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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비문학 전공자인 저자가 민담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인간형을 통해, 민담의 세계관과 가치에 대해 연구 결과를 제시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민담’이란 예로부터 민간에서 구전으로 전승된 이야기로서, 여기에 신화와 전설을 포함시켜 ‘설화’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민담은 신화와 전설과 구별되기도 하나, 때로는 이들의 경계가 서로 넘나들어 명확히 구별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이들 설화문학은 ‘사실 여부에 구애받지 않는 상상의 이야기’이기에 정보를 정확하게 전하는 것도 중요치 않으며, 단지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고 가치 있는지가 관건일 따름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민담은 일반적으로 ‘옛날 이야기’라고 지칭되기도 하며,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범하거나 때로는 어리석다고 인정되는 유형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민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형을 ‘민담형 인간’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꿈 그리고 좌절의 양상과 그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저 어리석은 인물로만 평가되었던 ‘민담형 인간’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윤리적 인간’과는 달리, 저자는 민담형 인간을 ‘쉴 때는 쉬고 충전할 때는 충전하는’ 그야말로 '더없이 힘차고 즐겁게 움직이는‘ 인물 유형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디즈니와 픽사에서 출시한 수많은 영화들이 바로 세계 각국의 민담을 소재로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관중들이 그것을 지켜보면서 꿈과 희망을 논한다는 것이 바로 민담의 가치와 의미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교육방송을 통해서 등장한 ’펭수‘ 역시 ’민담형 캐릭터‘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이처럼 민담의 가치가 새로 발견되는 면모를 일컬어, 저자는 ’새로 열리는 민담의 세계‘(1장)로 규정하고 있다.
흔히 소설의 등장인물은 꽉 짜여진 플롯에 의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행동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그에 어긋나더라도, 전후의 스토리에 의해 그 행동의 의미가 충분히 설명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물을 일컬어 ‘소설형 인간’이라고 규정한다. 반면 생각보다 행동이 우선인 존재, 그리고 늘 행동으로 부딪쳐 상황을 풀어가는 존재를 일컬어 민담현 인간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즉 ‘행동해서 확인하고 생각대로 결정해서 뒤끝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민담 주인공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은 자칫 어리석게 여겨지고,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든 정작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예특불가와 좌충우돌로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민담의 전형적인 인간형을 ‘트릭스터’에서 찾고 있으며, 그러한 유형을 ‘민담형 인간의 꽃’(3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전형을 독일의 ‘그림 동화’에 등장하는 ‘꼬마 재봉사’와 한국 민담의 ‘정만서’라는 인물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파격행보’는 ‘대책 없음과 거침 없음 사이’에 놓여 있으며, ‘일차원 혹은 사차원의 단순성’이 그들의 전형적인 행동 패턴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인물형들이 다양한 민담 속에 등장하고, 그들은 적어도 민담에서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인물 유형들인 것이다. 하여 저자는 그들이 ‘걸림 없는 자유의 삶, 그 자체로 성공이라’(4장)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문화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민담형 인간은 동서양의 옛날 이야기들에 고루 등장한다.
논리적 사유로는 그 행동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인간형, 그것이 바로 ‘민담형 인간’이 지닌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논했듯이 저자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유형을 크게 소설형 인간과 민담형 인간으로 정의하고,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영혼이 자유로운 인간형이 바로 민담형 인간이 지닌 전형적인 성격이라고 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설화를 중심으로 논의를 펼쳐 온 저자가 시선을 세계로 넓혀, 각국의 다양한 민담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형을 설명하는 내용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일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못 황당하게 여겨지는 일조차도 아무렇지도 않게 도전하는 인물들을 일컬어 민담형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에서 윤리적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이유 때문에,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동경 혹은 욕망에 대해 대리만족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으며, 그것을 수용했던 사람들이 어쩌면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사에 계산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결코 바람직한 인물은 아니지만, 누구든지 한번쯤 그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이 이야기라는 형식에 담겨 전하고 있다고 풀이할 수도 있을 듯하다.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그동안 윤리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결코 그렇게 행동하기는 쉽자 않은 것이 바로 ‘민담형 인간’이라 하겠다. 그동안 흥미로운 이야기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민담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이해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 나름의 성과였다고 말하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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