 알콩달콩 지내다
어느날 방물장사를 시작하는데…
어느 계집애가 고추 달린 매방이보다 예쁘랴. 어릴 때부터 매방이는 보는 사람마다 계집아이라 했지 사내아이라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커서도 매방이는 인물값을 했다. 기골이 아담한 데다 얼굴은 백옥처럼 희고 눈은 사슴눈처럼 크고 콧날은 오똑하고 입술은 도톰해 치마만 두르면 열여덟 색싯감이었다. 싱거운 아낙들은 매방이를 보면 한마디씩 했다. “아이고 조 녀석, 이불 속에서 깨물어 먹었으면 한이 없겠네.” “두고 보게. 인물값 한번 단단히 할 게야.”
아니나 다를까. 장가도 가기 전에 매방이를 둘러싼 도색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강 건너 이 초시 딸과 대보름날 물레방앗간에서 삼경이 지나 몰래 나왔다느니, 솔밭골 홍 과부 집에서 하룻밤 자고 나오면 조끼 주머니가 엽전으로 찰캉찰캉거린다느니….
동네 수캐처럼 아무 데나 휘두르던 매방이가 마침내 이 초시에게 멱살을 잡혀 장가를 가 농사꾼이 되었다. 농사일은 철이 있어 논밭을 갈아엎고 씨 뿌리고 김매고 거두기를 때맞춰 하려면 바쁠 때는 먼동이 트기 전에도 논으로 밭으로 부리나케 쏘다녀야 하거늘, 게으름뱅이 매방이는 새벽녘에 각시 속치마를 걷어 올리고 고쟁이를 벗겨내려 콩닥콩닥 방아를 찧으니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모심기 철이면 남의 집 논엔 물이 그득한데 매방이네 논은 흙먼지가 난다. 한여름날 남의 집 콩밭은 허리춤이 잠기는데 매방이네 콩밭은 무릎도 못 덮는다.
3년이 지나자 농사도 지겨워지고, 마누라 고쟁이 벗기는 것도 지겨워졌다. 매방이는 장삿길에 나섰다. 소금장수, 독장수, 새우젓장수, 체장수, 솥장수…. 하지만 매방이는 지게에 소금이며 독을 진 채 산 넘고 물 건널 위인이 못 된다. 결국 사내 녀석이 한다는 게 방물장수다. 방물 고리짝 하나 메고 다니는 게 힘에 딱 맞는다고 마누라에게는 핑계를 댔지만 실은 다른 뜻이 있었다. 여자를 쉬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장사는 불티가 났다. 매방이는 아직도 소년 같은 얼굴에 눈웃음을 살살 흘리며 입담을 늘어놓아 부잣집 마나님들 혼을 빼놓았다. 노리개를 팔 땐 저고리에 갖다대면서 손등으로 물컹한 유방을 짓눌렀고, 남편이란 게 첩살림을 차려 안방 출입을 딱 끊은 집에 가서는 고리짝 깊숙이 숨겨둔 주목 목신을 꺼내 보였다.
두어해가 지나자 방물장수도 이력이 났고 여자 후리기도 도가 텄다. 하지만 유부녀는 조심해야 한다. 한창 열이 올라 쿵쿵 절구질을 해대는데 문상 가서 밤을 새고 온다던 서방이 대문을 두드리는 통에 혼비백산, 옷과 방물 고리짝을 옆구리에 끼고 들창을 빠져나가 뒷담 밖으로 고리짝을 던지고 월담을 해 뺑소니친 게 몇번이던가.
어느 가을날, 두 장 터울 만에 매방이가 집으로 돌아온 때는 이경이 지나서다. 처녀 때 매방이와 물레방앗간을 들락거린 이 초시 딸도 두 장 터울을 신랑 기다리며 곱게 지낼 새댁이 아니다. 이웃집 떠꺼머리 머슴놈이 옷을 옆구리에 끼고 들창을 빠져나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친 후 매방이가 어흠어흠 헛기침을 하며 안방으로 들어왔다. 오만 여자 섭렵하던 매방이도 제 계집이 서방질하리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새댁은 갖은 아양을 떨며 달라붙고 매방이도 오랜만이라는 듯 질펀하게 운우의 정을 나누고는 둘 다 곯아떨어졌다. 이웃집 머슴놈과 일을 치르다 얼마나 놀랐던지 새댁이 잠꼬대를 했다.
“우리 서방이 대문을 두드려. 빨리빨리.”
옆에서 자던 매방이 깜짝 놀라 옷과 고리짝을 들고 들창 사이로 바람처럼 빠져나가 월담을 해서 걸음아 나 살려라 냅다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