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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서울 종로의 명소로 자리잡은 익선동, 그곳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한옥이 남아있다. 드넓은 터에 넉넉한 건축물들로 채워진 옛 양반집들과 달리, 이곳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한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한동안 전통 한옥으로 여겨졌던 익선동의 한옥들은, 실상 당시 중산층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꾸며진 개량 한옥이었다.
지금은 지방의 중소도시에서도 많이 사라졌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주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이라는 미명 아래 번듯한 빌딩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잇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개량한옥 사업에 뛰어들어 서울의 북촌을 지금의 한옥마을로 자리잡게 한 정세권이란 건축가에 대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 경성을 뒤바꾼 디벨로퍼 정세권의 시대'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건축사업자였던 정세권이 일본식의 건축에 맞서 개량 한옥을 지켜낸 과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이제 종로의 대로변에서는 좀처럼 볼 수가 없는 익선동의 풍경은 직접 찾아가야만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익선동은 거대한 양반들의 저택이 즐비했다고 한다. 정세권을 그곳을 사들여 거대한 저택을 구획하여 소규모의 개량 학옥으로 개발하여, 분양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이 저자가 말하듯이 '민족운동'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정세권의 사업으로 인해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 큰 규모의 한옥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정세권은 건축가로서보다는 개량 한옥 사업자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선 현재의 시점에서 익선동의 한옥마을이 각광받는 것만큼, 그가 건축 유산에 대해서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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