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죽인 후에도 바다는 더욱 침묵 지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몸으로 고백하고 입증하는 ‘승화된 신앙’ 필요
▌좌담: 사회: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2016년 사순절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와 오늘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살펴 보고싶었던 차 올해는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 서거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하여 그의 대표작인 《침묵》을 선정하여 함께 읽고 평신도 남자 세사람이 기쁨의집 소그룹실에서 만나 지상 토론을 하였다. 이 책은 곧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 소설은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글은 한국기독신문에 연재될 원고이다.
日, 총포에 더 관심있어 가톨릭 허용
김길구 이 소설은 17세기 일본에서 일어났던 가톨릭 신자와 선교사들의 순교와 배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가 오늘에도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60여 개국의 2억 명이 넘는 크리스찬들이 아직도 국가의 압제 밑에서 순교를 각오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김현호 저번에 읽었던 존스토트의 《제자도》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죠. 존 스토트 목사는 타문화권 선교사들은 선교지의 특성으로 인해 순교를 각오하고 선교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복음은 그 사회에 변화를 던지므로 인해 도전에 직면합니다.
김수성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가톨릭을 박해한 배경이 무엇인지가 우선 궁금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봉장이었던 고시니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십자가가 그려진 군기(軍旗)를 사용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김길구 일본 막부에서 가톨릭을 받아들인 것은 총포나 화약 등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죠. 일본에 가장 먼저 들어간 선교사는 포르투갈 출신인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가지고 있던 조총이 포르투갈에서 도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나가사키 인근의 영주들이 가톨릭 포교를 적극 지원하고 스스로 신자가 된 이유도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소설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듯이, 당시 일본에서는 가톨릭과 신교 간의 선교 대립,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의 무역 갈등 등 기독교인 간의 분열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열상으로 인해 일본 권부의 신뢰감을 잃게 된 것이 기독교 박해의 가장 큰 원인 아닐까요?
김수성 맞는 것 같습니다. 당시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선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한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597년에 나가사키에서 26명의 신자를 처형하였고, 히데요시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치하에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됩니다.
김길구 한편으로 보면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가 교토시대와 결별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기독교의 급격한 성장에 대해 기존 불교 세력의 불만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특히 가톨릭 신자였던 고시니는 도쿠가와의 집권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장수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 보여줘
김현호 17세기 들어서는 정말 갖가지 고문이 자행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선교사를 배교시키기 위해 옆에서 신자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 가운데는 기꺼이 ‘후미에’한 신자들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관념이 아니라, 자기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신자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는 현장에서.
김길구 작가가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이런 고난과 죽음에도 ‘침묵’을 지키는 하나님. 그러나 후기에 나와 있듯이, 소설과 달리 실제로는 선교사들이 고문에 못 이겨 배교했다고 합니다.
김수성 작가는 일본에서 가톨릭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농민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으로 취급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평생 굶주리고 비참하게 살아왔던 그들에게 선교사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나 죽음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김현호 그런데도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었죠. 선교사가 숨어서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신도가 바다에서 순교합니다. “지금 일본 신도의 순교는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입니다. 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세월호 침몰과 아직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고민했습니다.
김수성 이에 대해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그들이 나를 살렸네》(포이에마, 2013)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본에 유독 기독교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구 기독교가 하나님의 부성(父性)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는 일본인들에게 모성(母性)도 가진 하나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일본의 어떤 속담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네 가지는 불, 지진, 벼락, 그리고 아버지이다.’
김현호 결국 이 책은 인간애를 통한 이웃사랑이 궁극적인 신의 모습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즉, 참사랑은 타자를 위해 배교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타적인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지점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김길구 한편, 이 소설과 달리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의 순교는 훌륭한 신앙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가 이야기한 ‘승화된 신앙’에 따른 순교라 할 수 있겠죠. 본회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몸으로 고백하고 입증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일본화한 그리스도인 지금도 존재해
김현호 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교자가 이름이 전해지는 사람만 해도 3,792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일본에는 기독교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순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라는 말대로 복음화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져 있는데, 일본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김수성 작가도 배교한 선교사들의 입을 빌려 강조하듯이, 일본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는 ‘늪’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종교는 물론이고 모든 문화를 ‘일본화시키는 늪’이라고 할까요.
김길구 필립 얀시에 따르면, 19세기 일본 정부가 나가사키에 가톨릭성당 한 곳을 허용했을 때 숨어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상당수 나타났다고 합니다. 240년 동안 비밀리에 모여왔던 ‘가쿠레 기리시탄(隱れ 切支丹)’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전례서 없이 존속해온 결과, 그들의 신앙은 가톨릭, 불교, 애니미즘, 신도(神道)의 기괴한 혼합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결사체가 있다고 합니다.
김현호 작가는 이에 대해서도 관리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죠. 일본 권부가 선교사를 배교시키는데 힘을 쏟는 이유는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라고, 이미 일부 지역의 농민들이 몰래 받들고 있는 하나님은 가톨릭교의 하나님과 비슷해도 사실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되었다고.
김길구 이 소설은 신학교 다닐 때 필독서 중의 하나였습니다. 문학적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면서 몰입하도록 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김현호 ‘내가 죽으면 관 속에 《침묵》과 《깊은 강》 두 권의 소설책을 넣어 달라’고 유언할 정도로 작가가 애착을 가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김길구 다음에는 김기석 목사가 쓴 《흔들리며 걷는 길》(포이에마, 2014)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일본 막부는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동네사람 모두가 관리들이 보는 앞에서 성화가 새겨진 동판이나 목판을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를 ‘후미에’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 많은 가톨릭신자들이 순교를 당했다.
첫댓글 엔도슈사쿠 <침묵> 공연
전국 교회 순회 공연 - 극단 단홍 010-8227-2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