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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지 않은 길 _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
송호근 지음 나남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사회로 한 세기 만에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인들은 지축을 흔드는 새로운 질서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적응을 이룬 것을 포기하고 새로 시작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p17
“사물인터넷에 사활을 걸지 않는 기업은 결국 도태한다”고 리프킨은 단언한다. P22
리프킨은 제4차 혁명이 일반화되는 시기를 2050년 정도로 보았다. 그때가 되면 정보, 자원, 상품을 서로 나누어 갖는 공유경제의 시대가 확산될 거하고 말한다. 공유경제란 어지간한 상품과 시설은 대중생산을 통해 서로 공유된 정보를 활용하여 생산, 판매, 유통, 분배하고 여분을 나눠 갖는 질서를 말한다. 그렇게 되면 사생활의 울타리는 점점 허물어진다. 이미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가상의 글로벌 공공광장에서 타인과의 접속을 즐긴다.
“이 젊은 세대의 다른 이름은 투명성이고, 작업방식은 협력이며, 자기 표현방식은 확대된 수평적 네트워크에서 행하는 피어투피어(peer-to-peer) 생산이다. P23 _ 피어투피어(peer-to-peer) : LAN 구성 방법의 하나. 서버 전용기 없이 컴퓨터가 전부 대등한 입장에 놓이는 접속 방식. 네트워크 운영 체제의 가격이 저렴하며 설치나 운용도 간단하지만, 디스크에의 접근이 느리고 데이터의 보호 기능이 불완전하다는 결점도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피어 투 피어 LAN [peer to peer LAN]
엘론 머스크는 ‘미래의 설계자’일지 모르나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터미네이터다. 문명은 이렇게 바뀐다. 미지의 과학기술이 ‘진보’의 이름으로 실용화되는 순간 낡은 패러다임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악몽이 된다. 일자리를 잃고 생계수단을 빼앗긴다.
하버드대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묻는다 “다음엔 무엇이 일어날까?”
다보스포럼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왑회장이 경고한다. “쓰나미는 어느날 도둑처럼 온다” p33
세습사회 : 한 가족이 소유한 자본이 자녀들의 계층 확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정의한 사회가 세습사회다. p36
한국경제의 침체원인
첫째, 산업사회학적 관점에서 , 구 패러다임의 경계를 넘지 못했다.
둘째, 사회제도와 성장수준의 격차(gap)다. 경제성장이 지속되려면 사회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흔히 경제가 앞서가고 사회제도는 뒤따라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격차가 너무 크면 양자의 부정합이 발생하고 갈등비용이 치솟는다. 경제와 사회 간 발전수준 차이가 큰 상태를 격차사회(gap society)라 한다면, 이런 사회에서는 새로운 경제동력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2010년 이후 한국경제에 발생한 심각한 정체위기는 구 패러다임과 구 제도의 한계가 겹친 결과다. P41
미국 MIT 경영학자 ‘엘리스 암스텐’이 ‘하면서 배우는(learning by doing)’것으로 요약한 한국적 발전의 특성은현대차그룹에 그대로 적용된다. p44
울산의 성공은 ‘가난의 연대(連帶)’를 ‘경재의 분절(分節)’로 바꿔 놓았다 p64
우리들 빼놓고 자기들만 사느 ㄴ느낌? 그냥 자기들만 사는 세상에 우리가 이렇게 꼽사리 낀 듯한, 그런 느낌
이 얘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연대에서 분절로, 분절에서 대립으로 나아가는 도시의 분위기는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른다. P65
첫째, 산업적 관점에서, 울산의 주력산업은 과연 유지될까?
둘째, 사회심리적 관점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데 신세대 노동자는 1세대가 쏟은 만큼의 열정을 뿜어낼 수 있을까?
