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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니안Apollonian (NF)적 기질 : INFJ, ENFJ, INFP.. MBTI
직관적 - 감정(NF)의 유형인 INFJ, ENFJ, INFP, ENFP와 같은 아폴로형 기질의 근원을 설명하려 할 때, 우리는 특별한 어려움에 접하게 된다.
디오니시우스형, 에피메테우스형, 프르메테우스형과 같은 기질유형들이 일상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반면에 아폴로와 같은 기질을 가진 이 유형은 이상적인 것 이외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목적이 너무나 이상적인 것에 있기 때문에 그들 자신조차도 그 목적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폴로형의 기질 특성을 가장 가깝게 예시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일견 현란한 웅변술로서 뛰어난 한 예를 제시했다.
개인(person)이 되어간다는 것은 한 개인이 내면적으로 또한 실제적으로 지니고 있는바 그대로의 수용성을 지닌 존재(being)가 되어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람은 겉모습이나 진정한 자기자신이 아닌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계속 따라다닌 불안정감과 과장된 방어자세를 가지고 실제의 자신보다 더 스스로를 낮추려들지 않는다.
나아가서 그는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존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자아를 추구해 나가는 스스로를 발견해 낸다. (Carl Rogers, On Becoming a Person. Boston ; Houghton Mifflin, 1961, p. 176.)
위에 언급한 표현이 다른 유형들에 비해서 좋게 보아서는 수수께끼 같고, 나쁘게 보아서는 터무니없는 넌센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자아를 추구하는 아폴로형의 특성을 비교적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SP, SJ, NT 이 세 가지 유형의 사고방식은 서로 비슷하게 이해되어지기는 하지만 서로 같은 것은 아니다. NF 유형은 SJ 유형들의 소유함으로서의 만족을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SP 유형들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우려는 욕망도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SP유형은 재능을 비축해두려는 NT유형의 욕망과, 물질을 저장하려는 SJ유형의 욕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것들에 대하여 불만스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SJ 유형이 NT 유형의 기술적인 재능(Technical Storehouse)을 칭송하고 SP유형의 관대하고 수용적인 성품을 부러워한다 하더라도 그들 상호간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다.
NF유형이 추구하는 목적은 다른 유형들에게 이해되어지지 않고, 또한 NF유형 역시 그들에게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다른 유형들의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NF유형은 되어 가는 존재로서의 미지의 목적, 자아를 반영하는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SP, SJ, NT유형들이 그들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데 비해 자아를 추구하는 NF유형은 선회적이며 영속적이기까지 하다. 하나의 목적이 또 다른 목적을 내포하고 있을 때 과연 어떻게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NF유형의 '가장 진실된'자아는 자기 자신을 추구하고 있는 자아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삶의 목적을 갖는 것이다. 항상 '되어감(becoming)'의 도상에 있는 NF유형은 결코 진실되게 자신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아를 잡으려는 바로 그 행위가 자신을 자아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햄릿(Hamlet)이 바로 이 같은 모순에 빠져서 괴로워했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노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물리쳐야 하느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일까.
의미심장한 대사업도 이러한 망설임 때문에 옆길로 쏠리고, 실천의 힘을 잃게 된다. 아폴로 유형의 교차된 목적(Cross-Purpose)이 이보다 더 잘 표현되어진 적이 없었다. 행동함이 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며 고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반면에 행동한다는 것(목적을 이루거나, 무엇이 된다는 것)은 존재함을 파괴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이 행동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역설은 NF유형의 전 생을 통한 무거운 짐이며, 자신의 목적과는 별개로 이러한 역설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그의 과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하나, 어떤 이들은 행하지 않는다. 행동하는 이들은 행복하고 생산적이나, 행하지 않는 이들은 고통받는다.
"나는 어떻게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을까?" 라고 NF는 묻곤 한다. 그들은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을 갈망하며 진실된 자신이 되고자 한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을 독특한 그만의 주체성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끝없는 추구는 종종 현재의 자신이 목적하는 자신보다 못하다는 믿음을 갖게 함으로써 죄의식을 유발시킨다. 자아탐구의 길들이 결코 명백하게 보여진 적이 없다 하더라도 그는 유일한 자아에 대한 갈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완벽한 전체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완벽하게 유일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 때로는 정신적으로, 혹은 심리적, 육체적으로 방황한다.
