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생각: 만화의 추억! ◈
요즘 나는 무협만화를 본다.
4~5세경, 우리글을 만화로 깨쳤으니, 사실 만화는 내게 국어 선생님 격이다.
만화와 더불어 무협지는 쌍두마차였으니 둘을 합쳐놓은 무협만화는 매우 실력 있는 국어 선생님이셨다.
그런 내가 요즘 무협만화를 다시 보게 된 건, 약 3 만권 가량의 만화를 보유하고 계시는 아침님이 나와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무협만화는 국어 선생님만이 아니라 한문 선생님이기도 하고, 간혹 이백과 두보도 등장하는 시집이기도 하며, 고사성어는 수시로 등장하니 고전 선생님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단(四端-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과 칠정(七情-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두려움懼, 또는 락樂, 사랑(愛), 미움(惡), 욕망欲)을 넘나드니 가히 인생 공부의 보고(寶庫)라 할 것이다.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는 강호무림(江湖武林)과 같은 세상에서 초로(初老)의 사내는 요즘 무협만화를 통해 배우는 게 많다.
형이 네 명이니 만화와 무협지는 엄마의 촘촘한 감시 속에도 늘 교실 속 칠판이었고, 학교 운동장 같은 것이었다. 어떨 때는 태양혈 불거진 외가 기공의 고수가 되었다가, 어느 날은 문약서생(文弱書生)의 풍모를 지녔으나 여린 손에서 지풍(指風)을 날려 바위를 뚫어버리는 내가 기공의 고수가 되기도 한다. 간혹 싫은 사람을 만나면 이기어검술(마음으로 검을 날리는 상승 무공)로 상대를 가상이나마 제압하기도 하니 살만하다.
사실 만화(漫畫)란, 여러 장면으로 이어져 이야기 형식을 가진 그림이나 사물과 현상의 특징을 과장하고 단순화해서 인생과 사회를 풍자, 비평한 그림을 뜻한다. 그러니 만화 속에는 조금 확대되거나 채색되어진 인생이 약간의 허구로 포장된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엔 보고 싶으나 보지 못하고, 이루고 싶으나 이루지 못한 이야기들이 점점이 흐르는 애환을 동반하는 매력이 듬뿍 담겨 있다.
어떨 땐 주인공의 삶을 내 것처럼 느끼다가도, 간혹 주인공의 칼에 스러진 사람이 나와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만화 속 주인공은 군림은 하되 지배하지는 않고, 스러졌으나 패배자는 아니다. 그러다가 종국엔 모든 걸 내려놓고 초야에 묻혀 검 대신 쟁기를 잡고 1식 3찬에 행복해하는 한결같은 결미에서 피식 헛웃음을 유발한다.
만화를 보는 시간에 공부를 더 하라시던 엄마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 하실까?
아마 인생은 만화와 같은 것이라며, 내 어깨를 토닥여 주시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