셋째, 사회적 관점에서, 정체성(正體性) 전환의 문제가 있다. P68
잘나갈 때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무분규 보상이 너무 컸다는 것, 호황기간 불황대비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P74
시공에 자신 있었던 한국업체들은 높이 500미터에 이르는 해양시추선을 단지 바다에 떠 있는 대형구조물로 간주했다. 그런데 해양플랜트는 첨단기술의 합작품이다. 건조과정은 EPCI로 구분되는데, 엔지니어링(Engineering), 구매(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 설치(Installation), 가 그것이다. 각 부문에서는 이미 첨단기술과 정보를 가진 세계적 기업들이 진을 치고 있는 형편이었지만, 한국업체들은 시공기술만을 믿고 E,P,I를 그런 기업에 맡기면 된다고 간단히 생각했다. 시공기술만 가진 한국업체가 엔지니어링, 설계, 조립, 부품제조, 시운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책임지는 형태로 수주가 이뤄졌다. P76
공대 교수들이 지적한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과욕을 부린 결과가 현재의 위기로 나타난 것이다
개념설계 역량이란 작업현장을 바탕으로 기존 기술 패러다임의 한계를 뚫는 창의적 사고와 기술을 말한다.
세계 1위 조선산업국으로 등극할 때까지 시공분야를 제외하고 산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 해법을 제시하는 역량을 쌓지 못했다. 설계부문이 그런 영역이고, 기술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능력이 그런 영역이다.
모방 추격모델로는 여의치 않고 경험지식의 꾸준한 축적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창의적 사고가 개입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의 작업현장에서 ‘경험의 축적’은 일어나는가? 우리의 산업현장은 창의적 사고가 발현될 그런 환경인가? 기술연구 부문에서는 그런 개연성이 높지만, 작업현장은 아니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P77
기업 경쟁력은 불황 때 위력을 발휘한다.
도덕적 해이를 세 가지 관점에서 조명해 보자
첫째, 보상과 복지가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났는가? 생산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작업현장에서 높은 노동의욕으로 발현되었는가? 또는 직무 헌신도가 높아졌는가? 고임금과 기업복지의 기본목적은 애사심과 직무헌신도,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다. 현대중공업은 어떠한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둘째, 직영과 협력업체 간의 관계다.
직영사원은 대체로 감독업무를 맡고, 현장노동은 협력업체의 몫이다. 대체로 힘든 일, 고된 일은 협력업체 근로자가 맡는다. 그런데 직영사원과 협력업체 근로자 간에는 연봉과 복지, 고용안정에서 엄청난 차별이 존재한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현장의 모습이 이렇다.
작업현장에서 개념역량이 축적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 흔히 기능장으로 불리는 장인은 현장노동자를 지도하고 기술을 전수할 수 있어야 존경 받는다. 개념역량의 축적은 장인을 중신으로 일어나는 것이 보통인데, 노동하지 않는 감독직에 한정된 업무 방식이 장인의 탈(脫) 숙련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셋째, 직영사원이 관할하는 각 부서 간 칸막이 문화이다. P78 ~ 81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토요타 렉서스가 가속 페달 오작동을 일으켰다. ‘토요타 생산방식’에 의문이 제기된 계기였다. 고품질을 자랑하던 토요타에 왜 결함이 생겼을까? 원인은 세 가지 무리수였다. 무리한 원가절감, 무리한 해외 생산시설 확장, 무리한 부품 아웃소싱 등이 그것이다. P83
성공 패러다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가라앉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신하지 못하는 관성(inertia)이 걱정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경제 기적에 내포된 일본식 관성 때문이었다. P87
몇몇 로봇 공정을 제외하면 현대차는 단순조립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현대중공업은 용접, 배관, 도장작업이 주류다. ~~~~ 남양기술연구소의 풍경은 다르다. ~~~~ 그러나 울산 공장지대 작업현장을 출퇴근하는 생산직 사원들에게서 장인의 기풍이나 미래기술을 다루는 고차원의 품격을 느껴 보기는 힘들다. 20세기적으로 먹고사는 중이다. P89
나의 생각 : 21세기를 살면서 20세기적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구글이 자율주행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는 뉴스를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자동차사업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들의 강점인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P90
일본의 집단적 힘은 은(恩) 의식에서 유래한다. 인류학자 루스베네딕트는 일본문화의 정수를 연구한 <국화와 칼>에서 ‘은의식’을 일본인이 타고난 생래적 가치관으로 파악했다.
