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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시절 이른바 사법농단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판사들에 대한 1심 판결이 마무리되면서, 무죄를 선고한 재판 결과를 두고 거센 논란이 벌어졌다. 재판부는 해당 판사들의 재판 개입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이들 혐의가 직권남용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행위가 법관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인 행위이지만, 당시 재판 업무와 관련해 ‘남용할 직권’ 자체가 없다는 논리를 전개했던 것이다. 만약 피고인들의 신분이 판사가 아니었다면, ‘위헌적이고 재판에 개입했지만 무죄’라는 판결이 내려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일반인들의 시각으로는 그들이 같은 법조인이기 때문에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것이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사법부가 대중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전관예우’라는 관행이라 할 것이다. 이는 판사나 검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맡은 사건에 대해서 법원과 검찰에서 유리하게 판결하는 법조계의 관행적 특혜를 일컫는다. 특히 변호사로 변신한 판사와 검사들은 막대한 수임료를 받고, 검사나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자신의 의뢰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인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은밀히 행해지고 있어 실체를 규명하기 힘들 뿐이라고 생각된다.
‘전관예우 판결이 미국식 배심재판으로 진행된다면?’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통해,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벌어졌던 적나라한 치부의 일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변호사인 저자가 직접 겪었던 ‘전관예우’의 실체를 소개하면서, 그 대안으로 배심원들이 참여하는 미국식 배심제도가 하나의 대안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거대 건설사와 자신의 의뢰인 사이에 벌어졌던 불합리한 재판 과정은 저자의 전작인 <고백 그리고 고발>에 이미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재판 과정에서 증인의 어긋난 증언들 가운데 건설사에 유리한 내용들만을 취하고, 힘들여 수집한 증거물들은 간단히 무시하는 법관들의 태도를 목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제기된 재판 과정에서도 저자가 제시했던 각종 증거들이 간단히 무시되어, 불합리한 원심이 유지되는 결과가 빚어졌다고 한다.
물론 이 책에서도 재판 과정의 증거물이나 판결문 등과 함께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는데, 전작과는 달리 저자의 논점은 그 재판이 ‘전관예우’와 법관들의 학연 등에 의한 결탁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고 거대 건설사의 의도에 맞춘 판결로 귀결될 수 없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검사나 판사들이 전관예우 변호사를 대동한 거대 건설사의 막강한 금권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분명한 증거를 무시하면서까지 재벌에 맞선 개인에 대해 패소로 귀결되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느꼈던 법조인들의 학연에 따른 ‘연고주의’와 도장 한번 찍고 3천만원을 챙기는 전관들의 실태에 대해서도 폭로하고 있다. 결국 저자가 이러한 재판 과정을 통해서 느낀 것은 ‘내면화된 조직 논리’에 입각한 ‘답정너(답은 이미 너로 정해져 있다)’라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암담한 현실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전관예우’의 악습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을 해결할 방안 중의 하나로 ‘미국식 배심재판’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만능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헐리우드 영화에서 간혹 등장하듯이, 증거를 조작하여 배심원들을 현혹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배심재판에서는 전관에 대한 우대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기대가 깔려있다고 이해된다. 많은 이들은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증거에 따라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는 법관의 자세를 기대한다. 그러나 최근 ‘사법농단’에 대한 판결 결과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더이상 법조인들에 대한 신뢰가 그리 크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느꼈던 좌절감과 분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희망을 찾기 힘든 한국의 사법부에 대한 현실이 더더욱 답답하게 생각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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