이 나, 이 가장 깊은 나, 이 궁극의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건 살도 뼈도 아니요, 생각도 의식도 아니라고 현자들을 가르쳤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진정한 자신에 이르는 길, 그것을 찾아 낼 수 있는 어떤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아, 아무도 이 길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 아무도 이 길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도 선생님도 현자들도 신성한 신의 찬미자들도 그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일 인간이 유일자, 가장 중대한 자, 단 하나의 절대자를 모른다면 이 여러 가지를 아는 것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을까? (Herman Hesse, Siddhartha. New York: New Directions Publ. Corp., 1951.)
수많은 모래들이 있는 해변에서 잃어버린 한 알의 모래가 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이다. 군중 속에서 길을 잃은 존재가 된다는 것, 다른 이들과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 얼굴 없는 주체가 된다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과는 다른 개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NF유형이 일상의 역할 속에서 활동가, 친구, 애인, 부모, 지도자, 아들, 딸, 주부, 아내, 남편, 창조자로서 행하는 유일한 기여는 인정되어야만 한다.
NF유형이 그의 시간과 관계를 어떻게 구성하는 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의미를 갖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그는 자기 존재의 중요성이 인정되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현존하는 것으로서 인정되어 지기를 원한다. NF유형은 이러한 피드백을 통해서만 그의 독특한 주체성을 알게된다.
NF유형에게 있어서 자아실현은 통합된 모습, 즉 통일성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겉꾸밈이나, 가면, 거짓, 수치, 역할연기가 없어야만 한다. 통합된 모습을 갖는다는 것은 진실 되다는 것이며, 진정하게 대화를 한다는 것, 자신의 내적인 경험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진실하지 못하고, 두 얼굴을 가진, 사기꾼이 된다는 것, 사실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미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주목받는 생을 살며,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독특한 주체성을 갖고자하는 NF유형의 열망을 만족시킨다. 그들이 인생을 의미로 가득 차 있는 연극으로 경험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NF 유형은 각각의 관계 속에 깊이 있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의 사건들을 드라마로 구성해낸다.
NF유형들은 다른 유형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몸짓이나 미묘한 행동에 특별히 민감하다. 그들은 또한 다른 이들은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특별한 의미를 상호소통에 부여함으로써 대인관계에서 쉽게 상처를 받는다.
NF유형은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상당한 노력과 감성을 투자하지만, 있었음에 틀림없는 것의 부재에 대한 실망에 빠질 수 있다는 강렬한 예감을 느낀다. NF유형은 관계를 형성하는데 바치는 노력과 시간에 인색하지 않다. 특히 그 관계가 발전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NF유형이 상당량의 투자를 계속할 때에 어떤 반응이라도 있기만 한다면 그 대답이 꼭 원하던 것이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아폴로 유형은 소수이지만 대중들에게 미치는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작가들이 바로 이 유형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극작가, 텔레비전 작가, 각본가, 기자, 시인, 전기작가 등의 대부분이 NF유형이다. 기술이나 과학분야의 저술가들이 NT유형의 경향이 있는 반면에 영감을 주고 설득하며, 문학을 창조하고자 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NF유형이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그들의 의문은 인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허구적인 문학작품 속에 투사하게 된다.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하나의 주체는 자아를 찾고자하는 주인공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끈질긴 추구와 갈등이다.
NF유형은 문학작품을 통한 그들의 의미에의 탐구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순례여행으로 발전시킨다. 매우 드물게 SJ, NT 그리고 SP같은 다른 유형들이 이러한 가치를 추구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고민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의미와 본질에의 추구가 그들을 전적으로 사로잡지는 않는다.
세상사람 중에 88%에 이르는 숫자가 자아실현에의 탐구를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NF유형을 더욱 신비로운 존재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NF유형들은 문은 무보다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글 속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NF유형들은 정신의학, 임상 혹은 상담 심리학, 성직, 교사와 같은 직업들을 잘 수행해낸다. 어떤 다른 유형보다도 그들은 유창하게 읽고 쓸 수 있는 시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대화 매체의 일원처럼 NF유형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지지자를 얻기 위해 창조적 노력을 기울이는데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한다.
NF유형은 어떠한 주의에 쉽사리 휩쓸리기도 하지만, 이 주장 이 세상 사람들의 상태를 더 좋게 하기 위한 깊고 지속적인 중요성을 유지하는데는 실패한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혼란된 상태에 머물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샌프란시스코의 서부해안인 하이 - 에쉬버리(Haight - Ashbury)지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이상적 낭만주의 (Flower Children)운동이 일어났을 때, NF유형 특히 NFP유형들이 이 운동에 일부 참여하기는 했지만 참여자 대부분은 SP유형이었다.