일본에 ‘은(恩)이 있다면, 한국에는 ‘망(望)’이 있다. 이른바 열망(熱望)이다. 한국인들의 유전자 속에는 뭔가 이뤄 내고 싶은 열망의식이 꿈틀거린다. P112
열망의식은 힘든 노동과 강도 높은 노동을 이기게 하는 힘인데, 그것이 가정과 기업의 성장동력이다.
내가 기름밥 먹는 것은 딱 하나, 애들이 어깨 피고 살게 하는 거요. P114
현대차는 토요타 생산방식의 요체, 즉 현장직 팀워크에 의한 문제발견 및 해결능력을 현장밀착현 엔지니어의 능력으로 대체했다. 자동화가 출구였다. ~ 그 결과, 현장직은 자동화에 의해 수월하고 정돈된 작업장을 갖게 되었지만, 어느 날 자신이 ‘수동적 실행자’, 고단하고 단순 반복적인 라인 노동자가 되었음을 발견해야 했다.
파업능력과 단체협약 등을 통해 근력을 길렀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장직의 숙련도는 약화되었다. 작업현장에서는 신참자나 근속자의 구분이 점차 소멸했다. 근속자에 대한 존경심도 더불어 사라졌다. P152
옛날에는 힘들 때 옆에 있는 동료들 많이 의지하고 같이 어울여 그걸 빨리 해결하는 그런 문화가 돼 있었다면 지금은 … 서로 간에 동료애라든가 이런 것이 너무 상실돼 갑니다. 회사란 것이 옛날에는 동료들과 같이 어울려서 집보다 더 어떤 자기 존재의식을 느끼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생각하기에 그냥 돈 버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154
완성차업체가 높은 비용의 정규노동자에게 기대하는 역량은 종래의 숙달만이 아니다. 공정 전체에 대한 조망과 이해력, 문제 해결능력,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능력과 집중력이다. 품질제고를 위한 자발적 참여도 중요하다. 현장의 작동방식은 현장노동자가 가장 잘 알고, 현장의 간단한 문제는 이들이 가장 빠르게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현장의 암묵지와 숙련은 파일럿모델 개발과정에서 엔지니어의 혁신공간을 현저히 확장할 수 있다. 혁신의 새로운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P160
고소득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기술직 사원들은 이런 사실을 수긍하지 않으려 할까? 잔업수당, 특근수당 때문이다. ~~ 기본급 외에 잔업과 특근 수당이 주 수입원이었다. ‘소비생활은 특근에 맞춰쟜다’는 면담자의 고백처럼, 특근은 주택, 사교육비, 가족 문화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밑거름이었다. 잔업과 특근을 마다하지 않는 가장(家長)은 고달프다. 가외로 행하는 고달픈 노동으로 버는 돈은 일상 소득, 특히 월급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형성됐던 것이다. 자신이 거부하면 벌 수 없는 임의적 수입은 월급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P165 ~ 166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P182
언어는 문화생활의 수준을 결정한다. 프랑스에서는 그리스어를 할 수 있어야 중산층 대열에 낄 수 있고, 독일에서는 괴테의 시를 줄줄 외고,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음악을 즐길 줄 알아야 즈ㅜㅇ산층이자 교양시민 자격을 획득한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P185
기술직은 tv외에 신문이나 전문잡지를 보는 경우가 드물었다. 논리적 사고를 하지 않는 빈 공간에 노동조합의 주장과 이념이 내려앉기 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게 장기적으로 보면 관리직 사원과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문화자본일 것이지만.
