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배 사업' 소문에 우르르…파산 부른 '불나방 투자'
부동산 PF부실, 물류창고서 터졌다
고금리에 돈맥경화 공사 중단·대출 연체 속출
자재값 올라 건축비 폭등
새 물류창고 55곳 중 15곳 차질
PF 부실 대출금만 수조원
확산땐 금융권까지 연쇄 타격
20일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 냉동창고가 대부분 공실로 비어 있다. 수도권 상당수 물류센터 사업장이 고금리와 자재값 상승 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파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 사업에 돈을 댄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도 급등하고 있다. /장강호 기자
20일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 냉동창고가 대부분 공실로 비어 있다. 수도권 상당수 물류센터 사업장이 고금리와 자재값 상승 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파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 사업에 돈을 댄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도 급등하고 있다. /장강호 기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 ‘물류 로또’ 등으로 불리며 투자 열풍을 일으켰던 물류센터 개발 사업에 ‘경고등’이 켜졌다. 신축 공사가 줄줄이 중단되고, 대출금을 못 갚아 파산 위기에 내몰린 사업장이 급증하고 있다. 고금리와 과잉 투자가 겹친 영향이다. 물류센터 담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만 수조원에 달해 사업 부실의 불똥이 은행·증권은 물론 저축은행, 캐피털 등 금융권 전체로 번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기업 JLL코리아에 따르면 연내 완공 예정이던 연면적 3만3000㎡(1만 평) 이상의 신규 물류센터 55곳 가운데 15개 사업장(27.2%)에서 공사가 지연되는 등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5개 사업장의 연면적만 142만1487㎡(43만 평)에 달한다. 업계는 일반적으로 물류센터가 부동산 PF 등으로 3.3㎡당 350만~450만원 정도를 빌린 점을 고려하면 최소 1조9000억원 이상이 부실 대출로 전환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고 있다. 3만3000㎡ 이하 물류센터에서도 공사가 멈춘 곳이 20여 곳이나 되고, 대출금 역시 수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물류센터 개발은 10%의 토지계약금만 있어도 착수가 가능해 ‘100배 사업’으로 각광받았다.
블랙홀처럼 투자금을 빨아들이던 물류센터 개발 사업이 급속히 부실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건축비가 작년 대비 40% 올랐다. 완공을 위해선 추가 대출이 필요하지만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지갑을 닫아버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상으로 사업성이 크게 떨어져 추가 대출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업장이 여럿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힘겹게 완공한 사업장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물류센터는 보통 완공 후 80% 정도 임차인을 채운 뒤 이를 통째로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한다. 그러나 물류센터 공급이 단기간 급증하면서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짓는 대로 사들일 듯했던 ‘큰손’ 쿠팡, 마켓컬리가 최근 확장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 시행사 대표는 “한 달 5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낼 여력이 더 이상 없다”며 “파산한 뒤 공매 방식으로 남은 대출금을 갚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물류 호황에 뛰어든 개발업자들, 자기자본 100배 넘는 대출까지
건축비·금리 뛰자 사업성 떨어져…곳곳 공사 멈추고 완공 후 '텅텅'
20일 경기도의 한 저온 물류센터. 도크(화물 선적장) 36개를 보유한 연면적 3만㎡(약 9000평) 규모의 이 센터엔 드나드는 화물차는 물론 관리인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완공 후 뜯지 않은 비닐 등이 그대로 있었고, 화물차 소리 대신 환풍기 소리만 텅 빈 물류창고를 채우고 있었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 6월 완공 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매달 수억원에 달하는 이자만 내고 있다”며 “매각도 안돼 파산 위기에 몰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 호황 누렸지만…
물류센터 사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로또’ 사업이었다. 사업 구조가 ‘일확천금’을 연상케 한다. 우선 10억~20억원의 자본금으로 법인을 세운 뒤 물류센터를 지을 수 있는 토지를 물색한다. 이후 토지 매매 가격의 10% 정도인 계약금을 나눠 낼 수 있는 투자자를 모집한다. 토지 계약이 이뤄지면 사업은 일사천리로 흘러간다. 토지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동시에 물류센터 인허가 작업을 진행한다.
물류센터 공사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투자금이 들어온다. 증권사와 은행, 보험사 등에서 조달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주된 자금원이다. 부동산 PF란 사업성과 장래의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금융회사가 대출해주는 금융 기법을 말한다. 증권사 PF 담당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공 전에 임차인을 다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았다”며 “이후 매각이 이뤄지면 시행사는 투자금의 열 배 이상을 손에 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했다. 수도권 B 사업장이 대표적 사례다. 이 사업장 대표는 자본금 15억원으로 물류센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토지 잔금과 공사비, 금융비 등의 명목으로 1200억원의 부동산 PF 대출을 받았다. 완공 후 임대가 잘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 공실률은 80%에 달한다. 이곳 대표는 “공실률이 20%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매각 자체가 어렵다”며 “월 이자만 5억원에 달해 투자금을 일부 떼이더라도 낮은 가격에 매각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재비 폭등에 고금리까지 ‘설상가상’
물류센터 개발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진 이유는 건축비 증가와 금리 상승이다. 건축비는 지난해 기준 3.3㎡당 350만원 수준에서 올해 500만원으로 40% 이상 급등했다. 한 시행사 대표는 “예상보다 건축비가 많이 들어 추가 대출을 해야 하는데 대출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여러 공사장이 멈춘 이유”라고 했다. 한 증권사 PF팀 관계자는 “물류센터 파산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자금을 추가로 내줄 금융회사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금융감독원이 지난 7월 PF 대출과 관련해 건전성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자금 경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자율도 치솟고 있다. 부동산 PF 대출 이자(선순위 기준)는 최근 연 8~9%로 지난해(연 4% 안팎)와 비교해 두 배 수준으로 올랐다. 부동산 종합서비스 기업 관계자는 “이자율이 두 배로 오른 건 물류센터의 사업성이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라며 “올해 사업권 매각 문의만 10곳 이상 들어왔다”고 말했다.
물류센터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것도 문제다.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전국 물류센터는 488개로 2019년(295개) 대비 65.4% 증가했다. 2024년까지 전체 물류센터의 53.2%인 260개가 추가로 지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문성도 없이 물류센터 개발에 뛰어드는 사업자가 급증했다”며 “경쟁력이 없는 사업장은 매각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출 부실 정황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1분기 4.7%로 2019년(1.3%) 대비 세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2분기와 3분기엔 이 비율이 더 증가했을 것이란 게 업계 분석이다.
장강호/김우섭 기자 callme@hankyung.com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2092036511
부동산 PF 대출 늘렸던 금융권 '초긴장’
증권사 연체율 2년새 1.9 →4.7%
보험사는 3개월새 4배 넘게 뛰어
캐피털·저축銀 '브리지론'도 경고등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22092036531
부동산 급랭에 시행사들 ‘휘청’… PF대출 부실 우려
금리인상-자재값 뛰어 공사비 급증
대출 연장 안되고 추가 대출 못받아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20919/1155298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