과거와 미래로부터 자유롭게 주어진 순간을 살아가는 SP유형들을 지켜보며, NF들도 이러한 즉각적인 필요성을 경험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천적으로 더 큰 의미, 더 심오한 활용성을 추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 운동은 잠시동안만 그들을 사로잡았으며, 곧 각성을 한 그들은 떠나고 말았다. NF유형은 쉽게 친분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자아실현과 그들의 독특한 주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면 쉽게 빠져 나오기도 한다.
이미 대중에게 알려져 있으며, 어느 정도는 수용되어진 주장과 운동 속에서도 그러한 NF유형들의 탐구는 계속되었다. 로버트 커쉬(Robert Kirsch)는 형태주의 치료의 창시자요, 뛰어난 지도자이고 스승인 프리쯔 펄스(Fritz Perls)에게서 이러한 특성을 발견해 냈다.
그는 매우 늦게 자신의 삶을 시작했다. 32살까지도 그는 여전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52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정한 삶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60대 중반이 되었을 대 환각제에 취하여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이제까지 추구해 왔던 학구적인 가치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삶과 세계는 군중 속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의 생각은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젊은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상태를 알아내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임상의사로서의 그의 재능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선을 공부하기 위해 교토(Kyoto)로 향했으며 이스라엘의 엘라스(Elath)를 거쳐 에살렌(esalen)에 이르기까지 방랑을 계속했다.
처음에 그는 그 곳에서 자신이 수많은 경쟁을 좋아하는 유명인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는 아브라함 메슬로(Abraham Maslow)를 "미소를 띤 나찌(Nazi)," 롤로 메이(Rollo May)를 "실체가 없는 실존주의자"라고 부르며 다른 경쟁자들을 경멸했다. 그는 그것이 정당한 평가라도 되는 듯이 격앙된 어조로 신랄한 비판을 해댔던 것이다. 펄슨(Perls)은 정신분석(psychoanalyzed)과 생리적 에너지기제(bioenergeticized)와 이상한 형태의 심리요법(Alexanderized)과 롤프(Rolfed)의 이론뿐 아니라 정신을 찢어발기는 미친 듯한 싸이킥뮤직(psychedelicized)을 위시해서 온갖 것에 심취해서, 현대에 만연한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 여겨지는 모든 방법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원했던 구원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그에게 영원한 행복은 없었다. "인생이란 꽃잎은 시들고 가시만이 남아있는 장미 화원이다." (Robert Kirsch, Fritz Perls : Mining the Gestalt of the Earth. L. A. Times Calendar, March 23, 1975, p. 74.)
에살렌(Esalen)의 구루이건, 전통적인 환경 속의 교사이건, 관념과 규범을 전달하는 직업은 NF유형에게 매력적이다. SJ와 NF유형이 대부분의 초, 중등 학교에서 교사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비해 SP혹은 NT유형이 초급 학교의 교사인 예는 거의 없다.
NT유형이 교육에 참여한다면, 고등교육과정이 더 적합하다. SP유형의 그룹은 대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특별한 매력을 발견할 수 없는 듯하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초등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쁨을 즐길 뿐이다.
교육 분야에서는 SJ유형이 대략 3대 2의 비율로 NF유형보다 많다(미국).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보면 NF유형의 경우 인문, 사회 과학분야를 더 선호한다. NF유형에게 있어서 가르친다는 것은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발견해 가는 작업이며, 다른 직업의 경우에도 자아발견이라는 그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NF유형은 사람들을 더욱 친절하고, 따뜻하고 사랑 가득한 존재로 만드는 산파역할에 매력을 느낀다. 그들은 모든 이들의 내적인 선을 보고, 이러한 내면성을 촉진시키기 위해 그들의 삶을 바치기도 한다. 성직이나 선교사업, 평화봉사단은 당연히 매혹적인 직업이다. 어떤 NF유형은, 자신들의 길을 탐구해 나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떠한 희생이라도 기꺼이 감수한다.
NF유형은 자신과 타인을 위해서 자아발견이라는 지상과업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냉혹해지기조차 할 수 있다.
NF유형은 사고 팔거나 혹은 다른 어떤 상업적인 직업에는 관심이 거의 없다. 특히 자연 과학에는 거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오히려 언어에 관심이 많으며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타인들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그들이 타인들과 접촉하는 여러 방식 중의 하나는 번역 예술이다.