돈! 중산층 생활여건을 만들기 위해 기술직 사원들은 돈에 모든 인생을 걸었다. 돈이면 계층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한국적 실정이 그들로 하여금 ‘일 중독자’가 되게 했다. P186
주택과 교육 투자를 위해 남편들은 잔업, 특근, 철야를 마다하지 않았다, 가끔 부인에게 인생을 돈과 바꾸기 싫다고 푸념하지만, 아파트 바꾸고, 양육비 교육비 대느라 늘어난 지출을 감당하러 작업장으로 간다. 집에 있어 봐야 주부대학, 취미모임, 시민강좌, 미용체조, 독서회를 다니면서 교양을 쌓은 부인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부인은 소소한 문화자본을 갖춰 중산층 깊숙이 편입되었으니 관심사와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달라졌다.
모처럼 특근이 없는 날 부인과 같이 뭔가를 도모하기가 버겁다. P187
자신의 고용안정을 위해 노동계급 연대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다. 한국에서 고질화된 ‘비정규직 문제’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P205
현대차 노조는 민주노조, ‘민주적 노조’인가?
첫째, 4만 8천 명 조합원을 거느린 현대차 노조는 선거에 의해 집행부를 선출한다. 여기까지는 민주적이다.
정치권을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는 노조 역시 임금 위주 포퓰리즘 정치에 매몰된다.
둘째, 작업장은 대의원이 장악했다.
문제는 대의원이 행사하는 작업장 권력이 주로 ‘노동 최소화’에 기여하고 생산성을 최저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셋째, 성과급 분배다.
노조의 내부자 연대를 공고히 하려는 평등주의 원칙이다.
넷째, 포퓰리즘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조합원을 사회적 쟁점으로부터 절연시키고 오직 경제적 이득에만 몰두하도록 부추긴다. 분절된 노동자를 실리주의라는 감옥에 가둔다. 쉽게 말해 ‘돈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2998년 대량해고가 남긴 교훈, ‘있을 때 벌자’는 그 쓰라린 교훈은 스스로 돈의 노예가 되는 길을 택하게 된 이정표인데, 노조는 조합원의 총체적 전투의지를 동원할 떄 그 이정표를 꺼내든다.
조합원들의 의식공간에는 ‘일은 적게’, ‘돈은 많이’, ‘고용은 길게’라는 3개의 목표를 향해 항해하는 조각배가 위태롭게 흔들리는데, 노조는 이 조각배를 독려하는 등대와 같다.
포퓰리즘에 매몰된 조직은 민주적 성격을 상실한다. 기업의 사활 문제를 의식공간에서 지워 버린 노조는 자본 길들이기에는 성공하겠지만, 자녀들이 살아갈 한국하회를, 한국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강한 자본과 강한 노동이 충돌하는 현대차의 교환정치를 스스로 깨지 않고는 노조는 사회적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고, 노조가 생존하는 터전인 기업마저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P210
단순조립공은 시장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노조의 보호가 없다면 언제라도 교체될 위헙에 직면한다. 목숨을 걸고 노조에 매달리는 이유이고, 노조는 형평성 문제를 도외시하고 조합원에 대해 필사적 방러로 화답함으로써 교섭력을 높인다. P226
임금을 무조건 적게 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고임금을 요구 하려면 그만한 자격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권리는 의무완수에서 발생한다. 자격은 모범을 보일 때 얻는다. P228
사민주의 국가라고 해서 노조의 독주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국가와 노조 간에는 긴밀한 정치적 지지관계를 맺고 있지만, 노조가 계급불평등을 촉발하고 경제성장 전선에 혼선을 일으킨다면 국가는 매우 적극적으로 노조를 견제하고 때로는 강제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잘못하면 국민의 외면을 받아 정권을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P231
독일의 작업장은 노사가 함꼐 참여하고 결정하는 협력과 상생의 장이다. 계급이 다른 그들이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공유한다. 기업 경쟁력 증진이 그것이다. 경영은 시장을 헤쳐 나갈 책무가 있고, 노조는 그릇을 깨지 않을 책무가 있다. 한배에 탄 공동운명인 것이다. P232
집단지성은 집단생존과 미래번영을 위한 지혜의 창고다.