SP유형이 무대예술에 흥미를 느끼는 반면에, NF유형은 묘사된 인물의 성격을 잘 표현한다. SP유형이 '의상'을 통해 역할을 연기하는 반면에, NF유형은 언어 예술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연기자로서의 NF유형은 묘사된 인물의 성격을 잘 표현한다. SP유형이 '의상'을 통해 역할을 연기하는 반면에(예를 들면 존 웨인이 카우보이, 군인, 사업가, 법률가처럼 복장을 갖추고 연기를 하듯이),
NF유형의 개성은 그의 배역 속에 용해된다. SP유형 연기자는 자신을 지키며, 자아상실의 위험 속에 결코 빠지려 하지 않으나, NF유형 연기자는 무대 위에서든 밖에서든 그가 연기하는 각각의 역할 속에서 다른 개성을 획득할 수 있다.
NF유형은 관객들이 보고자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비상한 재능이 있다. NF유형의 연기자는 자신의 감정이입 능력으로 인해 환상 속에 빠져든 관객들을 일깨울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특별히 원하는 때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 그의 본래의 자의식이 드러나지 않도록 억제한다.
일반 대중이 그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그를 보고 있다는 것은 은밀한 즐거움이다. NF유형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에게 별 관심이 없는 타인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있는 그대로 드러나도록 한다.
길리안(Gillian)은 거울로부터 돌아섰다. 결국 거울이라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속성을 반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길리안은 바로 걸어가 나체인 체로 안락 의자에 앉아 차가운 가죽을 기분 좋게 느끼며 술을 마셨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변화시켜 보일 수 있는 카멜레온과 같은 반응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을 한다던가 가슴을 부풀리거나, 지적 또는 섹시한 모습으로 아니면 전혀 냉담한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쉽사리 그것이 될 수가 있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지 않고도 모든 남자의 꿈의 여인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적절한 진행이었다. 또한 이것은 도식적인 속임수가 아닌 예민한 감수성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그녀의 육체가 변화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에 그렇게 비쳐진 것일 뿐이었다. (Penlope Ashe, Naked Came the Stranger. New york : Dell Publishing Company, 1969, P. 13.)
60년대의 "종교"인 참만남 집단 운동은 상호관계 속에 가치를 두고 은밀한 친교를 추구하는 NF유형에 의해 주도되고 널리 보급되었다. 그들은 티 - 그룹 (T - groups), 마라톤 그룹(Marathons), 초명상 그룹(Transcendental Meditation groups), 초기 비명 그룹(Primal Scream groups) 등을 통해 그들의 삶을 더욱 의미롭게 하고, 더욱 개방적이고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감정의 발생과 그에 대한 인식의 발생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축소시켜 감정을 충만히 인식하기 위한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인 차원의 대화를 모색했다. 그러한 많은 그룹 활동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거의 영적 극치로서의 체험이라고까지 주장하며 추구하던 친근감을 일시적으로 발견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마치 전에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어떤 곳에 가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마치 당신이 우주 속으로 나아가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과 같다. (Terry O\'Bannion and April OConnell, The Shared Juouney, 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 - Hall, Inc. m 1970, p. 23.)
그러나 그룹 활동이 끝난 후에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생활 속에서 그 친교는 점차 빛을 잃어갔다. 그룹 활동을 통해 얻어진 참된 깨우침은 그 경험이 실제 제대로 전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로부터 유래하기도 한다. 특히 자신을 분열된 존재로서는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 NF유형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실 NF유형들은 "사실적이고, 확실하며 의미심장한 존재가 되라"라고 강요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진정한 자기 자신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곤 한다. NF안에는 언제나 완전하고 의미심장한 자기존재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목소리가 있다.
NF유형은 의식 속에서 청중과 연기자로 동시에 분리된다. 그는 언제나 무대 위에 있으며 동시에 무대 위의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 이러한 자아인식을 추구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지닌 모순은, NF유형이 한쪽 편에 떨어져 서서 자신을 관찰하고 자기자신이 되도록 부추기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신을 저주한다는 사실에서 온다.
"언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언제나 자기자신을 너무나 의식하는 것 같아" 그녀는 언니에게 말했다. "나는 적어도 내가 노예의 천성은 가지고 있지 않기를 바랬어" 힐다(Hilda)는 말했다. "그러나 아마도 언니는 가지고 있을걸! 필시 언니는 자기자신에 대한 생각의 노예야" 힐다는 깜찍한 코니(Connie)로부터 이 전례 없는 무례한 말을 들은 후에 잠시동안 아무 말 없이 차를 몰았다. "적어도 나는 나를 생각하는 그 누군가의 노예는 아니야,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 남편의 하인이야" 마침내 그녀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며 반박했다.(D. H. Lawrence, Lady Chatterley\'s Lover. New York : Bantam Books, 1928, p. 274.)
NF유형의 활동은 의미부여 뿐만 아니라 SJ 유형에게 만족감을 주는 봉사도 필요로 하며, 또한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에게 있어서도 중대한 의미가 있는 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일에 헌신함에 있어 시간과 힘의 양에 한계를 긋기가 어렵다.