경제적 실익에 대한 열정은 그리 높으면서 왜 기업의 생존과 미래번영을 위한 구조개혁의 ‘열정’은 약화되었는가? ~~
나라를 살리고, 가정과 사회를 살리고, 후손들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왜 경제적 풍요의 시대에는 자취를 감췄는가? 이런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 제기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P290 ~ 291
한국차가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기술력뿐 아니라 가치생산, 즉 브랜드 이미지를 고안해야 한다.
한국인이 자동차 원조국의 시장에 진출할 때 어떤 가치를 상징하고 있는가를 찾아내야 한다. 자동차는 편익을 주는 문명기계이기도 핟고 가치를 사고파는 문화적 상징물이기도 하다.
가치는 마음속에 있기에 감동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마켓 셰어(market share)에서 마인드 셰어(mind share)로 시선을 옮기면 뭔가 답이 발견될 것이다. P327 ~ 328
유럽 선진국들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부근에서 뼈아픈 사회혁신을 일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3만 달러 경제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경제동력을 창출할 사회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P336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으려면 근본적 경제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지만, 정권들은 재벌과 대기업을 압박해 단순투자를 강요했고 그 결과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과잉투자가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P345
한국의 재벌과 협력업체 간 불균형은 경제적으로는 소득불평등을 낳고, 사회적으로는 계층격차와 세습사회를 초래한다. 경제적 이중구조와 사회적 세습구조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P349
당대에 출세하고 부자가 됐기에 권력의 윤리와 돈의 철학을 익힐 시간도 기회도 갖지 못했다는 것이 한국의 최대 약점이자 만병의 근원이다. 권력, 위신, 돈을 독점한 교양시민과 경제시민이 자신의 내부에 공익적 유전자가 살아 있는지를 우선 점검할 일이다.
뉴하이와 유리치가 자신의 이익에 몰두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P358 ~ 359
견위수명(見危授命), 위급할 때에 목숨을 내놓는 용기와 덕성, 그런 가치를 생산해야 철회된 사회적 존경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기업시민이 되는 것, 그것이 글로벌 기업인 현대차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P361
세월호는 87분 동안 누운 상태로 버티면서 탈출 기회를 줬건만 어린 학생들은 선내 방송을 믿고 선실에 대기했다. 헬기가 뜨고 어선이 몰려왔는데도 탈출 명령은 발령되지 않았다. 해양경비정, 구조선, 어선, 연락선이 불과 30여 미터 수심에 가라앉은 선박 주변을 마치 오리 떼처럼 둥둥 떠 다녔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60분의 숨 가쁜 광경이 전국에 생중계됐을 뿐이다. 정녕 한국적 풍경이었다. P363
‘Be Korean!’이라는 공유코드가 우리에겐 없다.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만들지도 못했다. 공유코드가 없다는 말은 시민들이 곤경에 처하거나 위기에 직면할 때에 규범적 행동수칙이 결핍되어 있음을 뜻한다. P364
사회 역시 ‘공동체적 연대’(시민)와 ‘국가에 대한 헌신’(국민)으로 엮인다. 하나가 빠지면 허술하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국민보다 시민에 더 익숙하다. 국민이 되기 전 먼저 시민으로 성숙했기 떄문이다.
사회적 재설계가 절실한 현 단계에서 우선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바로 시민성 배양이다.
시민성은 ‘공존의 지혜’이자 ‘더불어 사는 시민’으로 진화하는 통로이다. P365
“도덕적 담론이야말로 미국인의 최초의 언어다.”
우리의 최초의 언어는 무엇인가? 이익, 소득, 견제, 경쟁?
공적 쟁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시민정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익에 매몰된 인간이 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