충동적으로도 일할 수 있는 SP와는 달리 NF는 완전을 추구하며 일한다. 완벽한 예술 작업, 완벽한 연극, 소설, 영화, 완벽한 관계, 그리고 일단 일이 완성되고 작품이 창조됨에 있어서는 최초에 품었던 어마어마한 기대를 계속 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계획의 뛰어남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F유형은 일단 그들이 시도한 일에는 한계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때 그들은 그들 자신과 주변의 타인들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수 있다.
큐브릭(Kubrick)은 입체음향의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서 여전히 하루에 18시간을 일하고 있다. "만약 네가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사기만 저하될 뿐이다.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내가 주시하는 유일한 관건은 내가 써야만 할 돈과 필요한 양의 잠뿐이다. 네가 상관하든 말든, 나는 이 두 문제 사이에서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 지 모르겠어. (Kubrick\'s Grandest Gamble, Time, New York, Dec. 15, 1975, p. 78.)
NF유형은 창조적 성과를 추구함에 있어서는 열성적이지만, 지식의 추구에 있어서는 NT유형에 비하면 단지 애호가 정도에 불과해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날아다니는 지적인 나비와도 같다. NF유형은 SP유형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풍부히 경험하고자 한다. 하지만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그 이면에 또 다른 의미를 가진 경험을 원한다.
NF유형은 자신과 타인의 경험과 삶을 낭만적인 시각으로 보고,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인간들을 관찰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NT유형과 마찬가지로 NF유형도 미래 지향적이며 있을 법한 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NT유형이 원리의 가능성에 대해 더 생각하는 것에 비해 NF유형은 사람들 속에서의 가능성을 더 생각한다. 그들은 타인 속에서 최상의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을 좋아하며, 종종 자신과 타인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의 실현"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NF유형에 있어 자신에 대한 인식과 타인에 대한 인식은 함께 공존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결코 충분하지는 않다. 어떠한 명백한 사고들도 NF유형에게는 쉽게 받아드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신화 속에서 매혹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신을 통해 NF유형의 혼을 찾아냈다. SP유형인 디오니시우스는 자신이 발견해 낸 사실에만 반응하는 현실주의자이며 술과 육체의 즐거움 속에서 기쁨을 누렸다. 그는 인간에게 성의 즐거움에 대한 이해를 갖게 했다.
SJ유형인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 있는 많은 재앙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지만, 고귀한 SJ유형인 그는 그의 의무와 책임이 명하는 대로 그녀 옆에 머물며 상자 속에 있던 선인 '희망'을 위안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일은 틀림없이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사회적 의식(양심, 도의심)을 발전시켰다.
단순히 흙에 불과한 인간을 불쌍히 여긴 NT유형인 프로메테우스는 태양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준 죄로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인간에게 기술을 전해 주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아폴로는 신들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매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인간으로 하여금 사명감을 갖게 하고, 이미 세속의 악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 성스러움을 발견해 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NF유형인 아폴로는 자발적인 진리의 전달자였다. 그는 인간들을 위해 아버지 제우스의 뜻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아폴로는 그리스 정신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이상, 진리, 미, 영성, 신성함에 대한 바램과 더불어 불경함, 추함, 타락함, 육감적인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헌신적으로 타인을 도우며, 위안을 주는 음악과 노래의 전달자로서 그리스인의 이상이다.
그는 마음과 육체의 치료자이며 예언의 전달자, 신들의 대변자이고, 영감을 주는 신성하고 깨끗한 존재였다. 아폴로의 야성적이고 광폭한 면이 폭발하는 것은 오직 그의 우위성이 도전 받거나, 인간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려는 그의 노력이 좌절되었을 때뿐이다.
아폴로의 내면에는 사명감, 인간에 대한 존중, 주체성의 추구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기꺼이 살인을 하고, 제사의식 중에 여사제들을 음흉하게 이용하려 하고, 마침내 아버지 제우스를 배반하기까지 하는 제어되지 않는 욕망이 함께 존재한다. 그에게는 성스러움과 불경함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다.
아폴로는 NF유형의 원형(Archetype)이다. 이들의 관심은 사물이 아닌 인간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추상적 개념에 만족하지 않고 관계들을 추구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행동하기 위한 근거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유발하는 것 그 자체이다.
NF유형은 정체성과 통일성 속에서 자아실현을 추구하고, 마침내 완성된 자아가 되고자 하는데 이러한 이상은 전 생애를 요구하는 긴 과정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